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가 예정된 스튜디오로 김수정 작가가 들어선 순간, 여기저기서 환호의 목소리가 크게 터졌다. 일면식 없는 사이건만 우리는 모두 그를 오랫동안 알고 있었다는 듯 가깝고 친근하게 굴었다. 일면 맞는 말이다. 우리는 어린 시절 그가 만든 이야기 속에서 노래 부르고 춤추면서 자랐다. 비눗방울로 찐빵을 빚고, 무지개로 줄넘기를 하고, 선풍기를 타고 밀림으로 떠나는 여정엔 언제나 둘리가 함께였다. 마흔번의 해가 지나는 동안, 김수정 작가의 시그니처 헤어스타일은 바짝 짧아졌고 둘리는 진한 초록색에서 연두색으로 변했다. 빠른 변화가 역동적으로 이어진 세상에서 ‘길동씨’라는 존칭을 잃지 않는 김수정 작가를 보면서 어떤 세계는 유리병에 담겨 그대로 보존되고 있단 걸 알 수 있었다.
- 1996년 개봉한 <아기공룡 둘리: 얼음별 대모험>이 한국영상자료원 영화 복원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리마스터링되었어요. 이 소식을 처음 전달받았을 때의 소회가 궁금합니다.
= 사실 작업 초반까지는 이 프로젝트에 관해 전혀 몰랐어요. 리마스터링이 한창 진행 중일 때 연락을 받아서 처음엔 적잖이 당황하기도 했고요. 1996년으로 거슬러 올라가면 마스터 필름으로 영화를 제작한 뒤에 필름이 손상되지 않도록 한국영상자료원에 보관을 요청했어요. 시간이 흘러 필름을 재발견하면서 프로젝트 작품으로 선정한 게 아닐까 싶어요. 어쨌든 둘리나라 입장에선 디지털화된 작품을 볼 기회여서 좋았어요. 감사해요. (웃음)
- 리마스터링 작업 과정 중 어떤 점을 함께 논의하셨나요.
= 색감 구현을 특히 신경 썼어요. 노란 계열이 생각보다 많이 들어간 것 같아 작은 아쉬움이 남긴 해요. 리마스터링 프로젝트를 조금 더 일찍 알았더라면 세세한 부분을 더 신경 쓸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하고요. 물론 전체적으로는 무척 만족스럽습니다.
- 리마스터링 버전 중 어떤 장면에서 그 변화가 가장 잘 드러난다고 생각하시나요? 얼음별에 막 도착한 둘리 친구들의 보트가 빙하 사이를 날아다닐 때 입체적인 변화가 느껴지기도 했어요.
= 정확해요! 바요킹과 둘리 친구들이 격전을 치를 때 바요킹 일당이 행진하며 소동을 벌이는 장면이 있는데, 1996년 당시 그 작업 과정이 굉장히 어려웠거든요. 그런데 요소 하나하나를 밝게 하니까 입체감이 훨씬 크게 느껴지더라고요. 특히 우주 신은 원래 상당히 어두웠어요. 리마스터링 과정을 통해 색감이 더 화사해지면서 그림도 더 선명하게 보이더라고요. 이런 변화를 발견하는 재미도 느낄 수 있어요.
- 인터뷰가 시작되기 전, <아기공룡 둘리> 40주년 기념해를 두고 “아무것도 하지 않은 것 같아 미안하다”고 하셨어요. 이 말 안에 담긴 작가님의 속마음이 궁금합니다.
= 40년이라는 세월은 정말 살처럼 지나가는 시간이에요. 7살 때 둘리를 처음 본 아이는 이제 47살의 중년이 되었겠죠. 1983년 만화 잡지 <보물섬>에서 <아기공룡 둘리>가 첫 연재되고 1987년 KBS 애니메이션으로 방영됐다가 1996년에 <아기공룡 둘리: 얼음별 대모험> 극장판이 나오고 2009년 SBS에서 <New 아기공룡 둘리>가 나왔어요. 그다음에 바로 이어 두 번째 극장판을 준비하려 했는데 중간에 프로젝트가 무산됐어요. 제가 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었죠. 둘리의 시간은 나름의 흐름을 만들며 잘 흘러가고 있었는데 갑자기 모든 게 멈춰버린 거예요.
