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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칸 다이어리 2] 영화제 가면 배우들 실물도 보나요?
글·사진 임수연 조현나 2024-05-19

부제: 임수연, 조현나 기자가 전해온 칸영화제 일지 ②

한국영화를 찾아보기 어려워진 올해도 어김없이 <씨네21>은 칸영화제 현장을 찾았다. 전 세계 영화인들과 언론인들이 모이는 칸에서는 공식 행사 외에도 다양한 일이 벌어진다. 올해는 칸 현지 소식을 좀더 생생하게 전하기 위해 지면보다 발 빠르게, 온라인에 칸영화제 소식을 먼저 전하기로 결정했다. 앞으로 77회 칸영화제 기간 동안 <씨네21> 기자들의 일기장을 실시간으로 공유할 예정이다. '77회 칸영화제 다이어리’는 영화제 개막부터 폐막까지 쭉 이어진다.

칸 필름마켓

5월 15일 수요일 – 조현나 기자

상영 시간에 맞춰 극장으로 이동하거나 마켓을 구경하다 보면 한국 수입사 직원분들과 마주치곤 한다. 안부 인사를 나눈 뒤, 첫 질문은 대체로 정해져있다. “괜찮은 영화 좀 있으셨어요?” 수입사를 상대로 열리는 마켓 스크리닝과 기자들을 상대로 열리는 프레스 스크리닝은 서로 스케줄이 다르다. 때문에 관람한 작품이 잘 겹치지 않아 서로의 영화 리스트를 공유하곤 하는 것이다. 영화제 초반이어서일까. 모두가 주목하는 화제작은 아직 없다는 게 중론이다. 좋은 작품을 만나면 다시 이야기 나누기로 하며 제 갈 길을 간다.

기자들은 개막부터 폐막까지, 혹은 수상작이 발표되는 후반부에 집중적으로 머물며 취재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수입사는 그보다 일찍 철수하는 게 일반적이라고 한다. 칸 필름 마켓이 영화제보다 이르게 마감되는 까닭이다. 올해 칸 필름마켓은 15일부터 23일까지 진행된다. 아네스 바르다 극장으로 이동하는 길에 칸 필름마켓에 들렀다. 부스마다 세계 각국의 영화 포스터가 큼지막하게 걸려있었고 그 안에선 사람들이 작품에 관해 분주하게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파과> <악마가 이사왔다> <비밀일 수밖에>(가제) <아마존 활명수> <행복의 나라> <신의 악단> <파일럿> <미스트>(가제) <열대야> <베테랑2> <하얼빈> <핸섬 가이즈> <괴기열차> <설계자> <야당> <탈주> <리볼버> <대도시의 사랑법> 등 마켓에 선보이는 다수의 한국영화의 소식도 들려왔다. 공개된 시놉시스를 읽다보면 머릿속으로 완성작을 그려보게 된다. 마켓에서 선보인 작품들을 극장에서 만날 날을 기대해보며 극장으로 들어섰다.

5월 15일 수요일 – 임수연 기자

칸영화제에 온 기자들이 중점적으로 챙겨보는 영화는 아무래도 경쟁부문 작품이 될 가능성이 높다. 매일 외신에서 별점을 매기고 폐막식 때 수상 결과가 나오기 때문에 매일 2~3편씩 공개되는 경쟁 섹션 작품을 가능한 많이 감상하고 훗날 있을지 모르는 국내 영화제 상영 및 개봉에 대비해야 한다. 올해 경쟁부문 레이스의 포문은 첫 장편영화로 칸영화제 경쟁부문에 진출한 아가타 리딩거 감독의 <와일드 다이아몬드>가 열었다. 올해 단 네 편만이 포함된 여성 감독 연출작 중 하나다. 인플루언서가 되고 싶은 19살 소녀 리안이 TV 리얼리티 쇼 캐스팅 제안을 받으면서 벌어지는 이야기… 라는 로그라인을 보고 왠지 시끌벅적한 사건들이 잔뜩 벌어지지 않을까 예상했지만 영화는 생각보다 너무 심심하게 흘러갔다. 내가 ‘도파민’의 나라에 있다 와서 너무 찌들어 있었나? 하는 자기반성도 잠시, 이를 감안해도 <와일드 다이아몬드>는 유명세를 갈망하는 여성의 ‘꾸밈 노동’을 묘사하는 데 치우진 나머지 그의 내면을 충실히 들여다보는 데 실패한 것 같다. 외모에 집착하는 젊은 여성이 맞닥뜨리는 성적 대상화와 여성혐오는 이미 우리가 알고 있다. <와일드 다이아몬드>는 이 문제를 가장 단순한 차원에서 보여주는 데 그친다.

