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 작가 모두 한국콘텐츠진흥원의 콘텐츠 창의인재 동반사업을 수료하고, 올해 사업화 지원사업에 참여 중이다. 이 지원 사업을 통해 각자 어떤 도움을 받았는지 궁금하다.
권은령 2021년 서강대학교 산학협력단을 통해 콘텐츠 창의인재 동반사업의 지원을 받게 되었다. 게임 업계에서 강력하게 추천하는 지원사업이라 익히 알고 있었다. 콘텐츠 창의인재 동반사업이 도제식 멘토링 방식으로 나의 작업물에 관해 1대1 멘토링을 해줬다면, 사업화 지원사업은 이 콘텐츠를 실질적으로 사업화하는 방법을 배울 수 있다. 내 경우엔 멘토가 마케팅 전문가여서 모바일 게임에 적합한 마케팅 방식이나 메인 타깃층을 구체화하는 방법 등을 배울 수 있었다. “모바일 게임은 마케팅이 90%를 차지한다”라는 말이 있을 만큼 중요한 요소였던 터라 큰 도움을 받았다. 비즈니스 모델(BM) 설계도 이번 지원사업을 통해 처음으로 해봤다.
김민하 2021년 서경대학교 산학협력단을 통해 콘텐츠 창의인재 동반사업의 지원을 받았다. 6개월 동안 고정 수입이 보장되고 나만의 작품을 개발할 수 있는 데다가 네트워킹까지 할 수 있어 또래 영화인 사이에 유명한 지원사업이었다. 실제 전문가를 만나면서 글 쓰는 차원이 달라졌다는 것을 몸소 체감한다. 말 그대로 차원, 관점의 변화가 생겼다. 다각도로 이야기를 바라볼 수 있게 된 듯하다. 늘 혼자서만 생각하고 골몰했는데 자기 확장을 경험하니 신기하고 낯설었다. 사실 처음 신청했을 때만 해도 다른 이야기를 개발하고 있었다. 그런데 멘토님이 <피타이홍>의 확장성이 더 크다는 조언을 해주셨다. 시놉시스밖에 없던 상태였지만 과감히 방향을 틀어 조사부터 다시 해나갔다. 작은 재료가 발돋움할 수 있는 방향성을 찾게 된 거다.
이세희 2019년 콘텐츠 창의인재 동반사업으로 서경대학교 협력산업단과 영화 제작사로부터 시나리오 피드백을 받아 발전시켜나가고 있었다. 그러다 코로나19가 터졌다. 영화산업의 꿈을 이어가는 게 요원해 보였다. 그때 마침 메타버스에 대한 관심이 커졌는데 내가 자유롭게 할 수 있는 일이 많아 보였다. 자연스레 메타버스를 바탕으로 시나리오를 쓰게 되었고 이후 사업화 지원사업으로 메타버스 플랫폼 제페토에서 드라마를 발전시키고 있다. 내가 가진 알맹이를 어떻게 사업화할 수 있는지 계속해서 배워나가는 중이다.
아이디어를 사업으로 구현하기
-한국콘텐츠진흥원 사업화 지원사업에서 이오콘텐츠그룹의 이오엔터테인먼트가 수행 기업으로 참여하고 있다. 이전부터 신진 작가·감독과 함께 오리지널 IP를 확장해온 시도들이 조언의 밑바탕이 되었을 것 같다.
오은영 2018년까지 영화업계에서만 일하다가 2019년부터 제작을 진행하고 서경대학교 영화영상학과 교수 업무를 병행했다. 그때 깨달았다. 가장 중요한 게 바로 작가더라. 좋은 작품은 창의적인 작가로부터 비롯하기 때문에 이들을 육성하고 함께 소통하는 활동에 관심이 높았다. 그러다 한국콘텐츠진흥원의 콘텐츠 창의인재 동반사업을 알게 되면서, 2019년부터 수행기업으로 신진 작가들과 함께했다. 작가 집단을 활성화하는 데 기여하고 싶다는 마음이 가장 컸다. 오랜 경력으로 쌓아온 나의 네트워크를 활용해 창작자와 전문가를 매칭해보니 두세배 높은 시너지 효과를 낼 수 있었다. 작가들이 혼자 작업했으면 시놉시스 단계에 계속 머물렀을 거다. 하지만 이 시간을 통해 업계 전문가의 이야기를 듣고 응원도 받으면서 아이템을 현실화할 기회를 얻게 되었다. 내가 가장 싫어하는 게 혼자 방에 앉아 자신이 좋아하는 것만 고집하면서, 그 내용을 노트북에 가만히 저장해두는 거다. 그 반대로 하고 싶었다. 다양한 소재를 현실에 바탕해 많은 사람이 볼 수 있도록 사업으로 구현하는 것. 그걸 원했다. 이오콘텐츠그룹을 시작한 이유도 같다. 젊은 창작자들을 응원하는 마음과 좋은 콘텐츠를 제작하고 싶은 열망 때문이었다.