올해 들어서며 주변에서도 많이들 물어보셨어요. “<아기공룡 둘리> 40주년 때 뭐 안 하나요?” 그러면 저는 “하긴 뭘 해요~ 50주년이면 생각해보죠” 하고 답했고요. (웃음) 리마스터링프로젝트도 만 2년 전에 시작했거든요. 몇몇 영화제에서 미리 선보였는데 반응이 꽤 괜찮았어요. 그래서 내부적으로 재개봉 이야기가 나왔고, 공교롭게 40주년에 딱 맞춰진 거죠. 그렇게 시간이 흐르는 동안 저는 둘리를 위해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는 생각이 들어 관객에게 죄송하더라고요.
- <아기공룡 둘리> 인물들에 대해 더 이야기해볼게요. 둘리 시리즈에는 어린이들의 저항심이 중요한 역할을 해요. 극장판에서도 조용히 있으라는 길동의 말에 둘리와 친구들은 나름의 작전을 모색하고, “나를 따르라”는 바요킹의 말에도 쉽게 굴하지 않아요. 이처럼 ‘어른이 만든 규제에서 자유로워지려는 아이들’, ‘스스로 생각하고 선택하는 어린이’를 주요하게 다룬 이유가 궁금해요.
= <아기공룡 둘리>에는 아이부터 어른까지 모든 연령대의 인물이 나와요. 다양한 층위의 관점과 생각을 이야기로 흡수시킬 때 가장 중요한 건 편향된 시각으로 캐릭터를 그리지 않는 거예요. 예를 들어 똑같은 상황이 펼쳐졌을 때 둘리와 길동씨의 반응은 다를 수밖에 없어요. 아이는 아이답게 행동하고 길동씨는 어른의 입장으로 생각할 테니까요. 그런데 아동물이라고 해서 어른도 아동스럽게 그리는 경우가 있어요. 냉정하게 각자의 자리에서 캐릭터가 할 수 있는 대처법을 그려줘야 하거든요. 그런 면에서 둘리는 너무나 아이답죠. 자신을 제어하려는 어른의 말을 무작정 따르거나 순응하지 않으니까요.
아이들은 자신이 무언가로부터 억압받고 있다는 사실을 느끼고 알고 있어요. 자기 나름의 생각과 판단도 있고요. 그래서 둘리가 또래 어린이들에게 전폭적인 지지를 받았던 것 같아요. 다만 이 어린이들이 점점 어른 세대로 진입하면서 길동씨에게 서서히 이입하고 있죠. 처음에는 자신도 둘리처럼 놀고 싶고 둘리처럼 행동하고 싶었는데 어느덧 그게 어려워 보이는 거예요. 아이들의 끊임없는 요구와 말썽이 힘겹잖아요. 그래서 길동씨를 더 응원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요. 상황은 변하지 않았어요.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이 변한 거죠.
- 극장판 리마스터링 재개봉을 기념해서 쓴 손편지를 보았어요. ‘오랜 시간 울고 웃으며 둘리와 함께했던 순수한 유년의 시간을 밀어내고, 우리 가슴속에는 어느새 길동씨가 전부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중략) 길동씨를 이해하면 어른이 된 거라고요? 정말 그럴까?’라는 질문을 남겼어요.
= 길동씨를 이해한다고 내가 어른이 된 건 아닐 거예요. 오직 관점이 변했다고 해서 어른이 되는 건 아니니까요. 그런데 저는 그렇게 생각해요. 모든 사람이 길동씨의 피로를 이해하는 어른이 되었지만, 그럼에도 동심을 계속 가져갔으면 좋겠다고요. 어릴 때 봤던 둘리의 모습을 지금도 간직하면 좋겠어요. 천진하고 낙천적이고 때에 따라 정의를 위해 저항도 하는 그런 순수한 모습을 잊지 않길 바라요.
- 작가로서 이런 독자의 변화가 아쉽게 느껴지기도 하나요.
= 변하는 건 아주 자연스러운 거니까요. 현실은 현실이죠. 하지만 각자 마음에 저장된 아이다움도 잊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제 바람이에요.
