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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경원 편집장] 여기 당신의 영화제가 도착했습니다.
송경원 2024-05-10

여기저기서 심란한 소식만 들려온다. 개봉 13일 만에 800만 관객을 돌파한 <범죄도시4>는 80% 넘는 상영 점유율을 차지하며 (정말 오랜 만에) 독과점 논란에 불을 지폈다. 전주국제영화제에서 열린 ‘한국영화 생태계 복원을 위한 토론회’에서 이를 두고 신랄한 비판이 이어졌는데, 틀린 말 하나 없었지만 10년 넘게 똑같은 지적이 이어져도 바뀌는 것 하나 없는 현실 앞에 분노보다는 무기력감이 느껴졌다. 그 와중에 1958년 개관 이래 66년간 충무로를 지켰던 대한극장의 폐업 소식은 마치 어떤 신호탄처럼 들려 무섭다. 슬픔을 느낄 새 없이 발밑이 무너지는 것 같은 불안이 스멀스멀 차오른다.

위험신호가 도처에서 울리는데 불을 끌 소방수도 없다. 영화진흥위원회 등 공공기관은 벌써 한참 동안 기관장 없이 방치 중이고, 문화체육 관광부는 갖은 명목으로 예산을 줄이는 데 몰두하고 있다. 최근 가장 눈에 띄게 타격을 받은 곳은 영화제인데, 39개 영화제에 지원하던 예산은 10개로 축소됐고 그마저 대부분 액수도 줄었다. 극장가도 별반 다르지 않다. <서울의 봄> <파묘> <범죄도시4>까지 연이어 흥행작들이 극장가를 장식했지만 관객을 극장에 머물게 했던 낙수효과는 진즉에 사라졌다. 양극화가 뚜렷해진 극장가는 전보다 더 춥고 삭막하다. 사방을 둘러봐도 어디서부터 뭘 어떻게 건드려야 할지 모를 지경의 총체적 난국이다.

복잡한 머리를 싸매고 전주국제영화제에 왔다. 이 글은 전주에서 쓰기 시작했다. 이 점을 꼭강조하고 싶다. 전주의 조용한 카페 구석에서 볕을 받으며 생각을 써내려가다 보니 어떤 골치 아픈 일도 어떻게든 풀릴 것만 같다. 착각, 망상, 도피와는 다르다. 글에는 (작성된) 공간의 기운이 묻어나는 법이다. 영화제의 공기, 영화를 향한 들뜬 에너지가 지금 이 글을 이끌고 있다. 적어도 그 방향이 암울하고 막막한 쪽은 아닌 것 같다. 만약 한국영화가 끝내 살아남아 역할을 다한다면 그 답은 영화제에서 미리 엿볼수 있다고 생각한다. 말하자면 이곳은 영화의 과거이자 미래다.

극장을 넓고 길게 확장하면 영화제가 될까. 극장 안에 들어서는 순간 다른 세계가 펼쳐지는 것처럼, 영화제의 시간은 다르게 흐른다. 여기서 영화를 보면 같은 작품이라도 감정의 결이 한층 더 깊고 뜨겁게 진해지는 것 같다. 착각일 지도 모르지만 이런 기분 좋은 착각이라면 꿈에서 깨고 싶지 않다. 만드는 단위에서의 영화가 시간을 조각하는 예술이라면 보고 즐기는 단위에서의 영화는 공간과 대화하는 작업이다. 언제 어떻게 어떤 방식으로 만나는지에 따라, 나와 영화를 오롯이 잇는 유일한 길이 열린다. 그다음 극장 밖을 나서면 이제 각자의 길이 얼마나 멋졌는지 자랑할 차례다. 영화제가 즐거운 진짜 이유. 전주국제영화제부터 칸영화제, 디아스포라 영화제와 서울국제환경영화제, 무주산골영화제까지. 바야흐로 영화제의 계절이 찾아왔다. 설사 당신이 직접 가지 못하더라도 <씨네21>이 그 공기를 글에 실어 대신 전하려 한다. 여기 여러분의 영화제가 도착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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