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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평] 열세 서사의 징후적 조류, <행복의 나라>를 계기로 본 한국영화의 한 경향

한국 상업영화의 주요 흥행세 가운데 대표적인 두 기류를 꼽아보자면 ‘밴드왜건효과’(band-wagon effect)와 ‘언더도그효과’(underdog effect)를 들 수 있다. 전자가 대세·강자를 따르는 심리에서 비롯된다면, 후자는 열세·약자를 응원하는 마음이 이끄는 효과다. 역대 한국영화 최대 흥행 연작 <범죄도시> 1~4편(2017~2024)의 관객 총합은 4175만명. 작품의 안과 밖에서 밴드왜건효과가 확연하다. 최강 주먹이 최악 빌런을 후련하게 때려잡아줄 것이라는 악단 마차가 관객을 모았다. 한편으로 김한민 감독의 역대 한국영화 1위작 <명량>(2013)을 포함한 ‘이순신 3부작’도 총 2945만명이 봤다. 이 경우는 서사 내부에 언더도그효과가 뚜렷하다. 이순신 장군은 조정의 지원으로 보나 왜군의 세력으로 보나 누가 봐도 열세인 상황에서 나라를 지켰다. ‘330척에 맞선 12척의 배’라는 홍보 문구는 언더도그효과의 최대치를 노려 적중한 사례다. 그렇다면 ‘마석도 효과’와 ‘이순신 효과’는 양쪽 반대편에 놓인 현상일까. 군·경 쌍두마차가 국내 극장가를 이끄는 걸까. 이에 대해서는 조금 뒤에 논하기로 하고 한국 상업영화 서사 안에서 열세에 처한 인물들의 활약상을 짚어보자.

열세 서사와 K공직자

충무공 이순신은 사실상 해군참모총장에 해당하는 삼도수군통제사까지 오른 최고위직 군인이었다. 하지만 우리는 이순신 장군을 다르게 기억한다. <명량>을 아예 ‘의병 서사’로 보는 견해가 있는데 설득력이 충분하다. “영화는 이순신의 백의종군 이후를 다루고 있으며, 관객들이 알고 있는 역사적 스키마에 의존한다. 선조의 피난 이후 국가는 재난을 능동적으로 극복할 능력이 없을 뿐 아니라, 오히려 이순신의 행보를 방해하는 잠재적인 장애물처럼 환기된다. 이때부터 이순신과 그 병사들은 관군이라기보다는 자경단으로서의 성격을 띤다. (…) 재난의 주체는 국가가 아니라, 국가의 공적 역할을 대신해야만 하는 사적인 주체로서의 자경단이며, 보편적 국민으로서의 의병이다.”(박인성, <대중서사연구> 제26권 2호) 국가의 부재 속에 열세에 처한 인물에 우리는 마음이 간다. 그것이 시대정신이든 내셔널리즘이든 도덕적 우월감이든 그 무엇과 만나 시너지가 폭발하면 천만 영화도 된다. 김한민 감독은 앞서 <최종병기 활>(2011)에서도 전형적인 언더도그의 자경 서사를 내세워 748만 관객을 동원한 바 있다. 역적으로 몰려 멸족된 가문의 아들(박해일)이 청의 침략에 맞서 분연히 떨치고 일어선다는 이야기는 ‘이순신 서사’와 조준하는 과녁이 같은 것이다. 이 관점에서 코로나19 이후 최대 흥행작 <서울의 봄>(2023)은 영락없는 이순신 서사다. 이순신에서 이름을 딴 이태신(정우성)은 이순신 장군 동상을 우러러본 다음 군인으로서 본분을 다하다 최후를 맞는다. 수도방위사령관이라는 요직에 있었지만 그때 그날만큼은 국가의 지원도 없고 병력이 우세한 상황도 아닌 언더도그였다. <행복의 나라>의 박태주(이선균)가 처한 층위는 사뭇 다르지만, 그 역시 날아가는 새도 떨어뜨린다는 중앙정보부의 실세였고 군인의 직분에 충실했다. 그날 이후 국가도 법적 정의도 없이 거대한 권력에 맞서다 형장의 이슬로 사라졌다.

이와 같은 서사적 줄기를 취한 일련의 영화들을 ‘열세 서사’로 지칭해봐도 좋을 것 같다. 열세 서사에는 골리앗에 맞선 다윗의 항전이든 서자 출신 홍길동의 활약이든 동서고금을 막론한 보편적 정서가 작동하는 것은 물론이다. <국가대표>(2009)와 같은 스포츠 소재 영화의 절대다수는 열세 서사가 바탕이기도 하다. 여기에 최근 한국 상업영화에는 독특한 기류가 더해지는 분위기다. 국가 시스템의 일부인 주인공이 국가의 지원을 제대로 받지 못하는 상황에 처하거나 내쳐지는 경우가 주로 설정된다. <명량>, <안시성>(2018), <서울의 봄>의 장군, <내부자들>(2015), <검사외전>(2015), <블랙머니>(2019)의 검사, <모가디슈>(2021), <비공식작전>(2022), <교섭>(2022)의 외교관, <탈출: 프로젝트 사일런스>(2024)의 청와대 행정관, <행복의 나라>의 중앙정보부장 비서관까지가 모두 그렇다. 이들 모두가 제법 높은 지위에 있으며, 극 중 시대적 상황까지를 감안하면 일반 시민으로서는 범접하지 못할 만큼의 고위직인 경우도 많다. 이들은 기득권 엘리트지만 조직 내 권력 투쟁에서 압도적 열세에 처해 있거나, 외부 조건 탓에 상부와의 선이 끊긴다. 궁지에 몰린 이들은 악조건에도 불구하고 공직자로서 소명을 외면하지 않는다.