- 사실 유아동 애니메이션에서 둘리만큼 삐딱한 캐릭터는 흔치 않거든요. (웃음) 어떤 면에서 둘리는 어린이 시청자에게 과감하게 ‘아니요, 싫어요’라고 말하는 레퍼런스가 될 것 같아요.
= 본래 둘리를 그리게 된 이유가 바로 그것 때문이에요. 하도 어른들이 ‘아니요’, ‘싫어요’라고 말하는 것을 비교육적이라고 생각하면서 아이들을 제어하고 통제하잖아요. 그래서 그것이 틀리다는 것을 보여줄 인물을 찾아서 역할을 맡긴 거죠. 80년대는 만화를 향한 심의와 검열이 정말 심했어요. 그 심의와 검열도 대부분 어른의 입장과 관점에서 이뤄졌고요. 그런데 제가 본 어린이들의 세상은 너무 달랐어요. 꿈도 꾸고, 실수도 저지르고, 싫다고 자기 의견을 피력하면서 성장하죠. 말 잘 듣고 예의 바른 아이를 만들기 위해 그 성장 자체를 제어해버리는 건 문제가 있다고 생각했어요. 그건 이미 어른이 돼버린 이들의 시선이잖아요. 그래서 심의와 검열을 피하려고 사람이 아닌 동물로 그렸고, 아이들의 감성을 그대로 삽입했어요.
- 심지어 반려동물이 아닌 공룡을 선택하셨죠.
= 맞아요. 게다가 공룡은 인류가 무서워하는 동물이에요. 인간이 쉽게 통제할 수 없죠. 그런데 이 안에는 변치 않는 전제가 있어요. 어떤 종이든 아기들은 다 예쁘다는 거예요. 둘리가 나오기 전까지만 해도 아이들 대부분이 공룡을 무서운 동물로만 인식하고 있었고요. 그래서 육식동물인 케라토사우루스가 순진하고 귀여운 모습을 하고 있는 걸 반전처럼 보여주고 싶었어요.
- 극장판 <아기공룡 둘리: 얼음별 대모험>에 인상적인 대사가 있어요. 바요킹 부하들과 싸우던 도우너와 공실이가 “해적 독재 타도!” 하고 외쳐요. 어른이 아닌 어린이들에게 이 대사를 주었어요.
= 당시 사회적 상황을 반영하려 했어요. 그런데 둘리를 통해 너무 진지하게 연출하면 만화의 맥락과 안 맞아서 아이들이 생각해볼 만한 힌트 정도로 그려냈죠. 어린이들이 독재가 무엇인지, 바요킹의 행동 중 무엇이 독재적인지 돌이켜볼 수 있을 테니까요. 극 안에서 영혼들은 모두가 평등한데 바요킹이 계급사회를 만들어요. 모든 것을 무력을 통해서만 얻어내는 군주 독재죠. 아이라고 해서 아무 생각 없이 사는 게 아니라 나름의 사회적 욕구가 있다는 속내를 비추고 싶었어요.
- ‘둘리 시리즈’에는 사회상을 반영한 블랙코미디가 자주 등장하는데요, 사회를 비판하는 자세를 만화가의 미덕이라고 여기기 때문인가요.
= 작가마다 다른 것 같아요. 그런데 저는 어려서 가난한 환경에서 자랐어요. 시쳇말로 흙수저 중의 흙수저였죠. 그러다 보니 사회적 불평등이나 불공정한 것들을 저도 모르게 표현하게 되는 것 같아요. 실질적인 아픔을 알아차리며 지냈으니까요. 만약 제가 부유한 집에서 태어났다면 그런 생각이 부족했을 수 있겠죠? (웃음)
- 둘리의 어린이성을 수호하기 위해 최소한 지키려 한 작가님만의 약속이 있다면요.
