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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칸 다이어리 3] 란티모스와 코폴라 신작을 봤습니다
김혜리 임수연 조현나 2024-05-22

김혜리, 임수연, 조현나 기자가 전해온 칸영화제 일지 ③

한국영화를 찾아보기 어려워진 올해도 어김없이 <씨네21>은 칸영화제 현장을 찾았다. 전 세계 영화인들과 언론인들이 모이는 칸에서는 공식 행사 외에도 다양한 일이 벌어진다. 올해는 칸 현지 소식을 좀더 생생하게 전하기 위해 지면보다 발 빠르게, 온라인에 칸영화제 소식을 먼저 전하기로 결정했다. 앞으로 77회 칸영화제 기간 동안 <씨네21> 기자들의 일기장을 실시간으로 공유할 예정이다. '77회 칸영화제 다이어리’는 영화제 개막부터 폐막까지 쭉 이어진다.

5월 18일 토요일 – 김혜리 기자

친절의 종류 스틸

극장 객석에 파묻혀 있긴 아깝다 싶은 날씨가 시작될 즈음, 칸 국제영화제는 자신만만하게 막을 올린다. 칸에 다녀오는 일은 누구에게도 수월하지 않다. 전년도 12월쯤 시동을 거는 갈까말까의 고민은 영화를 향한 나의 난치성 허영심이 수십 가지 현실적 ‘그렇지만’과 엎치락뒷치락하는 동안 계속되다가 2월말쯤에 결판이 나곤 한다.

작년에 도착한 첫날 본 칸 영화는 무려 <존 오브 인터레스트>였고, 이어진 열흘동안 어떤 상영작도 조나선 글레이저의 무시무시한 펀치를 넘어서는 타격을 내게 주지못했다. 5월17일 도착한 나의 2024년 칸 영화제 첫 관람작은 개막 전 최고의 화제를 모은 프랜시스 포드 코폴라의 <메갈로폴리스>가 될 뻔 했으나 한 타임 늦은 요르고스 란티모스의 <친절의 종류>(Kinds of Kindness)로 정해졌다. 수트케이스에 기대서서 <메갈로폴리스>를 관람 중일 임수연, 조현나 기자를 기다리는데 막 영화를 보고나와 건널목 신호등을 기다리는 관객들의 인상평이 출구조사가 되어주었다. 음, 30분만 짧았다면 괜찮았을 거라고? 역시 <메갈로폴리스>는 내가 겁내던 찬란한 엉망진창 과의 영화가 맞는 건가? 아, 개막작은 올해도 별로였군. 사실 칸의 개막작이 좋다면 그게 뉴스지.

<가여운 것들>의 잔상이 가시기도 전에 란티모스가 칸에 내놓은 <친절의 종류>는 세 개의 단편을 모은 앤솔로지로 엠마 스톤, 제시 플레먼스, 윌렘 데포, 마가렛 퀄리, 홍 차오 등 일군의 배우들이 각 에피소드에서 캐릭터를 바꿔 등장한다. ‘란티모스 극단’이 일관된 주제가 바닥에 흐르는 세 편의 드라마를 공연한다고 생각하면 된다. 1부는 먹는 것부터 결혼까지 고용주에게 통제받는 괴상한 회사의 직원이 딱 한번 반항을 했다가 내쳐지고 다시 보스의 울타리 안으로 들어가려고 안간힘을 쓰는 희비극이고 2부는 실종됐다 돌아온 아내가 아내의 껍질을 뒤집어쓴 신체 강탈자라고 믿는 경찰의 이야기다. 3부는 일종에서는 컬트 종교의 신도인 남녀가 망자를 살려내는 능력을 가진 한 여성을 찾기 위해 삶의 많은 것을 내던진다. 세 편의 이야기에는 제목과 부응하는 이상한 부류의 친절이 등장하는데, 이는 학대와 착취에 순응함으로써 사랑 또는 신앙을 증명하려는 인물들의 몸부림과 관련된다. 그들의 선택은 상식으로 이해하기 어렵다. 요컨대 근작인 <더 페이버릿> <가여운 것들>에서 얼마간 심리적 인과를 따라가는 서사를 수용했던 란티모스는 원래 파트너인 에프티미스 필리푸와 함께 쓴 <친절의 종류>에서 <더 페이버릿> 이전의 희한한 법칙이 작동하는 고유한 세계로 돌아간다. <송곳니>와 <더 랍스터>의 주인공들이 통제사회로부터 탈출하고자 했다면 <친절의 종류>의 몇몇 인물은 그곳에 다시 받아들여지려고 안간힘을 쓴다. 그들이 소속된 조직들은 <알프스>의 망자 대행회사를 연상시키고 스스로의 육체나 제 살같은 존재를 희생하는 행위까지 감수하게 하는 가혹함은 <킬링 디어>에 닿아있다. 이튿날 우연히 대화를 나눈 노년의 프랑스 기자는 <친절의 종류>를 1시간까지 참다고 탈출했다고 고개를 저었다. 돌아온 란티모스의 ‘인명경시’에 진절머리를 낼 관객도 있을 법하다. 위로가 될지 란티모스는 또 다른 의미에서 잔혹하다. 우리는 무엇인가를 이루고 인정받기 위해 ‘나’를 삭제할 수도 있다고 믿는 사람들을 이미 알고 있지 않은가?

