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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씨네21>이 꼽은 21편의 제21회 서울국제환경영화제 추천작 ①
씨네21 취재팀 2024-05-29

스물하나의 에코 시네마

올해 서울국제환경영화제에 초청된 작품들 중에 어떤 작품을 관람하면 좋을까. 긴급한 환경 위기를 거시적으로 경각하는 작품도 있고, 생태 회복을 위해 노력하는 개인을 집중해 조명하는 작품도 있다. <씨네21> 독자들이 서울국제환경영화제를 충분히 즐길 수 있도록 엄선한 21편의 작품을 소개한다.

와일딩 Wilding

데이비드 앨런 / 영국 / 2023년 / 75분 / 개막작

영국 동부의 웨스트서식스주의 농경지 넵 캐슬은 20세기 말 위기를 맞는다. 가뜩이나 습지였던 토양이 끝내 농작물을 경작하기 어려운 상태로 악화됐기 때문이다. 조부모로부터 넵 캐슬을 상속받은 이저벨라 트리와 찰스 버렐 부부는 영농의 기계화 부족을 원인이라 생각해 정부 보조금을 활용한 현대식 농업에 돌입한다. 제초제와 인공 비료, 회전식 경운기를 도입한 경작을 시도하지만 땅의 상태는 계속해 악화일로를 걸었고 부채도 늘어만 갔다. 그래서 부부는 아무도 시도한 적 없는 파격적인 실험을 감행했다. 땅의 회복을 온전히 자연에 내맡기는 ‘재야생화’를 시작한 것이다. 이들은 잡초가 자라도 제거하지 않았고, 경작지를 둘러싼 모든 울타리를 철거 후 어떤 화학약품도 땅에 뿌리지 않았다. 일견 방치에 가까워 보이는 재야생화 실험의 핵심은 동물이었다. 부부는 야생동물과 가축들을 넵 캐슬에 풀어놓은 후 그들이 자연의 규칙에 따라 살아가도록 방생했다. 그 결과 자연은 놀라운 복원력을 보이기 시작했다. 강은 생명력을 되찾아 정화 작용을 하기 시작했고, 원시의 땅엔 멸종위기의 새들과 야생동물이 찾아들었다.

<와일딩>은 1999년부터 현재진행 중인 재야생화 프로젝트를 기술한 이저벨라 트리의 베스트셀러 <야생 쪽으로>를 원작으로 한다. 이저벨라 트리는 <와일딩>의 각본을 직접 쓰고 내레이터로도 참여해 자신의 목소리로 재야생화의 경과를 되짚는다. 영화는 <야생 쪽으로>와 다른 방식으로 재야생화 과정을 시각적으로 설명하는 데 집중한다. 부부와 꼭 닮은 전문 배우를 섭외해 이들의 과거를 재연하게 하고 천연덕스럽게 부부의 현재 시점 다큐멘터리와 겹쳐둔다. 부부가 과학적 자문을 구한 석학들도 직접 등장해 과거 장면을 연기하다, 현재 시점에서 부부의 프로젝트가 생태계와 과학계에 어떤 시사점을 던지는지 요약한다. 스크린에서 잘 볼 수 없었던 멸종위기의 야생동물과 가축들이 대자연에서 왕성한 생명력을 자랑하며 뛰노는 시퀀스나 넵 캐슬의 압도적인 경관을 담아낸 촬영은 이 작품을 극장에서 관람해야 할 중요한 이유다. /정재현 기자

투디엔드 To the End

레이철 리어스 / 미국 / 2022년 / 94분 / ESG: 자본주의 대전환

네명의 미국 청년이 그린뉴딜을 외친다. 다양한 배경을 가진 이들은 기후정책 의지의 발현이라는 의식 아래 화석연료 투자 중단과 그린뉴딜 결의안을 관철하기 위해 앞으로 나아간다. 기후 정책을 요구하는 청년의 목소리에는 빈부 격차는 물론 인종간 격차를 줄이기 위한 목소리도 더해진다. 기후 위기에 따른 정책 수립이라는 당면 과제 앞에서 현상은 얼핏 진보와 보수, 구세대와 신세대의 대립 구도처럼 비치기도 한다. 그러나 이 다큐멘터리의 카메라는 굴하지 않고 네 주인공과 그 주변의 행적을 집요하게 따라간다. 촬영 중인 카메라 앞의 이들은 지금까지 우리가 봐왔던 활동가와 조금 다른 모습이다. <투디엔드>를 통한 발견이 있다면 이들이 이루어낸 성과 너머로 현재 미국의 젊은 정치인과 활동가들이 일궈낸 반향이 있으며 새로운 기후 정책의 미래가 있다는 것이다. /유선아 영화평론가

지구의 노래 Songs of Earth

마가레트 올린 / 노르웨이 / 2023년 / 90분 / 기후행동

<지구의 노래>는 감독의 연로하신 부모님의 이야기로 시작한다. 아버지 요르겐과 어머니 마그닐드는 언젠가 다가올 자신들의 죽음을 받아들이는 법을 딸에게 알려준다. 노르드 피오르드의 사계절을 걷는 아버지를 따르는 카메라는 만년설로 덮인 능선이 운해와 경계 없이 어우러지는 풍경과 계절이 지나는 자연의 일을 아버지의 느린 걸음으로 함께 지켜본다. 아버지의 할아버지가 심었다던 가문비나무 아래에서 아버지의 형제와 어머니의 자매가 결혼을 약속했다는 이야기, 부모님의 부모와 형제를 산에서 잃은 이야기는 켜켜이 쌓여 올려진다. 감독의 눈에 아버지의 주름 진 피부는 만년 설산에 깊숙이 팬 크랙과 닮아, 산은 곧 아버지의 모습이다. <지구의 노래>에는 느리게 흐르는 시간이 있고, 변화하는 모든 것이 있으며, 무엇보다 살아서 생애를 보냈던 이들의 마음이 있다. /유선아 영화평론가

