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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길의 슬픔의 케이팝 파티] 우린 처음부터 외딴 별
복길(칼럼니스트) 2025-03-27

세상에 날 좀 팔고 싶은데 방법을 모르겠다. 영업에 성공할 수 있는 가장 쉬운 전략은 아무래도 외모일 텐데, 나에겐 그것이 없다. 아름답다면 걷기만 해도 사람들이 입소문을 낸다. 오늘 밀라노에서 찍힌 카리나 사진 밑엔 이런 댓글이 있었다. 천한 것들아 모두 여왕 앞에서 고개를 조아려라….

댓글을 마주하고 느낀 오묘한 기분을 여기에 옮기고 싶다. 아름답다는 말을 눈에 띄게 하고 싶었던 것이겠지만, 외모와 권력이 너무 노골적으로 이어져 있지 않나? 길을 걷고 있는데 갑자기 누군가가 와서 “당신 정말 아름답네요. 지금부터 저의 군주입니다”라고 하는 거다. 지나가던 사람들은 졸지에 천민이 되어서 같이 고개를 조아려야 하는 거고…. “백현이 나라다”를 10년째 외치는 친구에게도 말했다. 외모를 그렇게 칭송하는 건 좀 이상한 거라고. 물론 친구는 듣는 척도 하지 않았지만.

K팝에 대한 글을 쓸 때 외모는 피하고 싶은 소재다. 외모지상주의는 배격하고 싶은 사상이지만 동시에 내가 애정을 가진 K팝의 기반이기 때문이다. 아마도 그 모순을 파고든다면 분명 좋은 글을 쓸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나쁜 글을 쓰는 사람이고 그래서 멀리 도망친다. 이를 꽉 깨물고 ‘외모에 관해 말하지 않기’를 원칙으로 고수하면서.

하지만 외모를 논하지 않고 쓴 K팝 이야기는 그 빈칸에 다른 맥락을 넣지 못한다면, ‘외모 언급을 하지 않겠다’는 억지만 느껴지는 텅 빈 수레다. K팝 팬덤을 경험해본 이들이라면 아마 이해할 것이다. 입덕 후 일정 시기가 지나면 사람들이 마치 진정성 대결을 하듯 실력과 인성에 대해서만 말한다. 1년 전에는 분명 어깨가 넓고, 허리가 잘록하고, 이런 말을 하루 종일 하지 않았나요? 왜 갑자기 진중하게 말하는 습관과 호수에 뜬 달빛 같은 저음 때문에 당신을 사랑하게 되었다고 하시는 건데요? 이거 대결인가요? 그렇다면 제가 2PM의 옥택연을 좋아하는 건 일을 쉬지 않는 그의 근성과 파괴적인 퍼포먼스 때문이에요.

룰이 엉망진창인 게임 같다. 외모지상주의를 비판해서도 안되고, ‘얼평’과 ‘몸평’을 해서도 안된다. 분명 이 음악 안에선 노동이 된 외모 강박과 그것을 만든 압력이 느껴지는데, 이를 말하려면 먼저 대상의 아름다운 외모로부터 탄생한 내 사랑을 저격해야 한다. 아무에게도 상처주고 싶지 않고, 나 또한 그 어떤 상처도 받고 싶지 않아 눈을 감은 채 위태롭게 걸으며 속삭인다. K팝은 정말 자.유.로.운 음악인 것 같아요.

여기까지 쓰고 두통을 달랠 음악을 듣는다. 루나의 <Free Somebody>. ‘듣자마자 충격을 받았다’는 표현을 단 한곡에만 쓸 수 있다면 흔쾌히 이 곡에 붙일 것이다. 마치 명상을 위해 만들어진 것 같은 몽환적인 멜로디와 그 곡조가 절로 탄생시킨 듯한 가사. 불규칙하게 뛰는 건반과 일정한 무게로 내려오는 베이스 사이로 또 하나의 악기처럼 곡에 스며드는 루나 특유의 신경질적인 목소리. 그 음악을 처음 접했을 때 나는 마침내 귀로 듣는 K팝 시대가 도래했다고 앞선 생각을 했다.

음악을 들을 때만큼은 눈을 꼭 감고 있고자 했다. 눈을 뜨면 고민이 생기니까. 이 좋은 음악을 지키기 위해 뮤직비디오도, 음악방송도 보지 않으리라. 하지만 앨범 커버에 있는 ‘DHL’의 로고를 보고 말았다. 택배 앞에서 눈을 감고 있을 수 있나? 택배를 받는 건 일상에서 가장 행복한 시간인데…. DHL의 로고가 그려진 베트멍의 노란 티셔츠, 밑위만 긴 검은 핫팬츠, 붉고 진한 머리와 입술 색. 실제 DHL의 기업 마스코트 같은 이 불가사의한 차림새는 무엇인가? 루나는 수상한 음악에 걸맞은 수상한 행색을 한 채 비트에 맞춰 관절을 툭툭 꺾다 돌고래 주파수를 쏘며 외쳤다. “내가 너희를 자유롭게 하리라…!”

음악은 보통 고민을 해결하는 도구다. 답이 없거나 고통스러운 문제에서 벗어나고자 할 때 음악은 ‘그냥 들어’라는 말로 우리를 구원한다. 그렇다면 음악을 들으며 생긴 고민도 과연 ‘그냥 듣자’는 말로 구원될 수 있나? 가장 가혹한 형태의 꾸밈노동, 끝없는 비교를 통한 외모 비하와 경멸, 수치심, 그리고 그 모든 과정에 열광했던 나. 이런 무거운 감정들을 두고 ‘음악은 음악일 뿐’이란 말로 넘어갈 수 있냐는 질문이다. 단언컨대 그럴 수 없다. 많은 사람들이 K팝을 ‘길티 플레저’라 칭하는 건 결국 저 감정들을 극복하지 못했기 때문이니까.

K팝을 사랑하는 사람들은 외모에 대한 이야기를 더 많이 해야 한다. 나라를 주고 싶을 만큼 완벽하고 이상적인 외모가 아니라, 내 삶과 욕망을 닮은 외모에 대해서. 이야기를 하다보면 나 자신을 욕해야 할 수도 있고, 내가 미처 보지 못한 부분을 남이 먼저 발견할 수도 있다. 생각만으로도 지겹지만 사랑이란 원래 그런 거니까. 이 글을 마치면 <Free Somebody>를 부르던 루나의 수상쩍은 아름다움에 대해 다시 생각할 예정이다. 여유가 있다면 옥택연에게 입덕하게 된 이유에 대해서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