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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능성이 0에 가깝더라도, 변호사의 눈으로 본 영화 <행복의 나라>
임준형 2024-08-15

영화 <행복의 나라>는 역사물인 한편 꽤 진지한 법정물이며, 역사와 법에 관한 여러 논점을 제시한다. 위 논점에 하나씩 답해보며 위 영화가 다루는 역사와 법에 대해 살펴본다.

정치재판과 인권변호사의 역사

한국에 근대적 재판제도가 도입된 이래 정치재판의 역사도 시작되었다. 일제시대 독립운동가에 대한 재판에서부터, 독립 이후에는 독재정권에 의한 정치재판 및 판결로 ①여순사건 민간인 사형 판결(1948년)(2019년 재심에서 무죄 선고) ②진보당 조봉암 사형 판결(1959년)(2011년 재심에서 무죄 선고) ③인민혁명당 사건 사형 판결(제1차 1964년, 제2차 1975년)(2005년 재심에서 무죄 선고) 등을 들 수 있다. 그리고 영화 <행복의 나라>는 그중 10·26 사건의 박흥주 대령에 대한 재판 및 사형 판결(1979년)을 다룬다.

한국 정치재판의 역사와 함께 인권변호사의 역사도 유구하다. 이들은 법률가로서 취할 수 있던 부와 권력을 마다하고, 그 반대편에서 주로 약자들을 위해 변호했다. 일제시대 3대 인권변호사로 유명한 김병로, 이인, 허헌 변호사에서 그 전통이 시작되며, 야만적 정치재판이 있을 때마다 이들이 달려와 변호를 맡았다.

10·26 사건 재판에서도 28명에 달하는 변호사가 권력을 두려워하지 않고 변호인단을 구성했으며, 이들 중 유명한 이들만 꼽아도 한승헌, 이돈명, 강신옥, 홍성우, 황인철, 안동일, 태윤기 등이 있다. 그리고 이들이 (영화에서처럼) 실제로 재판 도중 보안사에 끌려가 협박을 당했다는 사실도 확인되고 있다.

영화상에서 박태주(이선균)를 변호한 정인후 변호사(조정석)의 모델은 위 중 태윤기다. 태윤기는 일제시대에는 광복군으로 참전한 독립운동가였으며, 독립 후에는 가장 험난한 시국 사건을 도맡아 변호한 한국 역사의 대표적 인권변호사다. 영화에서 정인후는 인권에는 관심 없고 사기나 치며 살아온 변호사로 묘사되는데, 이는 속물 변호사가 인권재판을 통해 개심한다는, 법정영화 특유의 클리셰를 위해 각색된 것으로 생각된다.

한국 법정의 서면변론이 미국 법정의 구두변론으로 각색

이 영화가 법정영화의 클리셰를 따른 부분은 또 있다. 영화에서 정인후는 법정을 휘젓고 다니면서 열변을 토하며 모든 변론을 구두로 진술한다. 이는 실제 한국 법정과 다르다. 최근 한국에서도 구두변론이 확대되는 추세지만, 아직도 한국 법정의 변론은 변호사가 재판 전 미리 법원에 제출한 서면에 의해 주로 이뤄지며, 구두변론은 보조적 역할을 할 뿐이다.

법정영화 자체가 미국에서 꽃피운 장르다 보니, 많은 법정영화에서 (주로 미국 법정의 모습에 따라) 변호사가 청중을 향해 멋진 연설을 펼치고 이에 대역전이 이뤄진다는 클리셰가 형성되었으며, 한국 법정영화도 대부분 이를 차용한다. 그러나 위 클리셰는 미국의 재판이 비법률가인 배심원단이 판결하고 이를 위해 변론도 (배심원단에 호소하기 위해) 주로 구두로 이뤄진다는 특수한 재판 환경에서 성립된 것으로, 이를 배심재판과 구두변론이 중심이 아닌 한국의 법정영화에 그대로 도입하는 것은 왜곡이다. 한국도 2009년부터 형사재판 중 일부에 배심재판(국민참여재판)을 도입하고 있기는 하나, 여전히 한국 법정은 판사의 판결과 서면변론이 중심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영화에서 변호인단 리더 이만식 변호사(우현)와 정인후가 재판 도중에야 비로소 서로의 변론 방향이 다름을 확인하고 충돌하는 장면도 실제 한국 법정에서는 일어나기 힘들다. 실제로는 변호인단이 변론 내용을 미리 상호 협의해 이를 기재한 서면을 재판 전에 법원에 제출하고, 변론도 그에 따라 진행하기 때문이다.

