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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경원 편집장의 오프닝] 추리, 아니 물리 탐정 코난과의 재회
송경원 2024-07-19

전설에 이르는 두 갈래 길이 있다. 첫 번째 길은 흉내낼 수 없는 개성을 발산한 뒤 홀연히 사라지는 것이다. 초신성처럼 막대한 에너지를 폭발시켜 세상을 환하게 빛낸 뒤 거짓말처럼 사라진 작품들. 예를 들면 1980년대 과잉의 낭만이 녹아든 <파이브 스타 스토리>는 명목상으론 아직 완결나지 않았지만 사실 이미 쓸모를 다했다. 다시 반복될 수 없는 유일함에 그리움이 깃드는 법. 그 시절에만 허락된 어떤 반짝임은 아스라이 사라짐으로써 전설로 거듭난다.

두 번째는 세월의 모래바람을 꿋꿋이 버텨 시간을 이겨내는, 기적 같은 지속의 길이다. 무려 41년째 연재 중인 <유리가면>을 비롯해 작가가 세상을 떠난 뒤 미완성으로 남은 <베르세르크>, 권을 거듭할수록 챔피언에서 멀어져가는 <더 파이팅> 등 일본 만화계에서 장기 연재는 드물지 않다. 여러 이유가 있지만 일본의 만화 연재 시스템은 인기작의 경우 애니메이션, 게임 등 다양하게 확장되는 구조라 작가가 끝내고 싶어도 그럴 수 없는 경우도 많다. 그렇게 자의 반 타의 반 생명 연장을 이어가는 작품 중에도 유난히 빛나는 결과물들이 있다. 그 와중에 올해로 연재 30년을 맞이한 <명탐정 코난>도 그중 하나다. <명탐정 코난>은 단지 연재를 오래 이어온 것을 넘어 매해 자신의 인기를 갱신 중이다. 시간에 따라 인기가 축적되는 건 이해할 법하지만 팬덤이 확장되는 건 다른 문제다. 시대와 호흡하며 내적 변화를 추구하고 있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추리물로 시작한 명탐정 코난은 연재 7, 8년이 넘어가면서부터 꾸준히 다른 가능성의 문을 두드려왔다. 정체불명의 약 때문에 아이가 된 고등학생이 추리를 통해 사건을 해결한다는 컨셉은 맥거핀이 된 지 오래다. 솔직히 이젠 추리 빼고 다 잘하는 <명탐정 코난>은 탐정물이라기보다는 액션 캐릭터 장르물에 가깝다. 약간의 과장을 보태 요즘 코난을 보면 할리우드 스튜디오가 그토록 꿈꾸던 안정된 프랜차이즈의 완성형을 마주하는 기분이다. 1년에 한번, 일본의 골든위크 기간 연례행사처럼 개봉하는 <명탐정 코난> 극장판은 6기를 지나면서 본편의 스토리에서 분리되기 시작했다. 이윽고 비현실적인 액션이 지겨워질 때 즈음 캐릭터들(혹은 캐릭터간 관계성)을 영리하게 추가하며 팬덤을 늘려왔다. 그렇게 아오야마 고쇼 작가가 쏘아 올린 공은 팬들의 기대와 바람, 수많은 애니메이션 제작진의 욕망과 능력이 뒤엉켜 ‘명탐정 코난’이라는 독자적 장르를 구축하기에 이른다.

솔직히 고백하자면 나는 세대적으로나 정서적으로나 <명탐정 코난>보다 <미래 소년 코난>쪽에 가까운 사람이다. 한때 <소년탐정 김전일>과 함께 즐겨 보던 코난이 극장판에서 축구공으로 미사일까지 때려 맞추던 즈음에 견디지 못하고 하차했다. (<원피스>의 위대한 항로의 수많은 중도 탈락자들처럼) 어쩌면 장기 연재물에서 중도 하차는 숙명이다. 하지만 모험이 끝나지 않는 한 팬은 언젠가 다시 돌아온다. 나 역시 한번 발길을 끊고 나니 엄두가 나지 않았지만 이번 특별판을 통해 비로소 복귀할 수 있었다. 추리력 대신 물리력으로 사건을 해결하는 코난도 이제 보니 꽤 흥미롭다. 현재진행형의 전설에 동참하고 싶지만 엄두가 나지 않는 자, 나처럼 중도 탈락한 이들에게, <씨네21> 최초로 시도한 애니메이션 스페셜 에디션 <명탐정 코난> 특별판을 부친다. 진실은 언제나 하나. 다시 전설의 일부가 되고 싶은 자, 지금부터라도 동승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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