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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작은 변화가 사회 전체를 변화시킨다, ‘엘리멘탈’ 피터 손 감독
임수연 2023-06-15

<엘리멘탈>은 1960년대 후반 미국으로 이민 갔던 피터 손 감독의 부모로부터 시작한 영화다. 식료품 가게를 운영하며 미국 사회에 자리 잡은 한국인 이민자 가족의 정체성이 영화 전반에 투영돼 있다. 물, 불, 공기, 흙 등 각기 다른 원소가 사는 엘리멘트 시티에서 불을 담당하는 앰버(리아 루이스)는 주류에서 밀려나 있는 아웃사이더다. 앰버가 엘리멘트 시티의 상류층이라 할 수 있는 물 원소 웨이드(마무두 아티)와 사랑에 빠지는 스토리는 피터 손 감독이 한국인이 아닌 여성과 결혼한 사연에서 출발했다. 이처럼 감독의 개인적 경험에서 출발한 프로젝트지만 피터 손 감독은 <엘리멘탈>이 보다 보편적인 테마를 담은 작품이 될 수 있도록 심혈을 기울였다. 영화 홍보차 한국을 찾은 피터 손 감독을 만나 <엘리멘탈> 제작의 비하인드를 들었다.

- 한국에서 온 이민자라는 정체성이 영화의 시작점이 된 것으로 안다.

= 어릴 적 나는 나의 부모가 이민자라는 것을 몰랐다. 너무 순진했던 것이다. 하지만 그들이 다른 문화권에서 왔다는 것은 알고 있었다. 그리고 나이를 먹으면서 우리 가족이 아웃사이더라는 것을 깨달았다. 하지만 이는 뉴욕과 같이 다양한 집단이 공존하는 공간에서 살아간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다양성은 여러 가지를 내포하는 주제다. 개인적 경험에서 출발했지만 <엘리멘탈>은 보다 보편적이고 다양한 테마를 품을 수 있는 영화가 됐다.

- <엘리멘탈>에 영감을 줬다고 알려진 주기율표에는 굉장히 많은 원소가 나열돼 있다. 세상을 이루는 수많은 요소 중 물, 불, 흙, 공기를 선택한 이유가 무엇인가. 그리고 주류 사회에서 밀려나 환영받지 못하는 존재를 ‘불’의 이미지로 상상한 이유도 궁금하다.

= 두 가지 측면에서 이야기하겠다. 먼저 원소 주기율표는 다양한 가족이 모여 사는 아파트 단지를 생각나게 했다. 하지만 세상엔 너무 많은 원소가 존재하기 때문에 사람들에게 이 비유를 언급할 때마다 “그럼 크롬은 뭐지? 탄소는 뭐지?”라며 혼란스러워했다. 인류를 원소에 빗대 설명하는 것은 너무 어려웠기 때문에 네개의 고전적인 물질을 떠올렸다. 내가 사람들에게 물, 불, 흙, 공기에 빗대 이야기하자 그제야 사람들은 스토리를 이해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불은 사물을 변화시키지 않나. 세상을 바꿀 수 있는 불의 속성이 무척 마음에 들었다. 더불어 불은 실제 나의 가족을 떠올리게 한다. 어머니는 매운 음식처럼 무척 다혈질인 사람이었다. 개인적인 기억이 씨앗이 되고, 씨앗에 싹이 트면서 그들만의 방식으로 진화했고 그렇게 구체적인 캐릭터가 탄생했다.

- 작품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팬데믹을 겪어야 했다. 아이템 개발 및 프로덕션 과정에서 코로나19라는 변수가 작품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

= 나는 사람들과 어울리는 것을 좋아한다. 그것이 일을 하는 데도 꼭 필요하다. 평소 사람들과 대화할 때 제스처를 많이 쓰는 편인데 재택 근무를 하면 이런 신체 언어를 사용하지 못한다. 우리는 코로나19 때 집에서도 애니메이션 작업을 할 수 있는 돌파구를 찾았지만 팬데믹이 끝난 뒤 회사로 복귀하면서 중요한 사실을 깨달았다. 우연한 영감은 실제 모여서 일을 할 때 발견될 가능성이 더 높다. 방 안에서 줌으로 소통할 땐 실수가 거의 일어나지 않지만, 사고 덕분에 얻을 수 있는 아이디어도 있기 때문이다. 결국 삶을 완성시키는 것은 놀랍도록 행복한 사고다.

