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씨네21 추천도서 - <귀매>
이다혜 2024-08-20
유은지 지음 문학동네 펴냄

영화 <파묘>로 오컬트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는 시기. 오컬트 장편소설 <귀매>가 문학동네 플레이 시리즈로 개정 출간되었다. 조선총독부에서 1930년에 펴낸 <조선의 귀매>라는 책에 실린 ‘귀매’의 정의는 “산이나 숲속에 서린 기묘한 기운에서 태어난 요괴”다. 산과 들에서 이따금씩 느끼는 오싹하고 두려운 기분은 귀매가 일으키는 것이라고. 불길한 예감의 진원지로 민속적인 요소를 활용하는 포크 호러 장르의 작품이기도 하다.

숲속에 있는 흰말 한 마리를 발견한 아이로부터 이야기는 시작된다. 갑작스레 나타난 말의 갈기를 쓰다듬는 아이는 하얀 머리를 곱게 쪽 찌고 한복을 차려입은 할머니로부터 그 말을 데려가라는 말을 듣는다. 말은 순하게 머리를 끄덕였지만, 아이는 망설인다. 할머니의 말은 의미심장하지만 또한 수수께끼 같다. “어차피 여기 있어봐야 결국 사라질 수밖에 없으니까”라는 할머니의 목소리가 가물가물 멀어지고, 아이는 할머니를 붙잡으려 하지만 아무것도 손에 잡히지 않는다. “이런 데서 자면 어떡해, 혜린아.” 아이는 엄마가 찾으러 오자 정신을 차리는데 할머니도, 말도 보이지 않는다. 숲속에서는 한 무리의 사람들이 사당처럼 보이는 작은 건물을 부수고 있었다. 혜린은 성인이 되어 민속조사단의 일원으로 부산을 찾는다. 오랜만에 친구 민경을 만난 혜린은 자신이 조사할 예정인 마을에 자살 사건이 연달아 일어났다는 이야기를 전해 듣는다. 학교 선생님으로 일하는 민경 역시 이상한 기척에 신경이 곤두서 있다. 귀신을 보는 능력을 지닌 혜린에게 민경이 고충을 털어놓자, 혜린은 자기가 오랫동안 지닌 말 모양의 부적 목걸이를 민경에게 건넨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민경은 수수께끼의 죽음을 맞이하게 되고, 말 모양의 부적 목걸이는 누군가에 의해 자취를 감춘다. 혜린은 자신을 이 마을로 불러들인 삿된 세력에 맞서게 된다.

<귀매>는 한국적 판타지물이다. 초반부터 으스스한 느낌이 독자를 파고드는데, 동시에 인간이 아닌 존재들이 모두 악하거나 삿된 것만은 아니라는 한국의 민속적 세계관 특유의 접근법이 이야기를 풍성하게 만든다. 예를 들어 도깨비는 인간과 약속을 하고 인간이 약속을 지키지 않으면 해코지를 하는 존재다. 무조건 나쁘다거나 선하다고 하기보다는 인간과 더불어 살아가는 존재인 것. 또한 혜린을 지켜주는 비적의 존재는 수호정령과 같은 느낌. 이들이 마을에 자리 잡은 요귀들을 해치울 수 있을까. 시종일관 으스스한 느낌을 유지하면서 큰 사건을 해결하기 위해 힘을 합치는 인간적인 노력이 전개되는 후반부에 이르면, 예고된 이별의 슬픔으로 뭉클한 감동을 느끼게 된다.

혜인에게 가장 중요한 과거. 그래서 이곳의 일은 그녀에게 뭔가 다른 의미로 다가왔다. 이 일을 해결하지 않으면 미래로 나아가지 못하고 영원히 과거 속에 갇혀버릴 것만 같은 느낌이 들었다. 마치 시작과 끝이 없는 원 안에 갇히듯이 말이다. /11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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