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금까지 작품 목록을 보면 모두 시대극이라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이 장르를 특별히 선호하는 이유가 있나요.
= 시대극은 결정적인 감정과 벼랑 끝에 몰린 인간의 모습이 자연스레 드러나는 게 매력적이에요. 과거가 가진 한계성이라고도 할 수 있죠. 신분의 족쇄, 사회적 제약 등으로부터 벗어나고 싶어 하는 인간의 격렬한 감정을 표현할 때, 이 일이 재미있다는 생각을 자주 해요. 제 취향이 그래요. 일상의 소소한 지점을 담담하게 풀어내기보다 극적인 상황에서 인간의 본성과 원형을 들여다보는 것에 끌리거든요.
- 학부 시절 사학과를 졸업한 것도 작업 과정에 큰 영향을 줄 것 같은데요.
= 사실… 제가 사학과를 7년 다녔어요. 학사경고를 세번 맞아 3고를 달성하고 4고까지 갔었어요. (웃음) 그러니 작가 생활에 아주 큰 영향을 줬다고 보긴 어려워요. 다만 중고등학생 때부터 영화를 할 거라 생각해서 그 과정에 필요한 인문학적 소양을 쌓기 위해 사학과에 가고 싶었죠. 어쩌다 보니 지금은 시대극을 주로 다루고 있는데, 소재를 알아보는 눈을 키우는 데 도움이 된 것 같아요.
- 광복(일제강점기), 백제 무령왕, 조선 홍길동, 그리고 병자호란까지 작가님은 작품의 배경으로 특정 시점과 인물을 활용하고 있어요. 무수히 많은 역사적 사건 중 각 소재를 선택한 이유가 궁금합니다.
= 먼저 <절정>의 경우, MBC에서 이육사를 주제로 사내 공모전을 열었어요. 큰 주제는 정해져 있었지만, 당시 김진만 책임프로듀서에 따르면 이육사의 이야기를 시와 밀접하게 풀어낸 방향이 좋았다고 하시더라고요. 또 <제왕의 딸, 수백향>은 ‘왕의 딸 이야기를 하면 어떨까?’라는 상상으로 시작했어요. 삼국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간 끝에 무령왕에게 ‘수백향’이라는 숨겨진 딸이 있을 수 있다는 이야기를 찾게 됐죠.
- 역사적 정보 공백에 상상을 덧붙여나가는 방식으로 글감을 찾는 거네요.
= 그렇죠. <역적: 백성을 훔친 도적>도 우연히 자료 조사를 하다가 연산군 시대에 홍길동이 존재했다는 사료를 발견했어요. 그걸 본 순간 심장이 뛰면서 막 흥분되더라고요. 거기서부터 자연스럽게 아기 장수 이야기까지 연결됐어요. 당시 사람들은 왜 홍길동이 섬으로 가서 행복하게 살았을 거라고 믿었을까요? 제 생각엔 실제로 홍길동이 그랬다기보다, 홍길동이 그렇게 살길 백성들이 바라고 염원했던 것 같아요. 홍길동의 몰락이나 실패가 곧 자신의 슬픔처럼 와닿았던 거죠. 특히 연산군 시대에는 폭정과 폭압을 견디던 백성들에게 홍길동의 의미가 더 크게 느껴졌을 테고요. 아기 장수 우투리도 비극적인 영웅 설화잖아요. 그런 면에서 자연스레 연결됐어요. 사실 대중은 역사에 고정된 정서를 갖고 있거든요. 그래서 건드리기 어려운 면이 있어요.
하루는 MBC 이병훈 전 국장님이 이런 말씀을 하시더라고요. 소현세자와 강빈의 이야기는 무척 흥미로운데 너무 비극적이어서 손대기 어렵다고요. 사극 전문가도 이런 말씀을 할 정도죠.
- 그 어려움을 어떻게 극복하려 하나요.
= 풀기 어려운 소재가 많아요. 동학농민운동이나 제주 4·3 사건도 그렇고요. <연인>의 배경인 병자호란도 그렇죠. <연인>의 경우 일부러 영화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를 많이 떠올렸어요. <역적: 백성을 훔친 도적>에 아기 장수 우투리 설화를 떠올렸던 것처럼요. 영화 속의 갈등과 희망, 아름다움을 병자호란의 시대적 상황에 겹쳐두면 어렵게 보이지 않고, 그 시대를 살아간 사람들의 이야기를 설득력 있게 풀어낼 수 있다고 믿었어요.
“독립운동은 무엇으로 하는지 아나? 분노로 하는 거야.” (<절정>)
▼“드라마 작가라는 직업은 굉장히 반복적인 일상을 보내요. 오늘이 어제 같고 내일이 오늘 같거든요. 그런데도 지루하지 않아요. 앞으로도 20년은 거뜬히 반복할 수 있을 것 같아요. 대본을 쓰는 동안 저는 혼자 있지만 혼자가 아니거든요. 여러 사람과 대화를 나누고 다양한 의견을 경청한 느낌이 들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