비상계엄하 군사재판 단심제(헌법 제110조 제4항)의위헌성

이 영화는 (위 구두변론 외에는) 그래도 당시의 재판을 꽤 충실히 재현하는 편인데, 예를 들어 정인후가 비상계엄하 군사재판 단심제(1심제)는 위헌이라며 위헌제청신청을 하는 장면이 그렇다. 당시 재판에서도 태윤기가 실제 위헌 주장을 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유신헌법 제111조 제4항이 규정하던 비상계엄하 군사재판 단심제는 당시부터 위헌성이 지적되어왔지만 현행 헌법 제110조 제4항에 여전히 남아 있다. 다만 그것이 현행 헌법으로 개정되면서 “사형을 선고한 경우에는 그러하지 아니하다”라는 단서가 달리기는 했지만, 위 단서는 이후 헌법이 사형제를 전제한다는 주장의 근거로 쓰이고 있어 사형제 존폐 논쟁에서도 가장 중요한 헌법 조항으로 언급되며, 위 점들 때문에 지금도 위 조항은 총 130개조의 헌법 조항 중 가장 논쟁적 조항 중 하나로 여겨지고 있다.

정진후(실제 모델 정승화)에 대한 증인 신청

영화에서 정인후가 정진후 계엄사령관(이원종)을 증인으로 세우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시퀀스는 꽤 잘 쓰였다고 생각한다. 당시 계엄사령관 정승화에 대해서는 그러잖아도 김재규와의 관계에 의혹이 제기되고 있었고, 12·12 쿠데타에서 그가 체포된 명목도 그가 김재규의 내란에 가담했다는 점인 만큼, 그가 10·26 사건 재판의 피고인들을 위해 증언을 한다는 것은 가능성이 0에 가까운 일이었을 것이다.

더구나 당시 실제 재판에서는 애초에 (정승화 관련 사항뿐 아니라) 변호인단의 모든 증인 신청이 기각되었다고 알려져 있으므로, 당시 태윤기가 실제로 정승화에 대한 증인 신청을 위해 영화에서처럼 온갖 난리를 피웠을 가능성은 희박하다.

그러나 피고인을 구하려는 마음이 간절한 변호사라면 그 가능성이 0에 가깝더라도 정진후에 대한 증인 신청은 포기하기 힘든 일이었을 것이다. 그러므로 위 시퀀스는 정인후가 총력을 다해 박태주를 구하고자 하는 지극히 간절한 성심성의를 잘 표현해낸 (법정물적으로) 좋은 각색이라고 생각한다.

박흥주의 내란목적살인 유죄 여부 김재규 유족의 재심 신청

가. 신군부의 외압에 의한 불법 재판

당시 재판에서 가장 중요한 쟁점은 피고인들의 행위가 내란목적살인에 해당하는지 여부였다. 당시 박흥주는 제1심에서 내란목적살인죄 등이 확정된 후 3개월 만에 총살되었으며, 나머지 피고인 5인에 대한 대법원 판결에서 위 행위가 내란목적에 해당한다는 대법관 8인과 단순 살인에 불과하다는 대법관 6인의 의견이 대립했고, 다수결에 의해 내란목적살인 유죄 등이 선고되어 위 피고인들은 위 판결 후 3일 만에 사형당했다.

재판에는 당시 이미 외압의 정황이 완연했다. 피고인들의 행위가 단순 살인이라는 위 소수의견은 당시 보도가 금지되었고, 위 소수의견을 낸 6명의 대법관은 판결 후 약 3개월 만에 모두 보안사의 강요로 대법관을 그만두어야 했다.