오! 케나다 스틸

둘째 날 아침 댓바람부터 보러 간 영화는 미드나잇 섹션의 <서퍼>였다. <피그>에서 분노한 늙은 셰피였던 니콜라스 케이지가 <서퍼>에서는 분노한 늙은 서퍼를 연기한다. 영화를 1시간가량 지켜보다 실망스러우면 폴 슈레이더의 <오! 캐나다> 상영관으로 탈주하려는 것이 본래 계획이었으나 결국 끝까지 보고 말았다. <비바리움>을 연출한 아일랜드 감독 로르칸 피네간 감독이 케이지를 미국 이민 생활 끝에 고향에 꿈의 집을 사서 정착하려는 호주 출신 중년남자로 캐스팅한 이 영화의 주제는 말하자면 “그대 고향에 가지 못하리”라고도 할 수 있다. 우리가 잘 아는 피터 위어나 조지 밀러 감독의 호주 영화보다는 호주라는 세계 속의 이(異)세계를 영화적 배경이자 테마로 구사한 외부자 감독의 시선이 만들어낸 영화라고 할 수 있다. 이혼을 앞둔 케이지는 아들과 고향에서 서핑을 하며 어린 시절 아버지를 상실한 상처를 회복하고자 하지만, “여기 사람 아니면 서핑도 못한다” 고 을러대는 남자들 클럽의 강고한 지역주의에 가로막힌다. 남성 권리 운동을 연상시키는 슬로건을 내건 이 무리는 외부자를 배척하고 린치를 가하면서 남성의 야성을 찬양하는 일종의 부족 문화를 지킨다. 신고를 해봤자 경찰도 클럽 멤버고 여성 주민은 “집에서 아내 때리는 거보다 낫지 않냐”고 반문한다. 여기지지 않으려는 케이지의 집착은 차에서 기거하는 홈리스 생활로 이어지고 개봉 후 밈으로 웹에 퍼질 것이 분명한 클로즈업 명장면들을 쏟아낸다. 한마디로 얼굴이 너무 재밌다.“서핑을 하려면 먼저 고통받아야 한다.(Before you can surf you must suffer)”라는 동네 갱들의 구호는 고스란히 주인공에게 적용해 우리는 그의 어처구니없는 고행을 지켜보게 된다. 이쯤 되면 이 영화는 무너졌다 일어서기를 반복해온 니콜라스 케이지라는 독특한 배우에 관한 영화이기도 하다는 점을 깨닫게 된다. 미안합니다, 폴 슈레이더 감독님. 남은 상영을 꼭 노려보겠습니다.