열세들의 승급?

지금 한국영화는 보고 싶은 것이다. ‘제 역할 하는 K공무원’을. 정확히 말하자면 ‘국가가 부재하더라도 국민이 위임한 힘을 제대로 사용하는 공직자’가 보고 싶다. 어떤 영화는 그래서 극 중 고위 공무원을 통해 일종의 판타지를 구현하기도 한다. <비상선언>(2022)의 국토교통부 장관(전도연)은 재난 상황에서 외국계 기업의 비협조를 호소하는 담당 직원에게 일갈한다. “공권력이라도 동원하셨어야죠. 우리 공무원이잖아요. 책임지라고 있는 사람들이라고요.” 1970~80년대를 지나온 민주화 세대라면 공권력이라는 단어만 들어도 부정적 감정에 휩싸이겠지만 지금은 다르다. 잇딴 참사와 참사 못지않게 가슴을 무너뜨린 대응을 보며 ‘이게 나라냐’를 외친 국민들은, <서울의 봄>에 나오는 이태신의 대사가 차라리 후련하다. “내 조국이 반란군한테 무너지고 있는데 끝까지 항전하는 군인 하나 없다는 게, 그게 군대냐.” 국가 시스템이 정상 작동하지 않아 인물들이 스스로를 구해야 하는 설정은 한국영화의 꽤나 오래된 전통이지만, 이전의 한국 재난영화에서 제 역할을 다하는 공직자는 상대적으로 하급 직원들이었다. <감기>(2013)나 <터널>(2016)의 소방관, <부산행>(2016)의 기관사 등이 그랬다. 최근의 한국영화는 이 역할을 좀더 높은 직급에 맡기는 중이다.

<행복의 나라>는 이러한 흐름 속에서도 매우 독특한 자리에 있다. 박태주 대령은 도무지 이입하기 어려운 인물이다. 살인을 저질렀고 졸속 재판 끝에 사형당했다. 동료나 시민을 지켜낸 경우도 아니다. 통쾌한 구석이라곤 단 한 군데도 없는 캐릭터다. 더욱이 그는 박정희 정권 시절 민주화 인사들을 고문하고 살해해온 기관의 요직에 있었다. 같은 층위에서 전두환 정권의 공안검사(하정우가 연기한 <1987>의 공안부장)에게도, 박정희 정권의 군 최고위 간부(이성민이 연기한 <서울의 봄>의 참모총장)에게도 결코 감정이입이 되지 않는 관객이 적지 않을 것이다. 그럼에도 최근 여러 편의 한국영화가 드러내는 욕망은, 서슬 퍼런 압제 시스템의 일부였다 하더라도 자신의 자리에서 최소한의 원칙을 지켜준 이가 있다면, 더욱이 그가 힘 있는 위치에 있었다면, 역사에 맺힌 울분을 달래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것이다. 말할 것 없이 여기에는 언제부턴가 한국 장르영화의 기본값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만큼 빈번히 등장하는 ‘국가의 부재’가 자리한다. 사회의 주류 기득권 혹은 신자유주의 시스템이 나의 문제를 중요하게 다뤄줄 것이라는 기대는 실망을 넘어 체념 단계에 이르렀고, 그에 따른 배제에 대한 공포가 역력한 사회의 징후다. 그래서 <행복의 나라>는 그 어떤 조건보다 ‘그게 누구든 헌법에 명시된 기본권을 보장받아야 하며 합당한 절차에 따라 조치받는 일’을 중시한다. 이를 위해 시민의 대리인으로서 정인후 변호사(조정석)는 다소의 무리수를 두면서까지 판타지를 전경화한다. 그가 참모총장이나 보안사령관을 대면하는 여러 장면들은 당시 시대상을 고려할 때 존재하기 어려운, 욕망의 구현이다. 언제든 배제의 나락으로 떨어질 수 있다는 위기감 속에서 나를 지켜줄 누군가가 영화에는 있을 것이라는 기대의 투영이다.

힘든 세상을 떠도는 판타지

<행복의 나라>가 10년도 넘은 시나리오에서 출발했다지만 중요한 건 이 영화가 구체화되고 실현된 시기일 것이다. 이전에는 드물었던 ‘고위공직 열세 서사’ 흐름이 2010년대 중반 전후로 본격 형성된 요인을 한두 가지로 꼽기는 어려울 것이다. 믿을 만한 정치세력의 부재 또는 대안으로 여겨온 정치 진영에 대한 거대한 실망, 잇따르는 사회적 참사와 미흡하기 짝이 없는 후속 조치, 결혼·출산을 외면하는 것이 합리적 선택일 수밖에 없는 외풍, 공정이란 무엇인지 알다가도 모를 성과 중심주의 세태, 세상을 연결시켜줄 것으로 기대했던 IT 기술이 개인에게 가져다준 고립감, 그런 와중에 닥쳐온 팬데믹과 생태계 위기에 따른 불안감 등등은 공공영역이 제 기능을 하지 않고서는 해결에 다가설 수 없는 문제들이다. 빌런이 너무 많다. 이런 가운데 강한 적에 맞서는 더 강한 공권력을 마석도 형사가 구현하고, 망가진 시스템 내부에서 원칙과 소신을 저버리지 않는 이순신 장군이 맡은 일을 해낸다. 어쩌면 요즘 한국영화를 가로질러 질주하는 밴드왜건과 언더도그들은 힘겨운 세상에 떠도는 판타지 자체인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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