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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여러 소재와 시간, 차원이 공존하는 영화, <찬란한 내일로> 감독 난니 모레티

<찬란한 내일로>는 감독의 이름을 모르고 감상해도 난니 모레티의 신작임을 어렵지 않게 알아차릴 수 있다. 이탈리아의 정치 풍경부터 죽음, 상실 같은 묵직한 소재를 과감하게 포획하면서도, 시네마에 대한 발랄한 애정을 놓지 않았던 모레티의 인장이 뚜렷하다. 영화에서 주인공 조반니(난니 모레티)는 힘겨운 제작 환경과 쉽지 않은 인간관계에 분투하면서 영화를 계속 찍어나간다. 그런 의미에서 <찬란한 내일로>는 희망 어린 시선으로 그리는 메타 시네마다. “‘이제 막 시작된’ 커리어의 이정표를 찍고 싶었다”는 난니 모레티를 화상으로 만났다.

- <찬란한 내일로>는 영화를 찍는 과정에 관한 영화다. 이런 형식을 구상하게 된 계기는.

= 몇해 전에 1956년을 배경으로 한 영화 각본을 쓴 적이 있다. 한동안 준비했지만 만족할 만한 결과를 얻지 못했다. 그래서 잠시 중단하고 <일층 이층 삼층>(2021) 촬영에 돌입했다. 그런데 <일층 이층 삼층>이 완성될 무렵 코로나19가 터져 개봉이 연기됐다. 그래서 이 시기에 작가들과 함께 <찬란한 내일로> 작업을 시작했다. 작가들에게 1956년을 배경으로 한 영화를 준비하는 감독의 이야기를 쓰고 싶다고 말했다.

- ‘56년 헝가리 혁명’을 70여년 지난 지금 다시 다룬 이유가 궁금하다.

= 우선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과 비슷한 시기에 이런 소재의 영화를 만든 것은 우연의 일치다. 내가 <찬란한 내일로>의 각본을 썼을 때는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하기 전이다. 당시 나는 1950년대에 매료돼 있었다. 이 시기가 정말 매력적이고 흥미로운데 내 영화에 한번도 등장한 적이 없다. 역사적으로 1956년은 이탈리아 공산당에 하나의 전환점이 되는 시기였다. 소비에트연방과 결별할 기회가 있었는데 놓쳐버렸다. 이와 관련해 <찬란한 내일로>에서 조반니가 실제와 다른 대안의 역사를 상상하는 장면이 나온다.

- 조반니가 다투는 연인을 구경하는 장면 등은 마치 영화 속 짧은 단막극처럼 느껴진다.

= 여러 소재와 시간, 차원이 공존하는 영화 만들길 좋아한다. 여러 겹으로 이뤄진 케이크처럼 말이다. 단선적이지 않은 영화를 상상하고, 쓰고, 촬영하는 일이 즐겁다. 예를 들어 <우리에겐 교황이 있다>에서도 영화 속 영화 혹은 영화 속 연극과 같은 장면이 자주 등장한다.

- 이번 영화에는 OTT 관계자, 한국의 영화제작자 등 외부에서 온 인물이 많이 등장한다.

= <찬란한 내일로>에 로마 사람이 아닌 외부인이 등장하는 이유는 다양하다. 내 영화는 오래전부터 이탈리아-프랑스 공동 제작인 경우가 많았다. 그래서 이번 영화에 프랑스 프로듀서를 등장시켰다. 폴란드 대사관의 남자는 내 영화에 자주 출연한 배우 예지 스투흐르를 떠올리며 만들었다. 또 조반니와 멀리 떨어진 세계에서 온 사람들이 그의 영화를 재정적으로 구원한다고 설정하고 싶었다. 그래서 한국 제작자를 등장시켰다. 그들은 조반니의 영화를 잘 이해하지 못하면서도 영화를 살린다. 영화 속 여배우가 “이 영화는 사랑에 관한 작품”이라고 주장하는 것처럼, 한국의 제작자들은 “모든 것의 끝에 관해 이야기하는 작품”이라고 본다. 이들은 모두 조반니의 영화를 자의적으로 해석한다. 조반니 주변에서 함께 작업하는 사람들도 제각기 다른 시각으로 영화를 본다. 그런데 이것이 영화다.

- 당신의 영화에는 ‘설득’이 종종 등장한다. 조반니가 다른 영화의 촬영 현장에서 영화의 윤리에 관해 논쟁하는 장면이 인상적이다.

= 그 장면은 진지하기도 하고, 역설적으로 코믹하기도 하다. 조반니는 다른 감독의 촬영을 중지시키면서 “당신은 폭력에 매료됐다”, “모두들 최면에 걸려 있다”라고 말하지 않나. 나는 이 말에 완전히 동의한다. 하지만 아쉽게도 조반니의 말은 허공에 흩어질 뿐이다. 동료 감독은 그가 말하는 영화의 윤리를 이해하지 못하니까. 그럼에도 논의하고 설득하는 과정이 하나의 윤리라고 느낀다.

- 행진으로 마무리되는 마지막 장면도 인상 깊다. 처음부터 이런 장면을 구상한 것인지.

= 처음부터 행진 장면을 구상했지만 훨씬 소규모로 진행하려고 했다. 처음에는 코끼리를 타는 조반니 영화의 두 주인공, 그리고 나머지 캐릭터 중에 단 세명만 등장시키려고 했다. 폴란드 대사관의 남자, 조반니의 딸, 프랑스 프로듀서가 50년대 의상을 입고 등장하게 했다. 그런데 이 장면을 찍은 후 집에 가서 ‘어째서 일부 캐릭터만 등장하는 거지? 모든 인물이 카메라 안으로 들어오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조감독과 한국 제작자들, 이탈리아 공산당 당대표를 연기하는 엑스트라, 조반니가 수영하는 동안 대본을 쓰는 작가 등 모든 인물이 등장하는 장면을 찍은 후 편집을 시작했다. 사실 이 과정이 쉽지는 않았다. 편집이 거의 끝날 무렵 마지막 장면을 보았을 때, 다시 ‘어째서 <찬란한 내일로>의 인물만 등장하는 거지?’라는 의문이 들었다. 전작에 나왔던 배우도, 내 영화에서 45년 동안 연기했던 사람도 모두 등장시키고 싶어졌다. 그래서 10~15명에게 연락해 마지막 장면을 세 번째로 촬영했다.

- 행진 장면에 더 많은 인물을 등장시키기로 결심한 이유는.

= 단편영화를 포함해 지난 50년 동안 쌓아온 나의 커리어에 하나의 이정표를 찍고 싶었다. 이제 막 시작된 내 커리어의 초창기에 말이다. (웃음) 물론 앞으로 50년 후에도 다가올 50년 후에도 이런 시간이 이어지기를 바란다.

- 영화에 “우리가 영화로 다뤄야 할 문제는 무엇보다 윤리”라는 대사가 나온다. 최근 당신이 고민하는 영화의 윤리는 무엇인가.

= 관객들이 이미 수백번 보았을 법한 영화는 만들지 말자고 다짐한다. 개인적인 영화, 작가주의적인 영화, 관객으로서 영화관에서 감동하고 놀랄 만한 영화를 좋아한다. 나 역시 감독으로서 관객에게 감동과 놀라움을 안기는 일에 애착을 느낀다. 한명의 관객으로서의 경험이 감독으로서의 작업에 영향을 끼치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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