= 둘리 만화가 연재되고 나서 처음으로 굿즈가 나왔어요. 카드나 엽서 같은 팬시 제품과 아이스바 같은 것들이요. 캐릭터 상품을 만들 때 가장 중요하게 여긴 건 교육적인 면이었어요. 둘리를 친구처럼 여기는 아이들에게 해가 되는 것은 절대 만들지 않겠다는 걸 철칙으로 여겼거든요. 한번은 한국담배인삼공사(KT&G)의 전신인 전매청에서 연락이 왔는데, 청소년을 위한 순한 담배를 만들어서 마이콜을 모델로 세우자고 하더라고요. 아이들이 담배를 너무 많이 피우니까 차라리 폐해가 덜 가는 모델을 만들자는 내용이었어요. 그때 너무 놀랐죠. 발상 자체가 놀라웠고, 마이콜을 그 제품의 모델로 쓰고 싶다는 말에도 굉장히 당황했어요. 사실 그 당시 저도 담배를 많이 피웠거든요. (웃음) 그래도 절대 안된다고 했죠. 또 얼마 전에는 둘리를 마약 금지 홍보대사로 쓰자는 이야기를 들었어요. 물론 금지 홍보대사지만 그냥 둘리가 그런 것들과 함께 있는 것을 견디기 힘들더라고요. 둘리를 순수한 친구 그 자체로 보호하고 싶어요.
- 캐릭터를 지켜내는 게 작가의 중요한 의무이기도 하겠네요.
= 막연한 애정으로만 보호할 수 없어요. 이 캐릭터가 가진 이미지를 어디까지 설정할 것인가를 이해하는 게 굉장히 중요하죠. 지금까지 둘리와 40여년을 함께하면서 알게 모르게 제 안에서 룰이 만들어진 거예요.
- 영화 <기생충>을 인용한 둘리 패러디 포스터가 등장하기도 했어요. 누군가는 길동의 집에 얹혀 사는 둘리와 친구들을 기생충으로 생각했던 듯해요. 실제로 ‘민폐 여부’를 세세하게 점검하고, 조금이라도 손해 보면 ‘호구’라 부르는 세상입니다. 이러한 사회적 분위기 속에서 둘리의 이야기를 다시 보는 게 어떤 의미가 있을까요.
= 둘리가 처음 만들어진 40년 전에는 집집마다 형제가 많았어요. 누군가가 상경해 성공하면 육촌까지도 더부살이하는 경우가 꽤 많았고요. 서로 의지하며 사는 게 당연한 시절이었어요. 그러니 둘리가 길동씨 집에 함께 살게 된 것도 어떤 부분에서는 굉장히 일상적인 풍경이죠. 심지어 둘리는 아기잖아요. 아직 어리단 말이에요. 길동씨가 혼내면 집 밖으로 도망가기도 하고 무서워하기도 하고 엄마를 그리워하기도 하고요. 그런 모습을 길동씨가 보고서 내치는 게 더 이상하죠. 길동씨의 개별적인 성격과 별개로 당시의 타인을 포용하던 사회적 분위기라 가능했어요. 그런데 또 현대사회라고 무조건 냉소적이라고 생각하지 않아요. 과거에 비해 요즘엔 반려동물을 가족처럼 여기는 분위기잖아요. 애완동물이라 하지 않고 반려동물이라고 하고요. 그래서 <아기공룡 둘리: 얼음별 대모험>에서 길동씨도 같은 식탁에서 둘리가 밥 먹는 걸 못 견뎌하거든요. (웃음) 요즘엔 그렇지 않죠. 그래서 어쩌면 지금 길동씨와 둘리가 만났으면 더 다정했을지 몰라요. 40년이 흐르는 동안 사람들이 오직 쌀쌀맞게만 변하진 않았거든요.
- 다른 캐릭터를 더 이야기해보고 싶어요. 마이콜의 정체가 궁금합니다. 마이콜은 사실 성인 아닌가요? 왜 자기 또래가 아닌 어린이들과 놀고 있는 걸까요.
