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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고전 계기로 본 거장 장 르누아르의 작품 세계(2)
2002-07-19

모두가 모방한 스승,아무도 따라하지 않은 사나이

테크니션에서 리얼리스트로

<암캐>(1931), <익사 직전에 구조된 부뒤>(1932), <토니>(1934), <랑주씨의 범죄>(1936), <거대한 환상>(1937), <인간야수>(1938), <게임의 규칙> 등 세계영화사에 남을 걸작들을 연이어 내놓은 르누아르의 놀랄 만한 30년대는 분명 (시적) 리얼리즘에의 지향이 창작의 중요한 동력으로 작용했던 시기였다. 사운드의 도입과 함께 앞선 시기의 ‘테크니션’ 르누아르가 ‘리얼리스트’ 르누아르로 이월했던 것인데, 이 두 얼굴의 르누아르 사이에 사운드라는 새로운 요소가 놓여 있다는 것이 분명 우연의 일치만은 아닌 것으로 보인다. 그가 직접 한 말을 들음으로써든 아니면 <암캐> 같은 영화를 봄으로써든 우리가 짐작하게 되는 것은, 영화의 사운드가 르누아르로 하여금 무언가 일종의 ‘(재)발견’을 하게끔 촉진작용을 해주었다는 점이다. 아마 말하는 영화를 통해 르누아르는 영화 속에서 대사가 차지하는 역할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되었을 것이다. 그것이 중요한 것은, 스토리 진행을 위한 ‘내용’을 담고 있기 때문만이 아니라 여러 가능한 청각적 변용들을 통해 다름 아닌 그것을 이용하는 ‘사람들’ 자체에 대해 알려주기 때문이기도 했다. 그렇게 르누아르는 인물들에 대한 관심을 자각했다. 다른 한편으로 르누아르에게 대사란 중심적인 소리가 아니라 다른 소리들과 함께 그저 사운드트랙의 일부를 이루는 것일 뿐이었다. 그것에는 그 주위를 둘러싼 무언가가 있었던 것이다.

다시 말해, 르누아르는 말하는 영화를 통해 인물들에 대한 관심을, 아울러 그들을 에워싸고 있는 환경에 대한 관심을 다시금 스스로에게 일깨웠던 것으로 보인다. 질식할 듯한 부르주아적 분위기에 갇히게 된 타고난 방랑자(<익사 직전에 구조된 부뒤>), 숙명론 가득한 열차와 철로의 궤도 속에서 파멸을 맞이하는 남자(<인간야수>), 서로 엇갈리는 욕망의 관계망 속에 걸려버린 남녀들(<게임의 규칙>) 등 그 어떤 인물들과 그들이 놓인 상황을 카메라에 담든 인물과 그 환경을 서로 분리되지 않은 것으로 보여준다는 생각이야말로 30년대 르누아르 영화를 관통하는 한 가지 중요한 개념이었다. 이 시기의 르누아르에 대해 이야기할 때면 빠짐없이 등장하는 심도 깊은 공간연출과 유연한 카메라 이동은 서로를 배제하지 않는 인물과 환경을 함께 포착하려는 ‘시선’과 같은 것이었다.

`말하는’ 영화로, ‘사람들’을 말하다

전후, 특히 50년대의 르누아르는 또 다른 면모를 보여주었다(대략 1941년에서 1950년에 이르는 르누아르의 미국영화 시대는 그의 30년대와 50년대 사이의 변이 지점이라고 보는 게 낫겠다). 르누아르의 50년대를 대표하는 영화들이라면 단연 <황금마차>(1952), <프렌치 캉캉>(1954), <엘레나와 남자들>(1956)로 이어지는 ‘3부작’을 꼽을 수 있다. 이 영화들은, 르누아르가 이제 동시대의 사회적 환경들에서 과거의 어느 ‘가공된’ 공간으로 자리를 옮겼음을, 그럼으로써 주로 갈등이 빚어지던 예전의 공간을 벗어나 로맨틱한 조화가 이루어지는 공간으로 이동했음을, 당연히 그와 함께 리얼리스트의 태도를 버리고 일종의 탐미주의자의 시선을 채택했음을 확인케 한다. 세편의 영화는 공교롭게도 모두가 지극히 양식화한 공간을 배경으로 세 남자의 구애를 받는 아주 골치 아픈 상황에 처한 여자주인공의 이야기를 그리는데, 이 영화들에서 르누아르는 그 여자주인공들이 가진 문제를 연극(허구)의 행위를 통해 해소해준다. <황금마차>의 카밀라와 <프렌치 캉캉>의 니니는 모두 무대에 서는 것으로 사랑의 아픔을 대신하려 하고, 반면 <엘레나와 남자들>의 엘레나는 모여든 사람들을 향해 가짜 사랑의 장면을 시연함으로써 오히려 자신이 몰랐던 진짜 사랑을 찾는다. 톰 밀른이란 영화비평가가 적확하게 지적했듯이, 르누아르의 이 ‘3부작’은 그가 이제 더이상 삶으로부터 예술을 창조하는 게 아니라 그와 반대로 예술로부터 삶을 창조하기에 이르렀음을 보여준다.