5월 18일 일요일 – 임수연 기자

서퍼 스틸

본격적으로 칸영화제에 ‘일하러’ 왔다고 실감되는 순간은 해외 인터뷰 스케줄이 하나 둘씩 잡힐 때부터다. 인터뷰가 성사되기까지 기자가 거치는 프로세스는 대부분 이러하다. 하나, 개막 몇주 전 프레스 페이지에 인터내셔널 PR 컨택 포인트가 제공되는 영화 리스트를 훑은 후 인터뷰 신청을 넣는다. 둘, 별도의 컨택 포인트가 공개되지 않는 경우 제작사나 국내 수입사, 직배사를 통해 따로 문의를 넣는다. 셋, 개막 이후에 화제작으로 떠오른 작품이 있다면 추가로 인터뷰 가능 컨디션을 알아본다. 마지막으로 인터뷰 확정 혹은 부득이하게 이번에는 함께 하지 못할 것 같다고 설명하는 메일이 오기를 기다린다. 대체로 운명은 ‘수입사 존재 여부’에 따라 갈린다. 국내 수입이 확정될 경우 인터뷰 어레인지가 가장 수월해지고, 그렇지 않더라도 본사에서 한국 시장 마케팅에 의지가 있다면 운좋게 성사될 때도 있다. 오늘은 칸영화제 최고의 뷰를 가진 곳 중 하나인 영화진흥위원회 부스에서 칸 클래식 섹션 초청작 <영화 청년, 동호>의 주인공 김동호 전 부산국제영화제 집행위원장과 김량 감독의 인터뷰를 진행했고, 남은 기간 자크 오디아르, 데이비드 크로넨버그, 노에미 멜랑, 파얄 카파디아 감독 및 <베테랑2> 팀을 만나기로 확정됐다. 전 세계 기자들이 모이는 라운드 테이블에서 누가 먼저 질문을 하나, 몇 개를 할 수 있나 겨루는(?) 눈치 게임에서 (해외만 오면 소심해지는 내가) 무사히 생존할 수 있기를. 아무쪼록 잘 부탁드립니다!

5월 18일 일요일 – 조현나 기자

메갈로폴리스 스틸

프란시스 포드 코폴라, 폴 슈레이더 등 올해 경쟁 부문의 특징은 거장 감독의 신작을 만날 수 있다는 점이다. 보다보면 이 영화는 꼭 완성해야겠다는 야심 혹은 지난 시절을 차분히 반추하는 시선이 드러난다. 프란시스 포드 코폴라 감독의 <메갈로폴리스>는 전자의 경우다. 고대 로마의 풍경을 이식해온 미국을 배경으로, 시간을 멈추는 능력을 지닌 카이사르는 미래를 바라보며 유토피아를 꿈꾼다. 한편 보수주의자인 시장 프랭클린은 현상 유지를 중요시 여기며 미래에 초점을 맞춘 카이사르에게 전면 반박한다. 요컨대 <메갈로폴리스>는 카이사르라는 인물을 경유해 후손들에게 어떤 미래를 안겨줄 수 있을지에 대한 감독의 고민과 답을 전하는 작품이다. 그런 의미에서 결은 다르지만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의 <그대들은 어떻게 살 것인가>가 떠오르기도 했다. 폴 슈레이더 감독의 <오, 캐나다>는 한 유명 다큐멘터리 감독이 자신의 삶에 관해 마지막으로 인터뷰하는 과정을 그린다. 그에겐 자신의 지난 선택들을 이해시키는 것보다 본인의 과거가 구술로서 기록되고 있다는 사실 자체가 더 의미 있다. 극중 감독에게 자기 고백이 이토록 중요한 이유에 한 번 몰입하고 나면, 기억의 지도를 헤매는 주인공의 여정에 겉잡을 수없이 휩쓸린다. 지아장커 감독은 <코트 더 타이즈>에서 20여년의 세월을 바탕으로 계속해서 엇갈려온 두 남녀의 운명을, 코로다19 팬데믹을 거치며 관계맺음의 방식이 완전히 변화한 중국의 풍경을 천천히 소개한다. 기본적으로 두 남녀의 애정선에 주목했다는 점에선 지극히 사적이면서도 다큐멘터리 형식으로 중국의 20여년의 풍경을 압축해 전달한다는 면에선 비할 바 없이 밀도가 높다.

리모노프 스틸

키릴 세레브렌니코프 감독은 <리모노프-더 발라드>로 올해도 칸영화제에 초청됐다. 그의 신작을 본 이후로는 키릴 세레브렌니코프 감독이 매료되는 실존 인물의 유형에 관해 파악할 수 있었다. 상대에게 비정상적으로 몰입하거나 특정 필드에서 기존 형식에 반해 새로운 역사를 쓴 사람들. 이들의 특징에 집중하기에 인물 묘사 방식도 일반 전기 영화와는 차별화된다. <리모노프-더 발라드>에서 러시아의 유명 작가이자 정치인인 리모노프로 분해 자신을 완전히 내던진 벤 위쇼의 남우주연상 수상 가능성도 조심스럽게 점쳐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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