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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신하은 작가, "드라마를 보면서 마냥 좋은 마음에 부러운 마음이 더해졌다”

오랜 덕질을 드라마 쓰기로 완성

사진 신하은 / <한겨레21> 김진수 선임기자

신하은 작가는 드라마 키즈다. 그는 “어릴 때부터 드라마 보는 걸 정말 좋아했다. 드라마에서 처음이랄 수 있는 작품이 어릴 때 본 <여명의 눈동자>다. ‘철조망’ 신이 단편적으로 강렬한 기억으로 남았다”고 말했다. 어린 시절에는 김수현 작가의 주말 드라마를 보고 컸고, 중고 등학생, 대학생 때는 노희경 작가, 인정옥 작가의 작품으로 그 시절을 보냈다고 한다. 그 뒤 21세기 초반에 ‘로코’(로맨틱 코미디) 부흥기를다 즐겼다. “<아르곤>을 하며 이윤정 감독님 앞에서 호들갑을 떨었던 것도 ‘드라마 키즈’였기 때문입니다. 하하하.” 그는 지금도 드라마를 챙겨보고, 좋아하는 작품은 대본집도 산다고 했다. 작가로 데뷔한 뒤 “드라마를 보면서 마냥 좋은 마음에 부러운 마음이 더해졌다”고 한다. “와, 정말 잘 쓰시잖아요. 임상춘 작가님은 천재인 거 같고….”

드라마를 사랑하는 작가답게, 여러 작품을 두루 보면서 아쉬운 점을 자신의 작품에서는 바로잡으려 한 노력이 보인다. 신하은 작가의 작품은 투박함 속에 따뜻함이 있고, 거기에 한 가지가 더 담겨 있다. 날카로움이다. 투박해 보이는데 고정관념 등을 깨부숴나간다. <갯마을 차차차>를 다시 보면 처음에 따뜻함에 놓친 다른 게 보인다. 유사가 족, 남녀의 관계 설정 변화, 성소수자의 마음을 사랑하는 방식 등이 다. 혜진이 고생한 자신에게 선물한다며 500만원짜리 목걸이를 사는 장면이 나온다. 여느 드라마였다면 이를 본 홍반장이 그의 씀씀이에 실망하거나 이를 계기로 다툴 법하다.

작가는 홍반장한테 이런 대사를 부여한다. “네가 열심히 일해서 번돈으로 너한테 선물하는 건데 왜 내 눈치를 봐.” 신하은 작가는 “여자가 더 잘났다고 해서 남자가 자격지심을 갖게 그리는 것을 깨고 싶었 다. 능력 있는 여성이 자기를 위해 소비하면서 왜 눈치를 봐야 하는가에 대한 질문을 던지고 싶었다”고 말했다. 성소수자 초이한테 사랑 고백을 받은 여화정(이봉련)이 대답하는 장면은 다시 보기를 권한다.

무엇보다 인상적인 것은 유사가족을 얘기하는 부분이다. <갯마을 차차차>에서는 모두가 가족이다. 어릴 때 할아버지를 잃고 혼자가 된홍반장을 온 마을 사람들이 품앗이로 키웠다. 혜진과 ‘새엄마’(로 표현하겠다)가 가까워지는 과정을 표현하는 데도 여느 드라마에서 관행적으로 이뤄지던 것과 다르다. 여기서는 ‘새엄마’가 혜진과 서먹할 수밖에 없는 상황을 그대로 가져가며 그가 딸을 사랑하는 마음을 보여준다. 신하은 작가는 “실제로 사회가 그렇게 돌아갔으면 좋겠다.

정상가족 이런 것 깨져버리고 모든 형태의 사람들이 존재하는 방식이 존중받았으면 하는 마음으로 담았다. 가족애라는 게 혈연이 아니 어도 충분히 생길 수 있다는 것, 혈연보다 뒤늦게 맺어진 가족이 더가족같이 느껴질 수 있음을 보여주고 싶었다”고 말했다. 홍반장이 반말하는 문제도 영리하게 잘 정리했다. “모든 사람한테다 반말하는 것으로 했어요. 그리고 혜진이 부모님한테 그 반말 때문에 때론 한소리 듣게 했죠.” 방영 당시 화제가 됐던 장면에서 마지막 대사는 연출의 아이디어였다고 한다. “너 왜 자꾸 나한테 반말해” 하는 혜진 아버지의 질문에 홍반장은 말한다. “친근하고 좋잖아요.” 이때 홍반장을 몰래 부른 혜진 아빠의 대사는 이렇다. “너나 좋지, 이 ××야.”

성공 이후 러브콜이 주는 고민

사진 <한겨레21> 김진수 선임기자

작가가 따뜻함에 날카로움을 절묘하게 담아낸 데는 그의 이력이 영향을 미치지 않았을까. 신하은 작가는 시인을 꿈꾸던 사람이다. 그는 국문과를 졸업하고 대학원에서 현대시를 공부했다. 짧은 문장 안에 여러 의미를 함축적으로 담아내는 훈련이 돼 있다. 그것이 <갯마을 차차차>에서 적재적소에 필요한 명대사를 만들어내는 데 도움이 됐다. “어릴 땐 막연히 뭐라도 쓰는 사람이 되고 싶었어요. 글짓기에서 상을 되게 많이 받았어요. 그래서 국문과에 가서 뭔가 쓰는 사람이 되리라는 생각을 한 것 같아요.” 그의 작품에는 시집이 자주 등장 한다. <갯마을 차차차>에서 홍반장이 혜진한테 시를 읽어주는 장면은 간접광고 의심도 받았는데, 작가가 고심해서 정했다고 한다.

드라마 작가가 운명이었나보다. 현대시를 공부하던 대학원에서 인문학 축소 분위기가 겹치면서 지도교수가 은퇴했고 공백기가 생겼다고 한다. 그 틈에 작가교육원에 등록해 다니면서 드라마 작가를 꿈꾸게 됐다. 시인 대신 드라마 작가의 손을 잡았지만, 오랫동안 시를 읽고 쓰고 해오던 습관이 작가가 되는 데 도움이 됐나보다. 대본을 써본 적도 없는데 혼자 술술 써서 갔다. “혹시 내가 자질이 있나 궁금 해서 미리 대본을 써봤어요.” 교육원 기초반을 건너 연수반과 전문 반, 창작반까지 한 학기에 두세편씩 대본을 썼고 그것이 자산이 됐다. 오펜에선 태어나서 다섯 번째 썼던 단막극 <문집>으로 당선했 다. “전문반 때 쓴 건데 제가 쓴 것 중 가장 미숙하다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문집>이 당선된 거 보고 자기 검열을 해서 숙련됐다고 생각 하는 것보다 어쩌면 신선하게 쓰는 게 도움이 될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신하은 작가는 <갯마을 차차차> 성공 이후 수많은 러브콜을 받고 있다. 마냥 행복해할 줄 알았는데 드라마를 좋아하고 작업하는 과정도 즐기는 이 작가는 요즘 오히려 더 고민에 빠져 있다. “<갯마을 차차차>도 저 스스로는 원작이 있는 작품에서 출발했기에, 다음 작품에선 오롯이 내 것으로 평가받아야 하지 않나 생각해요. 성실한 것 하나는 자신 있으니까 열심히 써서 좋은 작품 보여드리겠습니다.” 뭐가 됐든 따뜻한 작품이 될 것이다. <갯마을 차차차> 때보다 등장인물이 더 많을 것이라고 한다. “사람은 사람 사이에서 살아야 하듯, 드라마도 오직 사람들 속에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다시 한번 되새김질해보는 신하은 작가의 집필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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