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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우직하게, 굳건하게, 뒤돌아 후회하는 일 없이’, <딸에 대하여> 임세미
조현나 2024-08-28

임세미 배우가 연기한 그린은 불의를 쉽게 지나치지 않는 올곧은 에너지를 지녔다. 그는 소수자라는 이유로 대학에서 해임된 동료 교수를 위해 가장 앞장서 목소리를 낸다. 전세보증금 문제로 그린은 엄마(오민애)의 집으로 들어온다. 엄마와 그린 사이에 마찰이 생긴 건, 그린의 동성 애인 레인(하윤경)이 함께 살게 되면서부터다. <딸에 대하여>를 통해 독립영화의 세계에 발을 들인 임세미는 인터뷰의 첫 대답부터 작품에 대한 강한 애정을 보였다. “삶에 대해 지금 우리 나이대가 지닌 고민과 나이든 미래에 맞닥뜨릴 고민을 함께 바라볼 수 있어 좋았다”라며 “소수자에 대한 타인의 시선을 느껴볼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라고 힘주어 말하는 그의 눈빛에선 그린만큼이나 단단한 심지가 비쳤다.

- 부산국제영화제에 배우로 참석한 것은 <딸에 대하여>가 처음이라고.

새로운 곳에 놀러가는 어린아이처럼 설레고 떨렸다. 레드카펫을 밟는 배우 선배님들, 동료들을 보면서 나도 저길 갈 수 있는 때가 올까 싶었는데 출연작과 함께 가게 돼 의미가 컸다.

- 장편 독립영화를 하고 싶어 소속사를 옮길 정도로 독립영화에 대한 열망이 컸던 것으로 안다. 그렇게 처음 참여한 작품이 <딸에 대하여>다.

성현수 눈컴퍼니 대표님이 “세미씨랑 너무 잘 어울리는 작품이 있는데 해보면 어떻겠냐”고 제안해주셨다. 배우로서의 삶보다는 인간 임세미로서 걸어온 행보를 보고 그린과 잘 어울릴 거라고 생각해 제안을 주셨다더라.

- 본인도 그린과 겹치는 지점이 있다고 느꼈나.

물론이다. 사실 내겐 레인과 비슷한 지점도 있다. 자기 자리를 굳건히 잘 지킨다는 면에서 그렇고, 일상에선 환경보호와 같은 사회문제에 목소리를 내는 편이다 보니 그린과 맞닿은 지점이 많다. 그래서 감독님이 내가 그린 역에 잘 어울린다고 하신 이유와 어떤 모습이 그린에게 담기기를 바라셨는지 잘 알 수 있었다. 한편으론 그린을 보면서 ‘사람들도 나를 저렇게 볼까?’ 하는 궁금증이 생겼다.

- 단순히 배우의 입장에서 영화를 관람한 건 아닌가보다. 관객의 눈으로 본 그린은 어떻던가.

아무래도 엄마의 시선을 따라 그린을 바라보게 돼서인지 답답할 때가 많았다. 가장 가까운 사람인 엄마도 자식을 이해하지 못하는데 그럼 타인은 얼마나 이해할까 싶었다. 그런 감상과 별개로 그린의 행동은 지지해주고 싶다. 그의 선택이 반드시 필요한 것이었다고 생각한다.

- 그런 면에선 레인이 그린에게 큰 힘이 되어줬다. 항상 굳게 믿고 옆을 지켜주는 존재다.