= 성인일 수도 아닐 수도 있어요. (웃음) 그 시대에 전자 기타를 치고 다닐 정도면 있는 집 자식이거든요. 통기타도 구하기 힘든 시대였으니까요. 사실 마이콜이란 캐릭터를 설정할 때 마음속으로 스무살이라고 생각하긴 했어요. 순수할 때죠. 완전한 성인도 청소년도 아닌, 어중간한 시기잖아요. 그래서 둘리에게나 길동씨에게나 이래저래 휘둘려요. 제가 생각한 스무살이 그랬던 것 같아요. 아직 사회에 나가기 전이지만 아이는 아니어서 설익은 부분이 있는 존재들이요. 그래서 이리 치이고 저리 치여도 시종일관 해맑게 노래 부를 수 있는 거예요. 저는 모든 캐릭터 통틀어 마이콜이 가장 순수하다고 생각해요.
- 그 ‘순수할 수 있음’의 근원 중 부유한 가정환경도 있겠죠.
= 그렇죠. 다른 거 다 필요 없고 막연히 유명 스타가 되고 싶어 하잖아요.
- 그런데 또치는 친구들 사이에서 가장 눈치 보고 상황마다 민감해 보여요.
= 서커스단에서 자랐잖아요. 사회 경험이 있는 어린이다 보니 상황 판단이 빠르고 눈치를 많이 보죠. 그에 반해 도우너는 완전 막무가내예요. 한번 입력된 걸 잊지 못해요. 길동씨를 주야장천 애완동물이라고 부르는 것도 그런 면에서 비롯한 거죠. 둘리는 이 두 인물의 성격을 각각 갖고 있어요. 그래서 둘리가 보편적인 아이의 모습이라는 거예요. 도우너나 또치의 인물 설정에 비하면 특별할 게 없거든요. 그래서 둘리에게 초능력을 주었죠. 너무 평범하니까. 여기에 희동이까지 합류하면서 이 꼬맹이 악당들의 조화가 이뤄졌다고 볼 수 있어요.
- 극장판의 엔딩은 KBS TV판과 다른 슬픔을 지녔어요. TV판에서는 희동이 때문에 엄마와 억지로 헤어질 수밖에 없었거든요. 당시 희동이에게 질타의 화살이 돌아가기도 했는데요, 극장판에서는 지금은 엄마와 헤어지지만 언젠간 다시 만날 기약이 있다는 것을 확인해주면서 어느 누구의 탓으로 돌리지 않아요. 두 모자가 이별할 충분한 시간을 주기도 하고요.
= TV판이 방영된 당시에도 그런 질문을 많이 받았어요. 사실 스토리 진행에 있어 둘리 모자의 이별은 필연적이에요. 희동이가 둘리를 데려오지 않으면 둘리는 영영 그곳에 있어야 하잖아요. 그러니 희동이 잘못이 아니에요. 오히려 작가가 못된 거죠. (웃음) 또 희동이가 따르는 건 둘리가 유일하기 때문에 이 둘이 떨어져 살 수 없기도 하고요. 극장판에서도 엄마와 공실이가 머무는 곳이 죽은 자만이 살아가는 영혼의 별이거든요. 엄마와 둘리가 함께 살려면 더 큰 전제가 필요하죠. 그렇기 때문에 현실 세계로 돌아가야만 해요.
- 불혹의 사전적 의미는 ‘세상일에 정신을 빼앗겨 판단을 흐리는 일이 없는 나이’라고 해요. 둘리의 불혹을 기점으로 지난 시간을 돌아본다면 지천명은 어떻게 맞이하고 싶으신가요.
= 둘리가 지천명을 맞이할 때까지 여러분 가슴속에 둘리가 여전히 살아 있을지는 확신할 수 없어요. 하지만 둘리에 대한 기억을 지속시키기 위해서는 무언가를 해야겠죠. 아마 둘리 나이 47살 즈음부터 실행을 해야 50살에 짠 하고 기념할 수 있을 거예요. 그래서 무언가를 해야 한다는 생각은 들지만 영상 작업은 저 혼자만 마음먹는다고 쉽게 되는 게 아니더라고요. 자본과 조직, 시스템이 필요하거든요. 조금 더 구현 가능성이 높은 출판으로 먼저 시작하고 애니메이션이든 시리즈든 그다음에 판단할 수 있을 듯해요. 한국 시장에서 지속적으로 영상물을 만든다는 게 정말 쉽지 않아요. 하지만 그게 제가 할 일이라 생각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