-한국콘텐츠진흥원의 지원사업과 이오엔터테인먼트의 네트워크를 통해 실질적으로 어떤 변화를 얻게 되었나.
이세희 시나리오 수정을 거치면 창작가로서 제작에 대한 갈망이 더 커지는데 그런 부분을 해결할 수 있다. 게다가 다양한 메타버스 플랫폼 중에서도 <곧 데뷔합니다>의 주요 타깃층과 일치한 제페토에서 작업하게 되었다는 게 현실적으로 가장 큰 변화고 기쁨이다.
김민하 감상적으로 들릴 수 있겠지만 꿈을 꾸게 되는 감각을 느낀다. 이 지원사업을 신청하지 않았으면 지금 뭘 하고 있을지 상상이 안된다. 오늘도 이렇게 <씨네21>과 인터뷰도 하고. (웃음) 지난주에는 비즈니스 매칭을 위해 투자사들과 미팅 자리를 가졌다. 이 지원사업이 아니었다면 만나지 못했을 사람들이다. 꿈을 이루는 과정을 통과해나간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는다. 이 긍정적 기운에 더 열심히 글 쓰게 되기도 한다. 지금 <피타이홍> 시나리오에 피드백을 계속 받으며 발전시키고 있다.
오은영 <피타이홍>은 태국의 강력한 악귀, 원한을 갖고 죽은 귀신을 뜻한다. 노동자의 인권이라는 고차원적인 소재와 글로벌 시장을 겨냥한 호러 스릴러 장르까지 전세계 시장에 어필할 수 있는 프로젝트다. 현재 트리트먼트 영문 번역을 마친 상태고 태국과 싱가포르, 미국의 제작사와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세계화 네트워크를 적극적으로 구축한 이유는 확장 가능한 IP의 힘을 잘 선보이기 위해서다.
권은령 나도 김민하 작가와 비슷하다. 처음 게임 업계에 진입하고 나서 프로그래머로서만 머물렀다. 아무래도 아는 사람이 한정적이었는데 이 지원사업을 거치면서 영화·드라마 관계자, 시나리오작가 등 평소 만날 수 없는 분들을 매일 만나 새로운 일을 하고 있다. 굉장히 신기하다. 특히 게임을 드라마화, 영화화하는 드문 사례를 만들어가는 점도 무척 고무적이다. 흔한 경우가 아니기 때문에 물어볼 곳이 없었는데 오은영 대표님과 백가은 PD님에게 조언을 얻으면서 보완할 수 있었다. 컨설팅 전문가를 소개해주셔서 섬세하고 집약적인 도움을 받기도 했다. 아무래도 원작을 각색하는 과정에서 트랜스 미디어에 맞게 변형해야 하기 때문에 고민이 많았다. 타인의 눈으로 꼼꼼하게 살필 수 있어 설명 부족이나 과잉 생략 등 스토리에서 내가 놓치고 있는 것들을 확실히 알 수 있었다.
오은영 가장 궁극적인 목표는 창작가가 꾸려낸 프로젝트를 다양한 형태로 사업화하는 것이다. 어떤 지점을 사업 모델로 구축할지 사전에 창작가와 합의하고, 시나리오 단계에서는 나와 백가은 PD가 함께 현실적인 피드백을 전달한다. 세공이 더 필요할 땐 작가들에게 가장 조언을 얻고 싶은 인물이 누군지 물어 그들을 섭외한다. 이외에도 투자를 바로 결정할 수 있는 투자배급사와 제작사, 대형 스튜디오, 핵심 PD들을 작가들과 연결하는 자리를 마련한다. 사업화의 핵심을 바로 파악하기 위해서다. 이때 피칭이 무척 중요한데, 창작가가 자신의 작품을 선보이는 온라인 쇼케이스에서 원활한 비즈니스 매칭이 이어지도록 특색 있는 기획을 하기도 한다. 메타버스 플랫폼 ‘잽’(Zep)을 통해 8개의 테마 공간을 제작했는데, 투자배급사와 제작자들이 각 콘텐츠를 경험할 수 있도록 꾸렸다. 어떻게 하면 창작자들이 비즈니스 매칭에서 돋보일지 계속 고민하는 중이다.