와일드 다이아몬드 스틸

<바늘을 든 소녀>는 적어도 내가 만난 한국인들(기자 혹은 수입사 관계자, 프로그래머 등)에게서 “호불호는 갈리겠지만 나는 좋았다”, “강렬하다는 건 부정할 수 없다”는 공통적인 반응을 이끌어냈다. 스웨덴 출신 마그누스 폰 혼 감독의 세 번째 장편은 ‘센’ 소재부터 흑백 화면을 고집한 결단, 때때로 과시적인 연출까지 영화 곳곳에서 야심이 가득하다. 실화 바탕임을 내세우고 있지만 구체적으로 어떤 사건에서 영감을 얻었는지 알지 못하는 상태에서 감상하기를 권한다. 제1차 세계대전 이후 생계 면에서나 신체의 자기결정권 면에서나 주도권을 잃어버린 여성 내면에 조용히 몰입하다 마주하는 반전이 강렬하다.

바늘을 든 소녀 스틸

5월 16일 목요일 – 임수연 기자

“너도 애니아 테일러조이 봤어?” “아니…. 나도 인스타그램으로 봤어.” 칸영화제 출장을 와 있다고 하니 주변에서 유명 배우를 봤냐고 물어보는데 나도 못 봤다. “메시가 레드카펫에 섰던데?” “메시? 축구 선수?” “아니…. <추락의 해부>의 메시….” 어째 칸 현지보다 한국에 있는 사람이 이곳에서 벌어지는 일을 더 잘 아는 것처럼 보이는 순간도 있다. 흔히 영화제 하면 떠오르는 이미지, 포토월이나 레드카펫 행사를 사진이나 영상 기자가 아닌 취재기자가 직관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 뤼미에르 극장 월드 프리미어 상영 회차를 예매해도 자리가 좋지 않으면 스타들의 머리카락도 못본다. 레드카펫을 거쳐 상영관 안으로 들어갈 때도 빨리 입장하지 않으면 제지당하기 일쑤다. 사람 구경 한다고 뭉그적댈 수가 없다. 기자가 배우나 감독들을 근거리에서 볼 수 있는 행사는 기자회견 혹은 공식 인터뷰에서다. <퓨리오사: 매드맥스 사가>는 올해 칸에서 가장 많은 기자들이 몰린 행사였지만 현장을 찾지는 않았다. 요즘엔 유튜브로 공식 기자회견을 생중계 해주고 기자회견장 바로 옆에 있는 미디어 센터에 가면 큰 TV로 편하게 볼 수 있다. 인파에 치이느니 네스프레소 커피를 바로 내려 마실 수 있고 노트북 및 아이폰 충전이 가능한 기자실을 택했다. 사람들을 뚫고 현장을 스케치해야할 확실한 이유가 있다거나 기자회견장에서 반드시 질문을 해야 한다는 의지가 강한 게 아니라면, 이같은 방식의 취재를 택하는 경우도 은근히 많다.

