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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사랑이 가장 귀해서, <딸에 대하여> 오민애
김소미 2024-08-28

국내 영화제를 빼곡히 채운 단편영화들로 진즉 존재감을 각인했고, 독립영화 <윤시내가 사라졌다> <초록밤> <첫번째 아이> 등으로 부지런히 활동해온 오민애를 만났다. <딸에 대하여>에 이어 <파일럿> <한국이 싫어서>, 넷플릭스 시리즈 <돌풍> 등으로 요즘 우리를 분주하게 노크하고 있는 그다. 오민애가 연기한 <딸에 대하여> 속 요양보호사로 일하는 엄마는 존엄을 지키기 어려운 노인들의 삶에 자기 미래를 겹쳐둘 때 불안한 한편, 주거와 고용 불안에 시달리는 딸 그린(임세미)을 통해 청년세대의 고충도 피부로 느낀다. 게다가 당장 그의 삶에서 더 시급한 해결책을 요구하는 이슈는 따로 있는데 바로 동성 연인인 딸 커플과의 동거다. 배우 이전에 인간으로서, 생활에 밀착한 다양한 경험을 내재한 배우 오민애가 연기한 엄마의 행로는 어떻게 비추어질까. “한 사람의 호흡과 무표정 안에 그의 역사가 담겨 있다”고 믿는 배우는 자기감정을 억누르는 데 익숙한 사람의 완고한 입매와 지친 눈동자 속으로 걸어들어갔다. 그리고 거기서 멈추지 않고, 사랑으로 천천히 나아간다.

- 얼마 전 열린 26회 정동진독립영화제(이하 정동진영화제)에서 <딸에 대하여>가 관객 투표상인 땡그랑동전상을 받았다. 한여름의 정동진을 잘 즐기고 돌아왔겠다.

밤 11시 다 돼서 상영이 끝났는데 사람들이 빠지질 않더라. 그 열기와 다정함에 얼마나 놀랐는지! 정동진영화제는 개인적으로도 정말 좋아하는 곳이다. 둘째 날엔 <딸에 대하여> 팀원들과 밤의 해변에 놀러갔고 나 혼자 밤바다에서 수영을 했다. 아무도 없는 바닷물에 몸을 담가본 것은 처음이었다. 잊지 못할 것 같다.

- 영화 활동을 본격적으로 시작하기 전 대학원에서 사회복지를 공부하고 실제로 요양보호사 자격증을 취득하기도 했다. <딸에 대하여> 속 엄마의 심리에 밀착하기까지 이 여성이 처한 현실의 사정을 어떻게 해석했나.

처음엔 내 경험을 대입할 생각은 못했다. 오히려 가장 보편적인 중년 여성의 초상을 그렸다. 우리 나이의 많은 여성들이 가정과 학교에서 배웠던 것을 진실이라고 믿고 살아간다. 여자는 남자를 사랑해야 한다는 것을 의심할 기회가 없다. 사회의 평판에 아주 민감한 것도 사실이다. 그러니까 엄마는 딸 그린이 그저 보통 사람처럼 살아주면 좋겠다고 바랐을 것이다. 그 과정에서 원망, 부끄러움 같은 감정에 직면하지 않았을까. 그렇게 젊은 세대와 괴리감을 느끼는 상황에 처한 게 엄마의 현실이다. 게다가 딸 문제만 있는 것이 아니다. 이제 자녀도 다 컸고 자기 자신으로서 살아가는 독립적인 삶에 대한 열망도 있는데 정작 몸은 여기저기 아파오면서 늙음에 대한 두려움도 굉장히 커져 있다. 요양보호사라는 직업을 갖고 스스로 경제권도 쥐고 있지만, 그럼에도 사라지지 않는 불확실성 속에서 몸과 마음 모두 불안한 상태가 이 캐릭터의 가장 기본적인 감정선이라고 봤다.

- 타인을 납득하는 것이 아니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과정을 가족관계 내에서 실천해보는 영화라고 봤다. 장년의 나이대에는 영영 묘연한 일일 수도 있는데 <딸에 대하여>의 엄마는 그것을 해낸다.

말 그대로 스며들듯 벌어지는 일이다. 처음엔 엄마도 거부하고 싶었을 것이다. 결국 이 영화의 종착지에 다다르면, 건널목의 맞은편에서 자기 딸 커플과 비슷한 모습을 한 연인을 보고 자신도 모르게 미소 짓는다. 영화를 보면서 생각했다. 사람이 마음속에 사랑을 품는 건 그 자체로 너무 귀한 일이라고. 사실 우리는 누구나 사랑을 품고 살아가길 원한다. 연예인을, 강아지를, 식물을 이렇게나 사랑할 수 있는 존재인데 정작 가족과는 그걸 잘 못 이룬다. 영화 말미에 엄마가 깨달은 것은 다름 아닌 사랑이다.

- <딸에 대하여>를 비롯해 <파일럿> <한국이 싫어서>가 비슷한 시기에 나왔고 넷플릭스 시리즈 <돌풍>도 얼마 전 공개되었는데, 요즘을 오민애의 전성기라고 부를 수 있을까.

이 정도로? (웃음) 전성기는 이후로 따로 남겨두자! 찍어둔 작품들이 줄지어 나오고 있긴 한데 사실 요즘 내 생활은 어느 때보다 조용하다. 올해 1월을 기점으로 5~6년 만에 처음 한동안 일이 없는 시기를 보내고 있다. 마지막으로 영화에 한번 제대로 도전해보자고 결심한 것이 2018년이다. 그때 필름메이커스에 내 프로필을 올려 독립 단편영화부터 찍기 시작한 뒤로 지금까지 정말 쉼 없이 달렸다. 그러다보니 일정이 조금 잠잠해진 최근에 불안감이나 조바심이 든 것도 사실이다. 그제야 <딸에 대하여> 속 엄마 마음이 이랬겠구나 하고 뒤늦게 더 깊이 체감한 부분도 있다. 그리고 최근엔 마음을 고쳐먹기로 했다. 계절의 이치와 비슷한 것 아닐까 싶어서. 지금 나에게 자연스럽게 겨울이 왔나보다, 하고 말이다. 동면하듯 잘 충전해서 또 찾아올 풍요로운 봄을 맞이할 준비를 하고 있다.

- 모처럼 주어진 여유시간을 어떻게 보내고 있나. 한동안 SNS에 열심히 춤을 배우는 모습을 공개해 인상적이었는데.

아침에 영어학원에 간다. 지금이야 더듬더듬 이야기하는 정도지만 하다보면 콩나물 자라듯 언젠가 나도 자라지 않을까? 낮에는 골프를 치러 나간다. 한동안은 주짓수를 열심히 배웠는데 회복력이 따라주질 않더라. (웃음) 정확히 말하면 무언가 배우는 것 자체가 목적이라기보다 사람을 보기 위해 간다. 나는 배우가 자신의 작품에만 의지해 인생의 경험을 추구하면 진정성이 떨어질 수도 있다는 걱정이 있다. 평소에 다양한 사람, 다양한 무대에 스스로를 노출시켜서 나를 확장하려 한다. 골프를 배우러 나오는 중년 여성들, 자기 몸 관리에 투철한 주짓수 학생들, 끊임없이 자기 발전을 하려고 영어학원을 찾아오는 사람들 등 저마다의 문화와 세계관을 지켜보고 있다. 그들의 생각과 언어를 내 세포에 저장하고 싶다는 소망을 품고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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