트랜스 미디어의 확대
-그렇다면 한국콘텐츠진흥원 콘텐츠 창의인재 동반사업을 지원하는 신청자 중 이오엔터테인먼트의 조언을 받고 싶은 이들은 무엇을 준비하는 것이 좋을까.
오은영 가장 먼저 확인하는 것은 창작자의 의지다. 창작물을 어떻게 사업화하고 싶은지 구술하는 자기소개서나 신청서를 아주 꼼꼼하게 본다. 두 번째로는 정량적인 측면에서 콘텐츠를 냉정하게 판단한다. 적합한 매체와 플랫폼 등을 번갈아 적용해보면서 사업화 가능성을 따진다. 다만 사업화 방향에 대한 이해가 조금 부족해도 괜찮다. 그런 건 전문가가 붙어서 새롭게 제안하고 방향을 모색하면 되니까. 다만 어떤 사업화를 상상하고 있는지 스스로에 대한 객관적인 고민이 잘 드러나야 한다.
-오은영 대표는 전 CJ E&M 영화사업부문 한국영화투자팀장, 중국영화투자팀장, 쇼박스 한국영화팀을 거쳐 서경대학교 영화영상학과 교수로 자리하고 있다. 많은 작품의 탄생 과정을 지켜봐왔는데, 근래 신진 작가 사이에 새롭게 보이는 경향이 있다면.
오은영 최근 3~4년간 미디어 영상문화 콘텐츠 사이에 급격한 변화가 일어났다. 크게 세 가지 키워드를 읽을 수 있다. 먼저 글로벌 K콘텐츠가 세계적 입지를 갖게 된 좋은 선례들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이를 염두에 두고 프로젝트에 임하는 신진 작가들을 종종 발견한다. 두 번째는 뉴미디어다. 영화 시나리오, 드라마 대본, 게임, 소설 등 다양한 형태의 IP를 완성하는데, 기존의 레거시 미디어를 넘어 이제는 메타버스 콘텐츠가 새롭게 부상하고 있다. AR, VR, XR 등을 포함한 일명 테크 콘텐츠들이 그렇다. 관객에게 적극적으로 오감의 경험을 선사하는 콘텐츠가 급증하는 추세다. 마지막으로 트랜스 미디어다. 게임에서 하던 것을 드라마로 만드는 등 콘텐츠 확장성에 대한 고민이 커지고 있다. 이제 한 형태로만 존재하는 콘텐츠는 드문 것 같다.
이세희 동의한다. 나 또한 메타버스 드라마라는 낯선 콘텐츠 형식이 크게 문제되지 않았다. 형식은 중요하지 않다. 그보다는 좋은 이야기를 풀어내는 방식이나 구조에 더 신경 쓰는 분위기다. 이런 나를 두고 누군가는 근본 없는 작가라고 할 수도 있지만 그게 요즘 세대 작가들의 자유로운 경향이다.
-콘텐츠 만조의 시대다. 볼 게 너무 많아 힘들다고 말하는 이들도 보인다. 그럼에도 사람들에게 새로운 콘텐츠가 왜 여전히 필요할까.
김민하 콘텐츠는 세상을 이롭게 만드는 가장 친절한 방식이다. 어렵고 복잡한 이야기도 콘텐츠를 통해 전하면 쉽게 알리고 유연하게 설득할 수 있다. 지금 모인 작가들도 각자의 작품에 메시지를 담고 있다. 나의 <피타이홍>이 외국인 노동자의 인권 의식을 말한다면 권은령 작가님은 자살 예방에 대해 말하고, 이세희 작가님은 청소년들의 꿈과 좌충우돌을 이야기한다. 사람들에게 특정 메시지를 상대적으로 쉽게 전달하면서 맥락에 진입하도록 만들기 때문에 콘텐츠는 계속해서 필요하다고 믿는다.
권은령 제작자로서 나의 메시지를 보여줄 수 있는 것도 좋지만 소비자가 콘텐츠를 통해 자신의 의견을 적극적으로 공유한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요새 사회적 메시지를 담은 콘텐츠가 많아졌다. 내가 게임을 처음 개발하던 2019년만 해도 소셜 임팩트라는 단어가 대중적이지 않았다. 그런데 지금은 시상식 중 소셜 임팩트 부문이 신설된 경우도 있다. 이 현상이 콘텐츠가 선한 영향력을 전하며 사회적 역할을 다하고 있는 현실을 보여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