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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관찰자시점인 동시에 주인공시점인 복합적 영화언어, <딸에 대하여>
정재현 2024-09-04

영화는 요양보호사로 일하는 엄마(오민애)가 보내는 어느 여름날의 풍경으로 문을 연다. 무거운 수박 한통을 이고 홀로 언덕 위의 집으로 향한 엄마는 큰 수박을 퍼 먹고 잠을 청하지만 끊이지 않는 고민들로 쉬이 잠들 수 없다. 엄마의 시선 끝엔 딸(임세미)이 있다. 비정규직 대학 강사로 근무하는 딸은 전세금 마련이 여의치 않아 급기야 다시 엄마의 집으로 돌아온다. 엄마는 딸이 윗집 가족처럼 ‘정상적’인 삶을 살길 바란다. 안정적인 직장과 든든한 이성 반려자를 얻고 귀여운 아이를 낳아 남들만큼만 살길 원한다. 하지만 딸은 동성 연인(하윤경)을 둔 동성애자고, 비정규직 시간강사면서 부당하게 해고된 동료 강사의 복직 시위에 열중해 엄마를 근심케 한다. 한편 엄마는 한때 유명 석학이자 자선가였지만 지금은 치매에 걸려 아무도 찾지 않는 제희(허진)를 돌본다. 연고 없이 병에 스러지는 제희를 돌보며, 엄마는 늙어가는 자신의 육체를 근심하고 결혼할 수 없는 딸을 염려한다.

<딸에 대하여>는 2017년 발간된 김혜진 작가의 동명 소설을 원작으로 한다. 일부온라인 서점은 원작 소설 <딸에 대하여>를 성장소설로 분류하는데, 영화 <딸에 대하여> 또한 엄마의 시점을 경유하면 ‘엄마의 성장 영화’라고 충분히 요약 가능한 영화다. 당장 엄마가 딸과 딸의 동성 연인을 받아들이는 결과를 성장이라고 본다 해도 그렇다. 한데 <딸에 대하여>는 엄마가 성장에 이르기까지의 면밀한 궤적을 상세히 좇는 영화이기도 하다. 이를테면 엄마는 딸이 선배 언니의 복직 시위에 앞장선 사실을 두고 “너와 상관없는 일에 끼어들지 말라”고 권한다. 반면 제희를 성심껏 돌보는 엄마 또한 제희의 처우를 두고 분노할 때마다 최 여사(강애심)로부터 “남의 일인데 무슨 상관이냐”는 말을 듣는다. 엄마는 ‘서로 관련을 가지는’ 상관이라는 단어를 무심코 뱉고 또 받으며 스스로를 돌아본다. 어느새 딸은 시위의 주동자가 돼 부상을 입고, 엄마가 직장을 비운 사이 제희는 엄마의 근무지로부터 사라진다. 엄마가 스스로와 무관한 고통이라고 치부한 타인의 문제는 곧 소중한 존재 에게 닥친 위협이 되고, 자신의 소관이라고 마음을 쏟았던 일은 하루아침에 멀어진다. 영화는 절제한 숏과 배우들의 호연을 통해 엄마가 겪는 수많은 갈등을 관객이 함께 겪도록 하고, 개인이 처한 위기를 개인과 구조 차원에서 함께 고민하게 한다. 원작에 존재하지 않는 영화의 에필로그에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영화가 러닝타임 내내 묵묵히 구축한 분위기와 이격이 큰 이야기를 결말에 덧붙인다. 이견이 갈릴 법한 장면이지만 이 에필로그는 영화가 캐릭터를 끝까지 안고 있음을 보이는 결말이다. 엄마는 처음부터 끝까지 직업인으로서도 딸의 정체성을 재고하는 인간으로서도 여전히 유효한 사고를 하는 모습으로 그려진다. <딸에 대하여>는 일련의 사건이 지나갔다고 해서 개인의 고뇌가 정체되거나 사라지지 않음을, 다만 우리 모두는 흘러간 시간에 정직하게 비례해 다른 삶의 국면을 여전히 통과 중일 뿐임을 은연중 내비치며 영화의 문을 닫는다.

close-up

<딸에 대하여>의 시점은 어떻게 정리하면 좋을까. 엄마는 비정규직의 노동권, 사각지대에 놓인 돌봄노동, 성소수자의 삶 등 자신과 주변 개인이 처한 위기를 마주하는 ‘관찰자’다. 하지만 영화는 엄마 개인과 엄마로 대표되는 한 세대의 실존을 고심하는 명백한 주인공이다. 그렇게 <딸에 대하여>는 관찰자시점과 주인공시점을 동시에 견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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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브리바디 올라잇>, 감독 리사 촐로덴코, 2010

<에브리바디 올라잇> 속 동성 부부 닉(애넷 베닝)과 줄스(줄리앤 무어)는 각자가 낳은 두명의 아이들과 함께 행복한 가족으로 살고 있다. 이 단란한 가정에 어느 날 두 아이의 생물학적 아버지인 폴(마크 러펄로)이 방문하고, 4인 가족의 관계는 요동하기 시작한다. 갑자기 나타난 폴은 아이들에겐 관계 형성의 새로운 방도로 자리한다. 영화의 영문 원제는 <The Kids Are All Right>다. 적당히 의역하면 ‘아이들에 대하여’가 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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