퓨리오사: 매드맥스 사가 기자회견

반면 취재기자가 반드시 챙겨야 하는 스케줄이 있다. 바로 팔레 드 페스티벌의 뤼미에르 극장 혹은 드뷔시, 바쟁, 부뉴엘 극장에서 열리는 프레스 공식 상영이다. <퓨리오사: 매드맥스 사가>의 경우 뤼미에르 극장 최초 상영 회차는 예매 오픈 10초 만에 표가 동이 났다. “배지 소유자의 경우 남는 자리가 있을 때 입장 가능”이라는 안내 문구가 보이지만 몇 시간 기다려서 2층 맨 뒷자리(고척 스카이돔 4층 ‘하나님 시야’와 비슷함)에서 영화를 보느니 다음 날 아침 회차를 노리기로 했다. 기자들은 뤼미에르 극장이 아닌 프레스 대상 시사회에 참석하는 경우도 많다. (예매가 훨씬 쉽고, 뤼미에르 극장보다 상영 시간이 빠른 경우도 있으며, 드레스 코드를 신경 쓰지 않아도 되기 때문이다. 5~10분씩 기립박수를 치는 문화도 적용되지 않는다.)

그런데 웬걸? 원래 영어 영화는 영어 자막이 함께 나오거늘 왜 이 영화만, <퓨리오사: 매드맥스 사가>만 비영어권 국가 관객을 위한 배려(!)가 사라진 것일까. 영상 보느라 대사 집중하느라 정신이 없었다. 정확한 발음으로 연기해주지 않는 일부 배우들을 원망하느라, 특히 디멘투스와 임모탄 조 쪽 이야기가 나올 때 대사를 놓친 부분이 많다. 칸 현지에서 즐긴 <퓨리오사: 매드맥스 사가>도 충분히 즐거웠지만 눈물을 머금고 한국에서 한번 더 감상하기로 한다.

5월 16일 목요일 – 조현나 기자

이제는 라스트 미닛 엑세스(취소표 등으로 여유 자리가 발생하면 그 수만큼 대기자들이 극장에 들어갈 수 있다)줄만 봐도 알 수 있다. 안드레아 아놀드 감독의 <버드>는 올해 칸 기대작 중 하나다. 배지와 티켓 QR 코드를 찍은 후 극장 안으로 들어서는데, 일찍부터 도착한 이들이 많아 뤼미에르 극장 2층 맨 뒤에서 영화를 보게 됐다. 콘서트를 보듯 위에서 스크린을 내려다보게 되다니. 더구나 이 날은 감독, 배우들과 함께 영화를 관람하는 회차였다. 이들이 입장해 박수 세례를 받는 1층 시야는 눈에 들어오지도 않았다. 이런 경험을 또 언제 해보겠나 생각하며 스크린을 통해 비쳐지는 감독, 배우들에게 박수를 보냈다.

버드 스틸

<버드>의 주인공인 베일리는 아빠 버그, 오빠 헌터와 함께 산다. 가족의 보살핌을 제대로 받지 못한 베일리는 오래전 헤어진 자신의 가족을 찾아 헤매는 ‘버드’라는 친구를 만난다. 각자가 경험한 부재는 헤일리와 버드가 관계를 돈독히 하고 결정적인 순간 치유와 성장으로 나아갈 발판이 된다. ‘버드’의 존재를 상징적으로 활용한 점은 인상적이지만 한편으론 그 지점 외에는 익숙한 성장영화의 서사를 바라보는 것 같았다.

“올해는 배우로 왔습니다.”(김동호 전 부산국제영화제 집행위원장) 저녁에는 칸 클래식 부문에 초청된 <영화 청년, 동호> 상영에 참석했다. 티에리 프레모 집행위원장의 소개로 상영 전, 김동호 전 위원장과 작품을 연출한 김량 감독이 무대에 올라 영화에 관해 소개했다. <영화 청년, 동호>는 부산국제영화제를 설립한 김동호 전 위원장이 걸어온 궤적을 따라가며 그와 함께 변화해온 한국영화의 시간들이 기록돼있다. 누군가의 삶은 그 자체로 역사가 되기도 한다는 걸 실감했다.

영화 청년, 동호 스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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