- 물, 불, 흙, 공기 등은 시각적으로 구체화하기 어려운 것들이다. 이들의 특성을 담아낸 애니메이션 캐릭터들은 어떤 고민을 거쳐 탄생하게 됐는지 궁금하다.

= 먼저 각 원소에서 연상되는 이미지를 나열해보았다. 불은 화를 잘 내는 성격과 어울린다. 예술적 열정, 낭만, 창의적인 불꽃을 연상케 한다. 물은 차갑고, 비와 구름을 만들기 때문에 날씨와 연관이 있다. 여기서부터 캐릭터를 만들어나갔다. 서로 달라 보이는 속성을 모자이크하듯 연결하면서 <엘리멘탈>의 초기 캐릭터 설정이 나왔다. 그리고 질문을 던졌다. 왜 앰버는 분노에 찬 캐릭터인가? 그는 열정을 갖고 있는 예술가에 가까울까? 만약 주인공의 부모가 다른 나라에서 온 이민자라면 주인공에게 정체성의 문제가 반영된다. 만약 주인공이 가난하다면 이는 사회적 이슈로 연결될 수 있다. 만약 주인공이 가게를 운영한다면 그는 자신의 진로를 고민하게 될 것이다. 처음엔 1차원적인 요소만 갖고 있었지만, 심도 깊은 주제가 들어오기 시작하면서 캐릭터들이 점점 구체화되어갔다.

- <엘리멘탈>은 앰버와 웨이드의 사랑이 도시의 구조적 문제를 해결한다거나 전복하는 방향으로 전개되는 대신 가족의 이야기로 마무리된다. 사회 담론을 촉구할 수 있는, 훨씬 거대한 이야기로 만들 수도 있었을 법한데.

= 엘리멘트 시티를 나간다거나, 불을 질러서 도시 전체가 불타는 버전의 시나리오도 있었다. 이 또한 흥미로운 시나리오였지만 현실감 없게 다가왔다. 우리가 살고 있는 세계에서 이런 엔딩은 의미 있는 해결책을 주지 못한다. 그리고 우리가 찾는 답은 사소해 보이지만 중요한 한 걸음에 있었다. 앰버의 아버지가 “오, 물이 불을 구했어”라고 말하는 진실된 순간 같은 것 말이다. 작은 변화가 모이면 사회 전체도 달라질 수 있다.

- 유년 시절, 당신이 이민자 가족으로서 경험한 것과 기억하는 것 외에 최근의 개인사나 미국 사회의 이슈가 <엘리멘탈>에 미친 영향도 있나.

= 영화를 만드는 7년 동안 미국 대통령이 두번 바뀌었다. (웃음) 세상엔 많은 변화가 있었고 우리도 반응하지 않을 수 없었다. 하지만 어느 순간, 우리는 이들을 직접적으로 작품에 투영하겠다는 생각을 멈추었다. 왜냐하면 세상은 예상하지 못한 방향으로 계속 달라질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처음 <엘리멘탈>에 영감을 준 부모님, 주기율표와 같은 아이디어를 어떻게 캐릭터와 스토리에 녹여낼 것인가에 집중했다. 그들은 이 프로젝트가 바라보는 북극성 같은 역할을 하며 여정 내내 우리의 길잡이가 됐다.

- <미나리>부터 넷플릭스 시리즈 <성난 사람들>까지, 최근 할리우드 시스템에서 제작되는 아시안 디아스포라 영화의 지형도에서 <엘리멘탈>이 어떤 의미를 갖는다고 생각하나.

= 나는 한국계 미국인이고, 이러한 정체성이 영화에 녹아들 수밖에 없다. 동시에 이 영화에는 한국계 미국인 감독의 정체성뿐만 아니라 다양한 문화권의 창작자들의 목소리가 반영돼 있다. 여러 아시안 디아스포라 영화의 교집합에 <엘리멘탈>이 있다고 생각한다. 더 많은 사람들이 <엘리멘탈>에 공감할 수 있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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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제공 월트디즈니 컴퍼니 코리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