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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 무의미한 패턴 속에서 발견한 절대적인 메시지를 맹신하는 인간의 본성, <계시록>
이유채 2025-03-27

연상호 감독에게 믿음이 작가적 화두라는 데에는 이견이 없을 것이다. 초기 애니메이션(<돼지의 왕> <사이비>), 블록버스터영화(<부산행> <반도> <정이>), 근작 시리즈(<지옥> <기생수: 더 그레이>)까지 그는 줄곧 믿음이 불안정한 개인과 공동체 사회에 미치는 영향에 관한 질문을 던지며 인간을 구원할 수도, 파멸할 수 있는 믿음의 양면성을 탐구해왔다. 3월21일 넷플릭스에서 공개된 신작 영화 <계시록>에서도 연상호의 호기심은 이어진다. 이번 작품에서 믿음의 중핵에는 ‘파레이돌리아’가 자리한다. 이 심리적 현상을 겪는 사람은 무작위한 패턴에서 얼굴과 같은 익숙한 형태를 인식한다. 이를테면 자기 아이를 유괴했다고 생각한 전과자 권양래(신민재)를 산에서 떨어뜨린 뒤 평범한 절벽에서 신의 얼굴을 읽어낸 성민찬 목사(류준열)처럼 말이다. 이 목격 이후 성민찬은 권양래의 죽음을 자기 잘못이 아닌 신의 계시라고 믿기 시작한다. 권양래가 살았다는 걸 안 뒤에도 신의 뜻이라며 그를 죽이려 한다. 이후 벌어지는 여중생 실종 사건까지도 신의 계시로 해석하며 성민찬은 돌이킬 수 없는 길을 걷는다. 극단적이고 불안정한 상황에서 파레이돌리아적인 착각은 잘못된 신념을 더욱 공고히 하며 도덕적 판단마저 뒤흔든다. 이 과정은 인간이 불확실한 현실을 견디는 방식과 밀접하게 연결된다. 특히 종교적 믿음과 결합될 경우 객관적 사실보다 주관적 확신이 더 큰 힘을 발휘한다. <계시록>은 성민찬을 통해 인간이 무의미한 패턴 속에서도 어떻게 절대적인 메시지를 발견하고 이를 맹목적으로 따르게 되는지를 보여준다. 성민찬의 신념은 그 자체로 파레이돌리아의 전형적인 결과이며 이는 결국 현실을 왜곡하고 비극을 초래하는 원인이 된다. 또 다른 핵심 축인 이연희 형사(신현빈)도 무언가를 믿고 있다. 권양래에게 납치됐다가 탈출한 동생 연주(한지현)가 스스로 목숨을 끊자 견디다 못해 동생의 죽음이 자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진실 대신 죄책감이라는 왜곡된 신념에 의지하는 것이다. 그렇지만 이연희는 성민찬과 다르게 잘못된 신념을 바로잡는 인물이다. 보이는 것만 보려고 유일하게 노력하는 그는 자기 고통과 직면한다. 비극적인 결말에도 <계시록>의 끝에 희망이 기다리고 있다고 믿는 이유다. 이러한 <계시록>은 왜곡된 신념과 진실을 마주하는 용기를 동시에 탐구함으로써 믿음과 인간 본성에 한층 더 깊이 들어간 연상호 감독의 작품으로 남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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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제공 넷플릭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