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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경원 편집장] 77회 칸영화제는 타임머신을 타고
송경원 2024-05-31

영화는 타임머신이다. 인류 최초는 아니지만 (아마도 최초의 타임머신은 ‘이야기’가 아닐까) 가장 직관적인 방식의 타임머신임엔 틀림없다. 흔히 추억의 옛 노래를 들으면 순식간에 과거 속으로 빨려 들어간다고들 하는데, 영화가 시간을 다루는 방식은 좀더 직접적이면서도 복잡하다. 시간을 거꾸로 돌리거나 빨리 감는 건 평범한 축에 속한다. 관객을 영화 속으로 초대하거나 영화 속 시간을 스크린 바깥 현실까지 끄집어내는 것도 가능하다. 무엇보다 영화의 진짜 마법은 순간을 영원으로 만드는 데 있다. 반대로 영겁의 시간을 찰나로 표현할 수도 있을 것이다. 사람들은 영화로 다리를 놓고 터널을 뚫어 수많은 평행세계를 넘나든다.

영화제도 타임머신이다. 이 타임머신은 영화와는 조금 다른 방식으로 작동한다. 영화제에서 영화를 본다는 건 미래를 다녀오는 것과 마찬가지다. 우리는 특별히 허락된 약속의 장소에서 앞으로 개봉할 영화들을 미리 만날 수 있다. 그런 의미에서 영화를 ‘몰아서’ 본다는 건 특별한 체험이다. 이윽고 영화제가 끝나면 영화들은 뿔뿔이 흩어져 관객들과 만날 차례를 기다린다. 칸영화제를 다녀오면 이후 1년 동안 신기한 일이 벌어지는데, 칸에서 만났던 영화들이 1년 내내 극장가에 걸리는 풍경을 보노라면 시간여행자가 된 기분이다.

올해도 지난해 칸영화제의 경쟁작들이 극장가를 메웠다. 지난해 6월 웨스 앤더슨 감독의 <애스터로이드 시티>를 시작으로 11월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괴물>, 12월 아키 카우리스마키 감독의 <사랑은 낙엽을 타고>가 관객들과 만났다. 2024년 1월엔 황금종려상을 수상한 <추락의 해부>와 예시카 하우스너 감독의 <클럽 제로>, 3월에 토드 헤인스 감독의 <메이 디셈버>, 4월은 <라스트 썸머>와 <키메라>와 <나의 올드 오크>, 5월에는 난니 모레티 감독의 <찬란한 내일로>가 스크린을 장식했다. 6월에 <존 오브 인터레스트>와 <프렌치 수프>, 7월에 <퍼펙트 데이즈>가 개봉을 앞두고 있다. 경쟁부문 후보 중 절반에 가까운 영화가 개봉하는 셈이다. 다시 만난 영화는 분명 두 번째 관람임에도 여전히 즐겁다.

77회 칸영화제를 직접 방문한 독자는 많지 않을 것이다. 그럼에도, 아니 그래서 <씨네21>에선 해마다 칸영화제 출장을 가서 글을 쓴다. 아직 보지 못한 영화를 설명하고 인터뷰하는 건 그저 뉴스를 전하는 것 이상의 의미가 있다. 우리는 영화를 글로도 미리 만날 수 있다고 믿는다. 이번호에는 김혜리, 임수연, 조현나 기자가 칸의 공기를 문장으로 꾹꾹 눌러 고이 담아왔다. 올해 칸의 라인업은 상대적으로 약했고, 한국영화는 적었고, 선택은 안전했다. 임수연 기자가 쓴 글을 읽으면 올해 경향이 조감도처럼 한눈에 파악될 것이다. 아마도 올해는 지난해처럼 많은 영화를 극장가에서 만나지 못할지도 모르지만 전반적인 아쉬움 속에서도 반짝이는 영화는 반드시 나타난다. 처음 만난 영화의 놀라움과 두번 본 영화의 반가움. 모르고 보는 설렘과 알고 보는 깨달음. 여기, 극장에 걸릴 미래의 영화들을 소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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