웃는 학생들의 등굣길로 시작해서 국화가 떠다니는 바다로 끝나는 영화를 보고 어떤 말을 할 수 있을까. <바람의 세월>은 그런 영화다. 딸 문지성양을 참사로 잃고 카메라를 든 아버지 문종택 감독과 세월호 참사를 다룬 옴니버스 다큐멘터리 <망각과 기억2: 돌아 봄>에서 <세월 오적>을 만든 김환태 감독이 공동 연출했으며 세월호 참사 10주기를 맞아 지난 4월3일 개봉했다. 두 감독을 포함한 미디어 활동가들이 끈질기게 모은 3654일간의 기록을 시간순으로 펼쳐놓는 이 작품은 영상 아카이브 자체로서 큰 의미를 지닌다. 그간 ‘4·16 세월호 참사 진상규명 및 안전사회 건설 등을 위한 특별법’(이하 특별법) 등 제도 마련을 촉구해온 세월호 유가족들을 활동가로서도 주목하며 피해자들을 피해자 프레임에서 해방하고자 하는 노력이 돋보인다. 인터뷰 당일, 스튜디오 분위기가 무거울 거란 예상은 초반부터 빗나갔다.
사진 촬영을 위해 카메라 앞에 선 문종택, 김환태 감독은 007 포즈까지 취하며 사진기자의 “좋다”는 환호를 그 어떤 배우보다 많이 받았다.
- 촬영 때 보여준 감독님들의 환상 호흡에 깜짝 놀랐다. 두분의 인연은 언제부터 시작됐나.
김환태 2016년 말에서 2017년 초로 기억한다. 나와 15년 된 절친한 형이자 세월호 가족들과 작업해온 고 박종필 감독이 촬영을 나간 촛불집회에서 아버님을 처음 뵀다. (문종택 감독을 바라보며) 근데 우리가 가까이 얘기하는 사이가 된 지는 얼마 안되지 않았나요?
문종택 사실 지금도 말을 많이 하는 사이는 아니야. (웃음) 눈으로 잘 얘기하면 됐지. 환태 감독의 첫인상은 지금과 같다. 물고 늘어질 줄 아는 사람. 그래서 내가 육체노동이라고 할 만큼 고된 이 작업의 파트너로 환태 감독을 선택했다.
- 영화의 시작점이 궁금하다. 그동안 문종택 감독이 자신의 유튜브 채널 세월호 유가족 방송 <416TV>에 올린 5천여개의 영상은 어떻게 영화로 만들어진 건가.
문종택 세월호 참사 8주기가 지나면서부터 주변 미디어 활동가들에게 이런 얘기를 꽤 들었다. 그동안 찍어놓은 걸 영화까지는 아니더라도 한데 모아서 남겨놓으라고. 당시 내 고민은 하나였다. 이젠 하다 하다 영화까지 만드는 거냐는 소리를 듣고 싶지 않았다. 그런데 김일란 감독(<바람의 세월> 총괄 프로듀서)이 용기를 줬다. “아버님, 이런 기록 자체가 있다는 걸 모르니 알리셔야 해요.” 그 말을 듣고 나서 슬슬 시동을 걸었다.
김환태 작업 관련해서 아버님에게 연락받은 게 2022년 10월이었다. 그러고 나서 7테라바이트 넘는 분량의 기록물을 건네받았다. 광화문, 목포, 팽목항, 동거차도 등 공간별로 한번 추려서 주신 거였는데도 그 정도였다. 아버님의 영상을 기본으로 1인미디어 ‘미디어몽구’님의 참사 초기 자료, 4·16연대 미디어위원회에서 아카이빙한 자료, 그리고 내가 찍어둔 것까지 모였다. 정리보다는 흐름을 잡는 게 쉽지 않았다. 10주기를 맞은 가족들의 마음이 잘 드러나야 한다는 기조 아래 2014~15년까지의 초기 부실 대응, 이후 특별법 제정과 세월호참사특별조사위원회 구성을 둘러싼 투쟁, 문재인 정부 들어 유가족이 점차 외면받는 과정을 골자로 잡았다. 1년 반 동안 내용을 넣고 빼고 하는 작업을 수도 없이 반복했다. 박근혜 전 대통령의 탄핵 소추안이 가결된 순간으로 영화를 본격적으로 시작한 건 아버님의 의견이었다. 아버님이 그날 국회 앞 환희의 풍경을 가장 인상적인 장면으로 꼽아주셨다.
문종택 언론에서 항상 우는 장면만 비추니까 그렇지 우리 엄마, 아빠들 원래 그렇게 웃을 줄 아는 사람들이다.
- 법률가, 활동가, 문화생산자로 활동하는 유가족의 모습을 보면서 피해자 아닌 유가족들의 삶에 대해 생각하게 됐다.
김환태 시스템 개선을 바라는 과정에서 부모님들이 실제로 법을 공부하고 촬영법을 익히면서 각 분야의 전문가들이 되신 만큼 그 모습들도 집중해서 보여주고 싶었다. 가족들이 끊임없는 좌절과 배신 속에서 그 어려운 길을 다들 가시려고 한다. 아버님이 극 중 내레이션으로 강조하셨듯 당신들이 겪으신 일이 우리 사회에서 다시 일어나질 않기를 바라는 마음이 없으면 불가능한 일이다.
- 분노와 그리움이 섞인 문종택 감독의 내레이션을 잊기 힘들다. 지금과 같이 절제된 버전이 나오기까지 수많은 재녹음 과정이 있었을 거라 짐작한다.
문종택 한번에 끝냈다. (김환태 감독이 “워낙 장난기가 많으셔서”라고 말을 받자) 하라는 대로 했는데도 환태 감독이 계속 다시 하라고 하니까. 속으로 그럼 어디 네가 해봐라, 라고 말하면서 열심히 했다.
김환태 말씀만 저렇게 하시는 거지 10년의 세월을 마주보기가 정말 힘드셨을 거다. 아버님께서 당신 채널에서 방송한 경력이 꽤 되다 보니 목소리 톤이 좋으시고 이 영화는 곧 아버님의 기록이니 아버님의 좋은 목소리를 담고 싶었다. 초반 녹음 땐 격앙된 느낌이 강했으나 담담하게 회고하듯 해주시는 것이 관객들이 영화를 받아들이는 데 도움이 더 될 것 같다는 피드백을 드리니 최종에 이르러선 잘 소화해주셨다. 그래서 말씀드리고 싶다. (문종택 감독을 바라보며) 잘하셨어요. 정말 잘하셨어요.
- 후반부에 5·18민주화운동 유족들이 세월호 참사 유족을 위로하고, 세월호 참사 유족이 이태원 참사 유족을 위로하는 장면이 있다. 뭉클한 동시에 위로의 순간에 국가는 빠져 있다는 사실이 극명하게 드러난다.
김환태 국가 시스템의 부재가 피해자들끼리 서로 위로할 수 없다는 상황을 만들었다. 이 비극적 연결을 명확하게 보여줄 필요가 있어 연대의 순간을 뒤에 배치했다. 이와 관련해선 아버님이 할 말이 많으실 거다.
문종택 (침묵 끝에) 새벽마다 잘 안 보이는 별을 찾으면서 우리 사회가 왜 이렇게 변하지 않을까에 대해 생각한다. 변화를 위해 노력하겠다고 마음먹고 말로 하는 데서 끝나니까 그런 거다. ‘잊지 않고 기억하겠습니다’라는 말씀, 여전히 감사하다. 그러나 이제는 ‘행동하겠습니다’라는 말이 나와야 한다. 행동하면 잊지 않는 것은 저절로 따라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