스스로를 모방하지 않는 유일한 작가

지금까지 개략적이나마 르누아르의 경력을 살펴본 것에 따르면, “르누아르는 항상 르누아르이다. 그것이 그가 르누아르를 모방하지 않는 이유이다.” (에릭 로메르) 르누아르의 진가를 비교적 일찍부터 간파했던 바쟁도 스스로를 모방하지 않는 영화작가 르누아르에 대해 이야기한 바 있다. “르누아르는 그 자신의 성공의 함정에 걸리지 않고 예전에 거두었던 성공들을 그저 반복하려고 하면서 차후의 나날들을 보내야 할 운명에 빠지지 않은, 재능있는 소수의 영화감독들 가운데 하나이다. 자기 쇄신에의 충동은 그의 천재성을 구성하는 필수요소이기 때문에 그는 영화의 전개와 동시대 사람들의 취향에 적응하는 법을 알고 있다.” 이걸 보면 우리는 스스로 정한 도그마에 절대 갇히지 않는 ‘유연성’이야말로 르누아르라는 영화감독이 갖고 있는 지혜의 핵심이라고까지 이야기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런데 르누아르가 갖고 있는 그 ‘유연성’이란 영화감독으로서 그의 긴 도정뿐 아니라 한편의 영화를 만들 때의 태도에도 마찬가지로 적용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그는 로베르 브레송처럼 자신이 미리 머릿속에서 구상한 것을 그대로 필름 위에 담아내려 하는 그런 영화감독이 아니다(그런 면에서 둘은 배우들과의 관계에서 완전히 다른 면모를 보여주었다. 배우들에 대한 브레송의 관계는 거의 ‘사디즘’을 연상케 하는 관계였다면 르누아르와 그의 배우들 사이의 관계는 대개가 친구관계 같은 절친한 것이었다). 오히려 르누아르는 자신을 둘러싼 변화하는 환경에 적극적으로, 그리고 자발적으로 대처함으로써 ‘즉흥성’을 적극 살려내는 영화를 만들어내는 쪽이었다. <게임의 규칙>을 찍을 때 일어났던 에피소드는 그 예증으로 자주 언급되는 것이다. 르누아르가 노라 그레고르라는 여성에게 크리스틴 배역을 맡긴 것은 다른 게 아니라 그가 이 오스트리아 여인에게 사랑을 느꼈기 때문이라고 한다(사실 당시 이건 그리 큰 비밀도 아니었다고 한다). 그런데 막상 촬영에 들어가보니 그녀는 연기력에도 그리고 불어 발음에도 문제가 많았다. 그래서 르누아르는 크리스틴의 역할을 조정하면서 동시에 그녀 남편 역할의 비중을 높여놓았다. 이 예화는 르누아르가 ‘유연성’이라고 하는 그의 ‘지혜’를 발휘해 개방적인 영화를 어떻게 만들었는가를 잘 보여준다. 누벨바그 멤버들이 르누아르에 대해 열렬한 지지를 보낸 것은 당연한 일이었을 것이다.

“인간의 관심을 끄는 건 오직 인간이다”

르누아르는 항상 예술가라면 자기 시대보다 20년은 앞서가는 사람이어야 한다고 말했다. 그리고 그는 실제로 그렇게 하려고 끊임없이 노력한 사람이었다. <암캐>의 예에서 보듯, 사운드가 도입된 지 그리 오랜 시간이 흐르지 않은 때에 이미 현장음을 포착하려 했던 사람이 바로 르누아르였다. 그는 비전문배우를 기용하고 로케이션 촬영한 <토니>로 네오리얼리즘을 선취해 보여주기도 했다. 이른바 ‘젊은 영화’들이 나오기 시작하던 때인 1959년, 이미 60대 중반에 들어선 이 노대가는 두편의 영화 <코르들리에 박사의 유언장>과 <풀밭 위의 오찬>을 만들며 여러 대의 카메라를 한꺼번에 돌림으로써 연기의 ‘연속성’을 최대한 살리는 방식을 실험해보였다. 혁신을 향한 르누아르의 발걸음들은 물론 단지 기교만을 앞세우기 위한 것이 아니었다. 그것들은 모두가 르누아르의 최대 관심사이자 유일한 관심사라 할 수 있는 '인간'을 좀더 잘 살펴보고 탐구하기 위해 필요한 것들이었다. 파스칼을 인용하면서 르누아르는 이렇게 말했다. “인간의 관심을 끄는 것은 오직 한 가지뿐인데, 그것은 인간이다.”홍성남/ 영화평론가 antihong@hite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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