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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소연의 클로징] 인공인간에도 성차가 있다
임소연 2024-07-18

최근 인공지능 관련 학회에 갈 일이 있었다. 학회장 한쪽에 생성형 인공지능이 그린 그림을 전시한 공간이 있길래 둘러보았다. 일일이 세어보지는 않았지만 동물이나 아이, 여성 등을 대상으로 한 그림이 눈에 많이 띄었다. 예상대로다. 인공지능 스피커부터 돌봄 로봇 그리고 디지털 가상 비서까지 새로운 기술이 등장할 때는 주로 친근한 외형이나 음성을 갖기 때문이다. 아마도 인간은 인공지능이라는 새로운 작가가 처음부터 위협적이거나 지나치게 낯선 그림을 그리기를 원하지 않는 것 같다. “소비자들이… 급격한 변화에 편안함을 느낄 수 있도록….” 스칼릿 조핸슨의 목소리를 원했던 오픈AI 최고경영자 샘 올트먼이 했던 말이다.

물론 작품 중에는 당연히(!) 성인 남성을 주인공으로 하는 그림도 있었다. 서른개가 넘는 작품 중 두점이었는데 한점은 유명 예술가의 얼굴을 담고 있고 다른 한점은 인기 드라마 속 두 남성 인물의 모습을 표현했다. 전자는 과거에 실재했던 인물이고 후자는 이야기 속 주인공이라는 점에서 분명 차이가 있지만 공통점이 있었다. 특정한 인간, 즉 고유한 서사와 이름을 가진 개별 인간을 재현하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다른 작품들과 달리 이 두 그림의 작품 설명에는 그들의 이름이 또렷이 적혀 있었다. 여성에게는 주어지지 않던 개별성이다.

이런 인공인간의 성차(性差)를 우연이라고 할 수 있을까. 독일의 카를스루에공과대학교 재스퍼 파인 박사 연구팀은 2019년에 발표한 “챗봇 디자인의 성(性) 편향”이라는 논문에서 1375개의 인공지능 챗봇을 분석한 후 비슷한 결과를 내놓았다. 챗봇의 임무가 제품 광고 목적의 대화, 캠페인, 고객서비스, 시장조사, 판매, 학습, 게임 캐릭터, 개발자 시연일 때, 즉 대부분의 경우 챗봇은 주로 여성으로 식별되는 특성을 지닌다. 물론 남성으로 구분되는 챗봇도 있다. 같은 임무를 수행하는 챗봇 중 남성형이 여성형보다 훨씬 많은 유일한 경우는 임무가 역사적 인물이나 실존 인물과 같이 특정한 인간을 ‘복제’하는 것일 때이다. 흥미롭게도 안드로이드 로봇에서도 비슷한 성차가 발견된다. 에버, 에리카, 소피아 등 잘 알려진 안드로이드는 주로 가상의 젊은 여성의 모습인 반면 남성형 안드로이드는 실재하는 중년 남성을 닮았다. 일본과 덴마크의 로봇공학자인 히로시 이시구로와 헨릭 샤르페가 각각 자신을 모델 삼아 만들었다고 한다.

생성형 인공지능이 등장하며 대체될 확률이 높은 직업으로 의사나 변호사 같은 전문직이 꼽히지만 현실에서 인공지능과 로봇에 자리를 내준 주요 직종이 서비스업이라는 사실은 이 성차와 무관하지 않아 보인다. 콜센터와 마트 계산대, 은행 창구… 다음은 어디일까? 어디에 이름 없는 여성들 혹은 쉽게 대체가능한 인간들이 일을 하고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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