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대엽, 김민향, 김석우, 김윤아, 김형옥, 반세범, 봉준호, 이동훈, 이병훈, 이혁래, 임훈아, 장은심, 최종태. 2023년 현재, 사는 곳도 하는 일도 각기 다른 13명의 중년은 30년 전, 영화연구소 ‘노란문’의 멤버로 불렸다. 1990년대 초, 서울 서교동 경서빌딩 202호에 꾸린 동아리방에서 손에 잡히지 않는 영화를 공부하며 청춘을 보냈다. 이들 중 영화 연출의 길을 걷기로 한 이혁래 감독이 그리운 동료들을 카메라 앞에 세워 노란문과 그 시절을 추억한다. 지난 10월27일 넷플릭스에서 노란문이 다시 열렸다.
<노란문: 세기말 시네필 다이어리>(이하 <노란문>)는 돌아갈 수 없는 그 시절에 대한 애수와 향수가 깊이 밴 다큐멘터리로, 영화에 대한 갈증으로 목말라하는 이들이 감지됐던 1990년대 한국 시네필 문화를 고스란히 전달한다. 연출 분과에 들어가 영화감독을 꿈꾸던 청년 봉준호의 첫 작품 <룩킹 포 파라다이스>의 흔적을 그러모으는 영화이기도 하다. 졸작이라 영원히 숨기고 싶다던 봉 감독의 진짜 데뷔작이 짓궂고 다정한 동료들에 의해 정체가 드러나는 과정을 지켜보는 묘미가 있다. 외부자의 시선을 견지하고자 카메라의 바깥 자리를 고수했던 이혁래 감독은 어쩌면 힘껏 좋아했던 기억만으로도 충분하다는 멤버들의 공통된 미소를 렌즈 너머로 보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노란문> 공개를 맞아 지난 10월28일 ‘모여라 시네필: 세기말 영화광과 21세기 시네필의 만남’ 행사가 열렸다. 김홍준 한국영상자료원 원장이 진행한 이번 대담에는 이혁래, 봉준호 감독 등 노란문 멤버들과 선배들을 존경 어린 눈빛으로 바라보는 후배 시네필들이 참석했다. 이번 프로젝트의 출발에 관한 질문에 이혁래 감독은 “노란문 30주년 기념 술자리에서 옛이야기를 하다가 여기까지 오게 됐다”며 초반의 어색함을 풀었다. 곧바로 후배 시네필과의 질의응답이 이어졌다. 추천할 만한 영화나 영화 책이 있느냐는 질문에 김홍준 원장이 쓴 <영화에 대하여 알고 싶은 두세 가지 것들>이라는 답변이 나와 화기애애한 분위기가 이어졌다. 멤버들은 미켈란젤로 안토니오니의 <여성의 정체>와 테리 길리엄의 <브라질>이 각각 ‘바디 우먼’과 ‘여인의 음모’란 “불순한 제목” (봉준호)을 달고 한국에 출시된 적 있다는 정보를 나누며 비디오 문화에 대한 추억에 잠시 빠지기도 했다. 자리는 후배들이 영화 만들기에 대한 조언을 구하는 고민 상담으로 무르익었다. “나를 즐겁게 하는, 내가 보면서 흥분할 수 있고 빠져들 수 있는 영화를 만드세요. 내가 너무 보고 싶은 영화인데 아무도 안 찍어주니까 내가 만들어버리겠다는 마음으로 해보세요.” (봉준호) 시네필들의 고백과 조언에 이어 이혁래 감독의 인터뷰와 이용철 평론가의 1990년대 시네필에게 부친 편지도 함께 전한다. 영화를 사랑했던 시간을 향해 활짝 열린 문은 아직 닫히지 않은 채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
*이어지는 기사에서 <노란문: 세기말 시네필 다이어리> 기획이 계속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