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Skip to contents]
HOME > Movie > 무비가이드 > 씨네21 리뷰
[리뷰] 금쪽같은 감독을 키워낸 우연과 인연, <공드리의 솔루션북>

영화감독 마크(피에르 니네이)는 자신의 새 영화가 영화사 임원들의 입맛에 맞게 가위질될 위기에 처하자 영화의 미완성 편집본을 들고 숙모 드니즈(프랑수아 레브런)의 집으로 도망친다. 도심에서 떨어진 작은 시골 마을에 자리한 드니즈의 집에 동료 샤를로트(블랑슈 가르댕), 실비아(프랭키 월러치)와 함께 숨어든 마크는 머릿속에 끊임없이 떠오르는 아이디어를 영화로 구현하기 위해 두 사람을 계속 괴롭힌다. 샤를로트와 실비아는 마크의 천재적인 면모를 인정하면서도 그의 괴짜 같은 언행에 지쳐간다. 마크 또한 자신의 고집과 기행이 동료들을 힘들게 한다는 것을 알면서도 영화 만들기를 위한 질주를 멈추지 않는다. 어느 날, 마크는 자신의 ‘솔루션북’(해결책)에 영화 만들기에 관한 여러 가지 법칙들을 적어나가고, 난관에 봉착한 순간마다 이를 떠올린다.

영화 <이터널 선샤인> <수면의 과학>, 드라마 <키딩> 등 독특한 아이디어와 영상미로 국내 관객들에게도 익숙한 프랑스 감독 미셸 공드리의 신작 <공드리의 솔루션북>은 공드리의 감독으로서의 자전적인 이야기를 담은 영화다. 2013년 <무드 인디고> 후반작업 당시 감독의 실제 경험을 바탕으로 제작되었다. 화려한 무대 뒤편의 감독과 제작진의 고군분투를 그려낸 여타의 영화들과 마찬가지로 <공드리의 솔루션북> 또한 영화가 만들어질 때 필연적으로 수반되는 노력과 수고로움, 싸움과 갈등을 가감 없이 그려낸다. 거기엔 감독 개인을 혼란스럽게 하는 창작자 혹은 예술가로서의 내적 고통도 포함되지만, 영화 만들기라는 일종의 거대한 ‘팀플레이’에 태생적으로 내재되어 있는 인간관계의 갈등 또한 포함된다. 예컨대 극 중 마크는 종종 자신의 말과 행동으로 상처를 준 동료들에게 사과하라는 요구를 받곤 하는데, 아무리 뛰어난 영감이 번뜩이는 감독일지라도 영화 만들기에 있어선 동료들과의 협업이 기발한 발상만큼이나 중요하다는 것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사과 공장이 된 기분이었다.” “결국 사과를 사과해야 하는 꼴이 됐다.” 마크가 공드리의 분신과도 같은 인물이라는 점에서 마크의 이같은 내레이션은 감독의 자조 섞인 자기반성을 보여준다.

동료들과의 불화, 자신의 영화에 대한 불신, 프로듀서 막스(뱅상 엘바즈)의 기습적인 재등장 등 영화가 진행될수록 마크의 상황은 나아질 기미를 보이지 않는데, 공드리는 여기에 슬쩍 러브 스토리를 농담처럼 더한다. 가수 스팅의 기적적인 섭외를 기점으로 촉발된 또 다른 동료 가브리엘(카밀 러더퍼드)과의 로맨스다. 이 로맨스가 영화 전반에 유의미하게 작용했는지에 대해선 다소 의문이 들지만, 사랑이라는 감정의 치유적, 도피적 속성을 고려해볼 때 자기 반영적 영화와 인물에게 모종의 윤활유 같은 요소로 필요했으리란 인상을 남긴다. 호감과 비호감, 공감과 거부감을 넘나드는 젊은 감독 마크를 연기한 배우 피에르 니네이의 열연이 돋보인다. 제76회 칸영화제, 제28회 부산국제영화제에서 상영됐다.

CLOSE-UP

“고결하지만 깨진 영혼이 눈물이 돼 흐르는 듯했다. 내 카리스마 뒤의 상처들을 알아주길.” 동료들과 막스 이야기를 하다 울컥해 자리를 피한 마크는 쏟아지는 빗속에서 눈물을 흘린다. 본디 남들보다 예민하고 예리한 성향으로 기발한 아이디어를 떠올리고 감각적인 작품들을 만들어내는 만큼 남들이 모르는 아픔과 슬픔 또한 있을 수 있음을 공드리는 마크의 내레이션을 빌려 세상에 전한다.

CHECK THIS MOVIE

<거미집> 감독 김지운, 2022년

예술혼을 불태우는 것만으로도 벅찬데, 제각기 삐그덕거리는 동료들 챙기랴 돈줄 쥔 제작자 신경 쓰랴 영화감독의 하루하루는 고되고 힘겹다. 김열(송강호)과 마크의 이야기다. <거미집>이 배우들의 속사정에 보다 방점을 찍었다면, <공드리의 솔루션북>은 감독의 멘털까지 케어해야 하는 편집감독 샤를로트를 비롯한 제작 스태프들의 고초를 만나볼 수 있다.

관련인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