비밀의 화원

김성환 / 한국 / 2024년 / 95분 / 한국경쟁

식물학자 동호는 은퇴 후 혼자 살며 자신만의 온실을 지킨다. 10년 전 백두산에서 가져온 고산식물 ‘노란 만병초’를 보존하는 일이 학자로서 그의 마지막 목표다. 평화롭게 연구를 이어가던 그는 우연히 자신이 키우는 누에에게 줄 뽕잎을 찾는 12살 봄이를 만난다. 자연과 교감할 줄 아는 소녀를 기특하게 여긴 동호는 봄이와 함께 뽕나무를 찾으며 따뜻한 시간을 보낸다. 그런 어느 날 봄이가 자신이 키우던 누에와 짧은 편지만 남긴 채 떠나자 동호는 불길한 예감에 아이를 찾아 나선다. <비밀의 화원>은 식물을 사랑하는 연구자의 개인적인 고뇌에 머무르지 않는다. 사회적 약자라는 큰 맥락에서 자연 보호의 의무는 가정폭력과 싱글맘이라는 사회적 이슈로 확장된다. “악을 뿌리째 뽑아야 한다”며 적극적인 저항을 강조하는 메시지가 강한 여운을 남긴다. 숲의 정취를 한껏 선보이면서도 그 이면에 감춰진 사회의 어둠을 놓치지 않는다. /김현승 객원기자

리버티 스퀘어의 기후 비극 Razing Liberty Square

카탸 에손 / 미국 / 2023년 / 86분 / 기후행동

부동산과 바다의 도시 마이애미. 부유한 백인들이 사는 해안가와 달리 내륙에는 미국에서 가장 오래된 공공주택 단지 리버티 스퀘어가 있다. 2017년 마이애미 정부는 민간 기업과 손잡고 리버티 스퀘어의 재개발을 시도한다. 흑인 민권운동의 역사를 함께했던 공동체는 재개발 광풍으로 와해될 위기에 처한다. 환경운동가와 주민들은 이번 사태가 해수면 상승으로 고지대의 부동산 가치가 올라가며 벌어진 일이라 주장한다. 젠트리피케이션은 흔히 자본주의의 병폐와 결부되어 거론되지만, <리버티 스퀘어의 기후 비극>은 자본의 문제 뒤로 뿌리내린 기후 위기와 인종차별의 문제를 직시한다. 인종 분리 정책으로 내쫓기듯 정착한 흑인들은 다시 백인 기득권에 의해 거리로 내몰린다. 그럼에도 리버티 스퀘어를 지키려는 다양한 목소리로 시선을 옮겨 공론장의 희망을 발견하려 한다. /최현수 객원기자

나우 Now

짐 라케테 / 독일 / 2020년 / 73분 / 지구를 구하는 거인들

청년세대는 어제보다 나은 내일을 말할 권리가 있다. ‘미래를 위한 금요일’의 그레타 툰베리부터 ‘지구를 위한 나무 심기’의 펠릭스 핑크바이너까지, <나우>는 다양한 분야에서 활동하는 청년들의 사연에 주목한다. ‘인류세’로 일컬어지는 새 시대의 위기는 어느새 한 분야만으로 해결될 수 없는 수준에 이르렀다. 각각의 담론은 반드시 더 나은 세계라는 공통의 지향점을 축으로 연대해야만 한다. 이들 주장의 핵심은 최근 학계에서 급격한 성장세를 보이는 탈성장 운동으로 요약할 수 있다. GDP 중심의 자본주의 체제는 숫자로 환원 가능한 효용가치에만 집착할 뿐 그들이 설파하는 ‘진보’가 미래에 끼치는 악영향은 전혀 고려하지 않는다. 활기찬 음악이 환경 시위 현장 푸티지와 맞물리며 생명력을 뿜어낸다. 비관도 낙관도 아니다. 필요한 것은 오직 앞으로 나아갈 의지뿐이다. /김현승 객원기자

문명의 끝에서

임기웅 / 한국 / 2023년 / 80분 / 한국경쟁, 쓰레기통(通)

모든 문명은 발전하는 만큼 쓰레기를 생산한다. 그렇다면 그 쓰레기들을 처리하는 것은 누구의 몫일까. 그 많은 쓰레기들은 다 어디로 간 것일까. <문명의 끝에서>는 2부작 구성을 통해 대한민국 수도권에서 발생되는 쓰레기와 그리고 그 쓰레기가 다시 발생시키는 사회문제에 대해 이야기하는 다큐멘터리다. 1부 <서쪽 끝 쓰레기 도시>에선 서울과 경기도의 쓰레기까지 처리하느라 과포화 상태에 처한 인천 서구 수도권매립지를, 2부 <나의 살던 고향은>에선 재개발/부동산 이슈로 온전한 거주지로서의 가치를 잃은 한 버려진 동네를 조명한다. 수도권의 일부인 인천이 이 상태라면, 지속/가속되는 우리나라의 기형적 수도권 집중 구조에선 그 누구/어디도 쓰레기 문제로부터 자유롭지 않다는 것이 이 영화의 핵심 메시지다. 영화 중반 등장하는 거대한 ‘쓰레기 쓰나미’ 이미지는, 이것이 단순 사회문제가 아닌 재난이라고 말하는 감독의 선언처럼 다가온다. /김철홍 영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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