그린은 강한 에너지를 지녔다. ‘나 몰라? 나 믿어!’라는 태도로 직진한다. 그 에너지가 피곤하기보다 응원해주고 싶게 만든다. 그래서 레인이라는 든든한 파트너와 좋은 동료들이 주변에 있고, 덕분에 계속 전진할 수 있었을 것이다. 촬영할 때는 “엄마가 알려줬잖아”라는 그린의 대사에 꽂혀 있었다. 그린이 지금과 같은 사람이 될 수 있던 건 어른으로서 해야 할 일을 하라고 엄마가 알려준 덕분인데 그래서인지 그걸 부정당하는 순간이 크게 다가왔다. 결국 그 모든 행동이 사랑에서 비롯된 것이라는 점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엄마가 레인을 받아들이지 못하면서도 요양원의 할머니에게 집착하는 이유는 결국 자신 혹은 자신의 딸이 혼자 남게 되는 게 두려워서였으니까. 그린이 엄마 앞에선 울고 무너지는 모습을 보일 수 있었던 것도 엄마에게 받은 사랑이 크기 때문이다.

- 실제 엄마와의 관계를 대입해보기도 했나.

그렇다. 엄마와 신랄하게 싸웠던 순간을 떠올렸다. 촬영하면서 종종 우리 엄마라면 어땠을지 대입해보기도 했다. 엄마는 아직 영화를 보지 않으셨는데, 보신다면 “꼭 너 같은 걸 찍었네” 하고 말씀하시지 않을까 싶다. (웃음)

- 이미랑 감독이 무척 섬세하게 작업하는 스타일이라고 들었다. 그린에겐 어떤 것을 요구했었나.

그린이 엄마와 통화하는 신이 많은데, 전화해선 엄마에게 돈을 빌리는 신을 다시 녹음해주면 좋겠다고 하셨다. 감독님은 아마 영화를 몇천번은 보셨을 거다. 그런데 그린의 숨소리, 말소리가 아쉬워서 다시 새 버전으로 녹음하고 싶으셨던 거다. 그래서 집에서 이불을 뒤집어쓰고 20개가량의 재녹음본을 보내드렸다. 그만큼 집요하시다. (웃음) 촬영 현장에서도 꼼꼼하게 디렉팅을 주셨다. 배우로서 그에 부응하고 싶다보니 다양한 시도를 했던 기억이 난다.

- 지난 8월19일 <고물상 미란이>가 공개됐다. 오랜만에 단막극을 촬영한 소감은. 그 밖에 또 임세미 배우를 만날 수 있는 차기작이 있을까.

단막극을 워낙 좋아해서 즐겁게 촬영했다. 강아지를 고물처럼 버린 사람을 찾으러 다니면서 자기 마음의 상처까지 치유하는 과정을 그린 작품인데 현장이 정말 귀여웠다. (웃음) 시청자에게도 자기 마음을 돌이켜보는 시간이 되면 좋겠다. 현재 <트라이: 우리는 기적이 된다>라는 드라마를 촬영 중인데 한국 스포츠 드라마에서 사격과 럭비를 다룬 적이 없던 것으로 안다. 극 중 사격선수라 열심히 사격을 배우고 있다. 너무 재밌다. 운동선수들이 얼마나 멋있는지 깨닫는 중이다. 마찬가지로 촬영 중인 <그놈은 흑염룡>도 무척 밝은 드라마로 최현욱, 문가영, 곽시양 배우와 재밌게 현장에 임하고 있다.

- 연기 활동 외의 모습도 개인 유튜브 채널 <세미의 절기>를 통해 공개하고 있다. 채식, 환경보호 등 다양한 주제를 다룬다.

원래 나를 드러내는 걸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그런데 채식을 지향하면서 모든 걸 드러내기 시작했다. 채식이 까다롭거나 특별한 일이 아니라는 걸 일상을 통해 보여주고 싶었다. 유튜브도 기후 위기가 심화되면서 한국의 절기가 사라질까 두려운 마음에 시작했다. 유튜브를 하게 된 이후로 팬들, 관객들이 텀블러를 들고 다니기 시작하거나 삶에서 환경을 위한 여러 시도를 하고 있다고 공유해준다. 회사 사람들도 내가 있을 땐 배달 음식을 안 시켜 드신다. (웃음) 그런 걸 보며 나도 역으로 마음을 다잡고 많이 배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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