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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마른 대지에 뿌린 씨앗,<하늘정원>
박혜명 2003-04-01

■ Story

돌아가신 아버지의 대를 이어 호스피스병원 원장직을 맡게 된 오성(안재욱)은, 분장사로 일하다가 직장에서 쫓겨난 위암 말기 환자 영주(이은주)를 만난다. 죽을 날만 기다리며 일자리를 알아보던 영주는 오성의 제안으로 그가 운영하는 병원에 입원하게 된다. 영주의 밝은 성격은 타인에게 마음을 닫고 사는 오성의 벽을 허물고 두 사람은 서로의 사랑을 확인하게 된다.

■ Review

시한부 멜로드라마에 볼 것이 더 남았던가? 홀로 남을 아내에게 잊을 수 없는 영상을 남긴 <편지>, 자신의 목숨을 바쳐서라도 남편에게 아이를 남기려 했던 <하루>, 아내의 첫사랑을 찾아 헤매던 <선물>, 여인의 마음이 움직일 때까지 한자리에서 기다리던 <국화꽃향기> 등 꺼져가는 생명을 소재로 삼은 슬픈 사랑 이야기는 영원히 끝나지 않을 것 같다. 여기 <하늘정원>이 덧붙일 기구한 사연은 무엇일까? 일단 눈에 띄는 것은 주인공이 호스피스병원의 의사라는 점이다. 죽음과 동거하는 남자, 애정을 준 모든 것이 언젠가 자기 곁을 떠난다는 사실 때문에 마음의 문을 닫아 건 사내, 그런 인물이라면 뭔가 색다른 사랑 이야기가 나올 수 있으리라, <하늘정원>은 그렇게 믿고 이야기를 시작한다.

영화는 죽음을 눈앞에 둔 여자 영주와 그녀에 대한 사랑을 표현하길 두려워하는 남자 오성의 안타까운 러브 스토리다. 처음 만난 날, 밤늦은 거리를 함께 걷고 이야기하는 그들을 보면서 사랑의 결실을 기대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하지만 둘의 사랑은 삐걱거린다. 영주가 다가서면 오성이 한발 물러서고 오성이 다가설 때 영주는 남자의 곁을 떠난다. 둘의 심리가 섬세하게 드러났다면 충분히 설득력을 가질 만한 상황. 그러나 <하늘정원>을 손질한 솜씨가 연인의 마음에 이는 격랑을 표현하기에 역부족이라는 사실은 영화의 첫 장면부터 예고된다. 죽어가는 아버지가 유언을 남기는 이 장면은 오성의 심리상태를 드러낼 결정적 도입부건만 실소를 자아낸다. “맥을 짚어달라”는 아버지의 말에 잔뜩 인상을 지푸린 채 “기계가 하잖아요”라고 퉁명스레 답하는 아들 오성의 모습은 <하늘정원>이 실은 코미디일지 모른다는 의심을 하게 한다. 뒤이어 당당한 모습을 보여주던 영주가 별안간 룸살롱 호스티스가 되고 더 느닷없이 옆자리 손님 오성에게 위암 말기환자임을 고백하는 대목에 이르면 코미디가 틀림없다고 확신할 만하다.

물론 <하늘정원>은 코미디를 의도한 영화가 아니다. 애잔한 감정을 만들기 위해 영화는 시종 슬픈 선율을 들려주며 괴로워하는 인물의 심리를 대사로, 독백으로 반복한다. 하지만 대세는 기울어진 다음이다. <하늘정원>은 너무 메마른 대지에 뿌린 씨앗이라 눈물을 싹틔우기도 버거워 보인다.박혜명 na_me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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