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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쉽게 흔들리지 않는 단단한 마음, <한국이 싫어서> 배우 김우겸
조현나 2024-08-20

지명은 자신만의 삶의 속도가 있다. 성실하고 특별히 모난 데 없는 그는 변함없이 우직하게 자신의 자리를 지킨다. 틀에 박힌 한국에서의 삶에 질린 계나(고아성)는 그런 지명을 답답하게 느끼곤 하지만, 그럼에도 지명은 떠나는 계나에게 “기다릴게”라고 말한다. 그리고 조용히 그 말을 지킨다. 수년이 지나 다시 계나와 재회한 순간, 지명은 계나와의 시간을 소중이 여기면서도 기자로서의 루틴을 포기하지 않는다. 그야말로 성실한 한국인의 표상이다. 배우 김우겸은 지명의 행동과 말을 살피면서 자신의 것으로 체화했다. “요즘, 연기가 즐겁다”며 차분히 촬영 현장을 회상하는 그에게선 지명과 마찬가지로 자신의 신념을 올곧이 지키려는 노력이 느껴졌다.

- <한국이 싫어서>를 마지막으로 본 건 언제인가.

= 부산국제영화제 개막식 때 야외상영으로 본 게 처음이자 마지막이었다. 영화가 어떻게 나왔을까 궁금했는데 고아성 배우, 주종혁 배우도 그렇고 다들 연기를 너무 잘해서 배우로서 많이 배웠다. 개인적으론 나 자신이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지 돌아보는 계기가 됐다.

- 돌아켜보니 어떤 생각을 하고 있던가.

= 영화를 기준으로 말하자면 지명과 계나, 재인 세 캐릭터 모두가 내 안에 있다고 느낀다. 각자 시야도 다르고 선택하는 것도 다르지만 세 사람 다 자기 삶을 잘 꾸려가고 싶어 하는 사람들이다. 삶의 형태는 달라도 비슷한 고민을 하는 같은 세대의 이야기라서 공감이 갔다. 한편으론 그들을 보며 오히려 안도했다. 살면서 이런저런 고민이 드는 게 당연하구나 싶었다.

- 미팅 때 장건재 감독이 하마구치 류스케 감독의 책 <카메라 앞에서 연기한다는 것>을 건넸다고.

= 캐스팅 확정 전의 미팅이었던 걸로 기억한다. 감독님이 ‘좋아하는 책인데 이번에 기획해서 번역서를 내게 됐다’고 하시더라. 앞에 짧은 문구까지 적어 건네주셨다. 섭외 이야기 없이 같이 밥 먹자고 해서 나간 자리였고 내가 어떤 사람인지 알아보고 싶어 하는 진심이 느껴졌다. 나가기 전엔 무슨 이야기를 해야 하나 싶었는데 감독님이 편하게 대해주셔서 나도 있는 그대로 이야기를 나눴다.

- 연기한 배우로선 지명을 어떤 캐릭터라고 느꼈나.

= 지명은 주어진 상황에 만족할 줄 안다. 그래서 자신을 굉장히 좋아하고 내실도 단단하다. 어쩌면 그래서 계나를 오랜 시간 좋아할 수 있었던 게 아닌가 싶다. 손 안의 것에 만족하고 그것에 집중할 줄 아는 게 멋져 보였다.

- 지명은 대사에서 신념이 잘 드러난다. 계나와 식사할 때도 “한국은 열심히 사는 사람들에게 기회의 땅”이라고 말한다.

= 딱 그 대사가 지명이를 잘 보여준다. 자기가 가는 길이 옳다고 믿고 다른 선택지를 고려조차 하지 않는데 그게 누군가에겐 답답하게 느껴질 수 있다. 하지만 나는 삶에 필요한 태도라고 봤다. 지명에게 배워야 할 점이 많다.

- 한 인터뷰에서 “캐릭터에 대해서 나만 아는 비밀이 있으면 연기할 때 자신감이 생기고, 그걸 관객도 아는 것 같다”고 대답한 바 있다. 여기서의 비밀은 배역의 전사 같은 건가.

= 아까의 답과 맥락이 이어지는데 나는 내가 진짜 좋아하거나 닮고 싶은 부분이 생기면 캐릭터에게 마음이 쉽게 간다. 지명에게도 그런 부분이 있었다.

- 기자들을 직접 만나 자문을 구했다던데 어떤 이야기를 듣고 연기에 반영했나.

= 부서마다 다르긴 하겠지만, 엄청 일찍 일어나야 하고 군기를 심하게 잡는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기자에 관한 다큐멘터리도 찾아봤는데 잠을 거의 못 자더라. 입사 초반에는 바빠서 자기만의 시간을 갖기가 어렵다는 말도 참고했다. 이런 업무 사이클에 지명을 대입해보면 지명은 계나가 없는 한국에서도 잘 지냈겠구나 싶었다. 부지런히 업무를 쫓아가면서 일에 몰입하지 않았을까. 그렇게 사는 게 계나와 자신의 관계에도 도움이 된다고 여겼을 거다.

- 지명은 그 와중에도 계나를 생각하는 건가.

= 바쁜 와중에도 문득문득 계나를 떠올렸을 것 같다. 계나가 해외로 떠날 때도 “기다릴게”라는 말을 하는데 지명은 그런 말을 허투루 할 사람이 아니다. 비현실적으로 느껴질 수 있지만, 지명에겐 그런 마음이 있을 거라는 믿음이 간다.

- 계나처럼 커리어나 가족을 뒤로하고 떠날 수 있을 것 같나.

= (잠시 망설이다) 지금 생각해보니 나는 안될 것 같다. 여행 자체는 무척 즐긴다. 하지만 나는 지금 연기라는 내가 좋아하는 일을 하고 있기 때문에 다른 나라로 떠나서 살고 싶다는 생각은 들지 않는다. 물론 더 어릴 때는 무작정 도망치고 싶은 마음이 들기도 했다. 그런데 지금은 내가 여기서 이루고 싶은 게 분명히 있다. 말하고 나니 지명과 내가 꽤 비슷하다. (웃음)

- 단편 <>로 2014년에 데뷔한 뒤 10년이 흘렀다. 적지 않은 시간인데 오늘 이야기를 들으니 연기에 대한 애정이 여전해 보인다.

= 요즘 연기가 더 재밌고 좋다. 예전에는 관심받고 싶고, 인정받고 사랑받고 싶은 게 있었는데 좋아하는 마음만으로도 충족되는 게 있다.

- 하반기 계획은 어떻게 되나.

= 드라마 촬영이 예정되어 있다. 그리고 취미를 하나 만들고 싶다. 내가 즐길 수 있는 걸 잘 찾고 싶다. 그리고 지명처럼 계속 열심히 일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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