영화에서도 표현된 것처럼, 당시 신군부는 위 피고인들을 반역자로 만들 필요가 있었다. 당시 독재자이던 박정희를 살해한 위 피고인들을 영웅시하는 여론이 대두하고 있었고, 신군부는 자신들의 권력 장악 목적을 위해 위 피고인들을 조속히 역사에서 지워버릴 필요가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법원의 법 해석에 따를 때, 내란 성립에는 국헌 문란의 목적 및 국토의 참절ㆍ폭동이 필요하다. 국헌 문란은 국가의 통치기구를 폭력으로 파괴ㆍ전복하는 것이고, 참절ㆍ폭동은 다수 군중을 동원한 국토 점거 및 국가 주권 행사 배제 행위다. 역사 기록을 살펴보면 위 피고인들의 행위는 내란으로 보기에 무리가 있어 보이며, 당시 내란 행위를 한 이들은 따로 있다. 전두환과 노태우는 1997년에 대법원에서 내란죄 유죄가 확정되고, 각각 무기징역과 징역 17년형을 선고받았다. 이들이 적반하장으로 법원을 겁박해 위 피고인들을 내란죄로 사형시킨 것이다.

나. 재판 녹음테이프 공개와 재심 신청

2020년에 김재규의 유족은 법원에 위 재판에 대한 재심을 신청했다. 취지는 김재규에게 내란목적이 없었음을 밝힌다는 것이다. 재심 개시를 위해서는 무죄 입증의 신규 증거가 제출되어야 하는데, 당시 보안사가 재판 전체를 녹음한 53개 분량의 테이프가 2020년에 비로소 유출되어 법원에 제출되었으므로, 재심 개시는 유력해 보인다. 위 녹음테이프를 통해 보안사가 당시 재판정의 바로 옆방에서 재판을 감시하고 지시 쪽지를 법관들에게 보내는 등 불법 재판을 진행한 사실이 밝혀졌다. 법원은 올해 7월 재심 개시 결정을 위한 심리를 마쳤고 재심 개시 결정을 앞두고 있다. 재심이 개시된다면 전술한 대로 내란목적살인은 무죄가 될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다. 박흥주는 재심에서 무죄판결을 받을 수 있을까

그런데 박흥주의 유족이 재심을 신청한다면, 영화에서 언급한 대로, 상관의 강요된 명령에 대한 복종 의무에 의해 박흥주가 무죄가 될 가능성이 있을까? 그러나 ①위법한 명령에 복종할 의무는 없다는 것이 판례이며 당시 박흥주의 행위는 실정법 위반이었다는 점 ②명백하게 드러나는 것은 아니나, 김재규가 제시한 민주주의를 위한 행위라는 대의에 박흥주도 일정 부분 공감하고 있었던 것으로 보이는 점을 고려하면 강요된 행위라고 보기 힘들다는 점 등을 볼 때, 강요된 명령에 의한 행위로 무죄를 받기는 힘들어 보인다.

다만 전술한 대로 재심시 박흥주의 내란목적살인 부분 자체는 무죄가 되고 단순 살인으로 인정될 가능성이 높으므로, 재심을 신청하는 것이 바람직해 보인다. 만약 당시 재판이 정상적으로 진행되었다면 박흥주는 사형을 당하지 않고 살아 있을 가능성이 높았을 것이다(더 많은 사람을 살해한 전두환도 무기징역을 선고받았을 뿐이다). 박흥주 대령에게 합당한 명예 복권이 이뤄지길 바라본다.

정치재판을 꽤 성공적으로 고증한 법정물

이 영화는 다양한 재판제도와 법적 쟁점들을 영화에서 자연스럽게 다루면서 (위 구두변론 중심을 제외하고는) 고증 오류로 거슬리는 부분도 거의 없는, 법정물로서 꽤 성공적으로 쓰이고 연출된 작품이라고 생각한다. 이 영화가 역사물로서 10·26와 12·12를 잇는 가교가 되고 싶어 한 것처럼, 향후 이를 계기로 나올 또 다른 진지하고 성공적인 법정물을 위한 가교가 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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