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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관객들의 강한 호불호마저 즐겁다, <인서트> 감독 이종수
최현수 사진 백종헌 2024-10-25

“설화를 만들고 싶었다. 영화에 매달리고 힘들어했던 나날들에 관한 이야기로.” 인서트 감독으로 일하는 남자 진주석(남경우)과 촬영 현장에 무심코 들어온 여자 마추현(문혜인)의 기이한 만남을 담은 영화 <인서트>에는 애증이 군데군데 서려 있다. 분명 영화에 대한 영화로 읽히지만 하염없는 예찬보다는 뾰족한 일갈이 눈에 들어오는 이유는 영화에 “사랑했다가 대차게 차인 기분”을 느낀 이종수 감독의 속내 때문이다. “대체 영화가 뭐길래 사람을 이렇게 힘들게 하는지 모르겠다. 근데 어떨 때는 지독하게도 영화를 짝사랑하게 되고 만다.”

영화를 전 애인처럼 대하는 이종수 감독의 고백 때문인지 <인서트>에는 미련과 풍자를 오가는 대화들로 가득하다. 관객과의 대화가 진행되는 내내 중언부언을 늘어놓는 평론가와 감독들의 답변들. 비틀거리는 술자리에서 허황된 푸념으로 가득한 주정들. 심지어 추현을 면전에 두고 현학적인 영화 지식을 늘어놓는 주인공 주석의 말들은 음소거되고 만다. 이러한 과감한 연출에는 “대사의 알맹이보다 대화라는 행위 자체로 인식”되기를 원했던 이종수 감독의 의도가 담겨 있다. 그에게 언어란 차라리 공기 중으로 흩날리는 쭉정이에 가깝다. “과도하게 긴 대화 신들 중 몇 장면을 제외하면 구체적인 대사를 쓴 적이 없다. 배우들에게 ‘익명의 감독을 지어내서 영화 지식 자랑 좀 해보세요’와 같은 추상적인 상황만 던져주었다. 대화의 내용은 중요하지 않다. 대신 그들의 즉흥적인 형상을 담아내려 했다.” 내실 없는 대화를 파헤치면 침묵과 괴이한 공기를 감지할 수 있다. 이종수 감독은 영화와 현실 사이로 침투한 어색한 분위기들을 오히려 “유머의 일부”라고 이야기한다. “나름대로 진지한 사람들끼리 벌이는, 아등바등하는 기싸움을 먼발치서 보고 있으면 유머가 부재한 상황 자체가 웃기게 보인다.”

영화에 담긴 현실과 진배 없는 상황을 보고 있자면 진이 빠질 수도 있다. 그러나 <인서트>는 단순히 냉담한 조소만으로 가득 찬 영화는 아니다. 이종수 감독은 아직 남은 영화를 향한 미련을 “카메라를 통해 포착한 풍경”으로 드러내고 있었다. “인물의 얼굴을 옅은 심도로 담고 있는 극영화의 작법엔 흥미가 없다. 감정은 자유로운 눈보다는 하나의 대상에 천착하는 카메라의 시선으로 충분히 대체할 수 있다. 어쩌면 내가 차인 대상은 극영화의 공식이 아닐까.” 주인공 주석이 카메라에 온전히 담지 못한 미려한 풍경도 실은 영화를 향한 애증인 셈이다. 이토록 이종수 감독이 애증하게 된 영화는 대체 어떤 존재일까. 가장 영화적인 순간을 “오히려 실제로 옆에 있을 것만 같다고 느껴지는 순간”이라고 밝힌 대답에서 그 실마리를 찾을 수 있었다. “보는 사람이 진짜라고 믿어야 이야기 안으로 들어올 수 있다. 현실은 불편한 이물감을 동반한다. 영화가 현실적인 감각을 제시한다면 그 안에서 반대로 낯설고 괴이함을 느낄 수 있다.” 영화에 대한 저주와 예찬이 공존했던 인터뷰의 끝은 여전히 영화를 사랑하느냐는 질문이었다. 이종수 감독은 “누가 사랑하지 않는 대상에 모든 것을 투자하느냐”라며 호쾌하게 웃는다. “모두의 사랑을 바라는 작품은 아니다. 관객들의 강한 호불호마저 즐거운 일이 될 것이다.” 이종수 감독의 염원이 닿은 것일까. <인서트>는 이번 부산국제영화제에서 ‘한국영화에 자극을 주는 인서트’라는 평과 함께 크리틱b상을 수상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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