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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칸 다이어리 6] 드디어 폐막!
임수연 조현나 2024-05-30

김혜리, 임수연, 조현나 기자가 전해온 칸영화제 일지 ⑥

올해도 어김없이 <씨네21>이 칸영화제 현장을 찾았다. 경쟁부문을 중심으로 매일 2~3편의 영화를 관람하며 기억이 휘발되지 않도록 정신없이 떠오른 상념을 기록했다. 또한 전세계 영화인과 언론인들이 모이는 칸에서는 공식 행사 외에도 다양한 일이 벌어지곤 한다. 칸 현지의 공기가 생생하게 담긴 <씨네21> 기자들의 마지막 일기장을 공유한다.

빛으로 상상하는 모든 것들

5월23일 목요일 – 임수연 기자

영화의 가치를 상의 이름이 결정하는 것은 아니지만, 칸영화제의 위상은 전세계에서 온 예술영화가 향후 관객을 만나기 위해 본격적인 마케팅을 시작할 때 결정적인 힘을 실어줄 수 있다. 시상 결과는 유럽영화계의 정치적 스탠스를 대변하는 역할을 하는 점 역시 부정할 수 없다. 그런 점에서 인도 여성감독의 두 번째 장편영화 <빛으로 상상하는 모든 것들>은 영화제가 선택하기에 좋은 영화다. 하지만 칸에서 만난 외신기자들과 영화인들이 <빛으로 상상하는 모든 것들>에 보내는 애정은 단지 그런 명분만으로 설명할 수 없는, 진심으로 좋아하는 영화를 만났을 때의 설렘이 동반돼 있었다. 카스트제도가 잔재하고 성차별 문제가 뿌리 깊은 인도에서는 종교가 다른 남자와 연애하는 일마저 금기처럼 치부된다. 뭄바이의 간호사 아누와 프라바가 성격과 가치관 차이로 갈등하는 이유도 그래서다. 두 여성의 관계는 노년이 되어서야 해변가 마을로 도피 여행을 떠나는 파르바티의 여정에 함께하면서 마술적 연대가 시작된다. 영화가 그리는 뭄바이는 그동안 우리가 영화에서 거의 보지 못했던 모습, 예컨대 한적한 시절이나 신비로운 숲과 대비되는 대도시에서 포착되는 고층 건물과 교차로로 대표된다. 그렇게 일상 속에서 채집된 빛의 이미지는 ‘빛으로 상상하는 모든 것’이 되어 초현실적인 공간에서 펼쳐지는 원초적 욕망을 실현시킨다.

비팅 하츠

반면 같은 날 질 를르슈 감독의 <비팅 하츠>를 보는 내내 고뇌에 빠졌다. 이 영화가 어쩌다 경쟁부문에 와서 한자리를 차지하게 된 거지? 모범생 여주인공과 양아치 남주인공이 뜨겁게 첫사랑을 하다 남자주인공이 억울하게 누명을 쓰고 감옥에 가게 되면서 강제로 헤어지고 12년 후에 재회한다. 90년대 한국 드라마에서 봤던 것 같은 설정인데 심지어 이런 이야기는 한국이 제일 잘 만들기 때문에 굳이 칸까지 와서 볼 이유가 없다. 게다가 그 황당무계한 갈등 봉합은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다음날 확인한 <스크린 데일리> 별점은 경쟁부문 최하점인 1.3점을 기록했다. 아무래도 2시간46분이나 되는 러닝타임도 기자들의 화를 돋우는 데 한몫한 것 같다).

5월25일 토요일 – 조현나 기자

오후 6시45분 폐막식이 시작되기 전, 프레스룸에서 다른 기자들과 함께 레드카펫으로 들어오는 감독, 배우들의 얼굴을 하나하나 확인했다. 결국 이들이 수상의 주인공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폐막식 결과는 세간의 예상을 크게 벗어나지 않았다. 상영 이후 화제에 올랐거나 평이 좋았던 <빛으로 상상하는 모든 것들> <에밀리아 페레즈> <더 서브스턴스> <신성한 나무의 씨앗> 등이 차례로 상을 받았다. 특히 경쟁부문 후보 중에서도 대중성을 담보한 <아노라>가 황금종려상을 수상한 것은 괄목할 만한 결과다. 웃으며 등장한 숀 베이커 감독의 목소리는 얕게 떨렸지만 그럼에도 그는 “영화가 계속 살아 있게 하기 위해 앞으로도 싸우는 일을 계속할 것”이라고 힘주어 말했다. “과거와 현재, 미래의 모든 성 노동자들에게 이 영화를 바친다”는 마지막 말이 끝나자 현장의 기자들도 박수로 화답했다. 오직 영화로, 영화인들로 가득했던 제77회 칸영화제의 대장정은 이렇게 막을 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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