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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리 소넨필드 스토리(2)
2002-07-26

무표정한 얼굴로 식칼을 휘둘러라,웃음이 터진다!

제 4 장 - 코언 형제와 함께 차차차!

배리 소넨필드는 코언 형제의 촬영감독이라는 직함으로 1984년 처음 영화팬들에게 명함을 내밀었다. 시작은 단순하기 짝이 없었다. “카메라를 갖고 있으면 스스로 카메라맨이라고 부를 수 있지 않을까?” 뉴욕대 필름 스쿨을 졸업한 소넨필드는 그런 발상으로 친구와 돈을 합쳐 16mm 카메라를 샀다. 확실히 무리한 지출이었다. 소넨필드의 친구는 어느 포르노영화 제작자로부터 9일 동안 카메라를 빌려주고 촬영까지 맡아주면 카메라값의 1/4에 해당하는 돈을 주겠다는 달콤한 제의를 받아왔고 소넨필드는 응했다. 그렇게 9일 동안 찍어낸 9편의 장편 포르노영화가 소넨필드의 첫 경험이었다. 약 13년 뒤 <부기 나이트>라는 영화가 빛을 보았을 때 소넨필드는 세상에서 가장 잘 찍을 수 있는 영화의 선수를 빼앗긴 점을 개탄했다. 소넨필드가 살색보다 다양한 색상을 렌즈에 담은 정식 데뷔작을 낼 기회는 뜻밖에도 얼떨결에 초대받은 질식할 만큼 우아한 파티에서 찾아왔다. 온통 앵글로색슨계 손님들만 북적이는 방 안에서 소넨필드와 서로를 알아본 유일한 유대계 청년은 다름 아닌 뉴욕대 필름 스쿨 동창인 조엘 코언이었다. 영화를 둘러싼 수다를 한바탕 나눈 다음, 조엘 코언은 동생 에단과 함께 쓴 시나리오의 제작비가 없다며 마치 완성된 영화인 양 예고편부터 찍어 제작비를 조달해 보려는 계략을 소넨필드에게 털어놓았다. 문제의 영화는 <분노의 저격자>였고, 소넨필드는 무엇보다 카메라를 소유하고 있다는 이유로 그날 밤 당장 고용됐다.

소넨필드식 코미디

그 무표정, 웃겨 죽겠네!

배리 소넨필드의 코미디 감각은 찰리 채플린이나 우디 앨런과 다르다. 인간의 가난과 나약함과 불운과 신경증을 가엽게 여겨 그 모든 치명적 약점과 싸우는 주인공에게 박수와 성원을 보내게 만드는 채플린이나 앨런과 달리 소넨필드식 코미디는 시추에이션과 캐릭터의 불협화음에서 웃음을 끌어낸다. 각각 2편까지 연출한 <아담스 패밀리>와 <맨 인 블랙>은 소넨필드식 코미디 감각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예다.

<아담스 패밀리>의 엽기 가족은 실은 ‘사랑밖에 난 몰라’라고 되뇌는 가족이다. 틈만 나면 “까라미야”, “몬데시”를 연발하는 고메즈(라울 줄리아)와 모티샤(안젤리카 휴스턴) 커플은 눈만 마주치면 정염에 사로잡힌다. 그 뜨거운 사랑의 배경이 공동묘지이며 “당신 행복해?” 대신 “당신 불행해?”라고 묻는다는 점이 보통 부부와 차이일 것이다. 그들의 딸 웬즈데이(크리스티나 리치)의 무표정도 남동생과 식칼을 휘두르며 노는 위험한 행동과 대구를 이룰 때 코미디의 화음으로 변한다. 김지운 감독의 <조용한 가족>에서 고호경의 아무 일 없었다는 듯한 표정이 연이은 자살소동과 어울려 코믹해지는 것과 같은 맥락이다.

<아담스 패밀리> 1, 2편은 둘 다 집나간 고메즈의 형 페스터(크리스토퍼 로이드)가 가족의 품에 돌아오는 이야기다. 기괴한 가족을 위협하는 것은 아담스가의 돈을 노리는 정상적인 사람들이다. 1편에선 가짜 어머니가, 2편에선 애인이 순진한 페스터를 속여 돈을 빼돌리는 소동이 벌어지지만 그 과정에서 가족의 사랑은 오히려 강해진다. 이처럼 소넨필드는 기괴한 인물들에게서 진정한 가족애를 끌어냄으로써 정상인들의 편견과 탐욕을 조롱한다. <아담스 패밀리2>에는 웬즈데이가 여름캠프에 참가했다 참기 힘든 고문을 당하는 장면이 있다. 캠프 교사가 웬즈데이의 정신을 순화시키겠다고 디즈니 애니메이션 <밤비> <인어공주>에다 뮤지컬 <사운드 오브 뮤직> <애니>까지 연달아 보여준다. 너무나 예쁘고 행복한 영화들을 보고 나온 웬즈데이가 미소를 짓는다. 웬즈데이의 무표정을 뺏어간 디즈니를 제소하고픈 심정이 드는 장면. <아담스 패밀리>에 나오는 소넨필드 스타일로 빼놓을 수 없는 장면 중 하나는 손이 혼자 질주하는 대목이다. 코언 형제의 <아리조나 유괴사건>에서 질주하는 카메라 움직임이 그의 솜씨라는 걸 상기하면 소넨필드가 액션연출에서도 유머를 먼저 고려한다는 것을 능히 짐작할 것이다.

<맨 인 블랙> 역시 <아담스 패밀리>처럼 괴상망칙한 캐릭터가 주종을 이루는 영화다. 각종 벌레나 오징어, 문어를 닮은 외계인들이 사람처럼 담배를 피우고 거드름도 피우며 절박한 유언도 남긴다. 불독처럼 과묵한 개는 수다쟁이 MIB요원으로 둔갑하며 엘비스 프레슬리는 죽은 게 아니라 자기 별로 돌아간 외계인이라는 식이다. 그러니까 <맨 인 블랙>의 유머는 윌 스미스가 받는 MIB요원 테스트와 비슷하다. 밑에 받칠 게 없어서 종이에 구멍이 나는데 열심히 문제만 푸는 다른 수험생과 달리 윌 스미스는 천연덕스럽게 멀찌감치 있던 테이블을 자기 자리로 끌고온다. 물론 이런 발상의 전환이 웃음을 끌어내기 위해 잊어서 안 되는 사실이 있다. 소넨필드가 강조하는 것은 “진지한 연기”다. “분명 상황은 코미디지만 배우들은 코미디를 연기한다고 여겨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토미 리 존스의 무표정은 <아담스 패밀리>의 크리스티나 리치와 닮았다. 눈앞에 우주선이 다가와도, 흉칙한 외계인이 달려들어도 눈 하나 깜짝하지 않는 냉철함과 진지함이 이 영화의 만화적 상상력을 납득할 만한 것으로 만들어준다.

<맨 인 블랙>에서 윌 스미스가 갑자기 외계인의 아이를 받는 장면은 토미 리 존스의 건조한 표정이 빛을 발하는 대목 가운데 하나다. 한창 진지한 얼굴로 전화받는 토미 리 존스의 뒤편에 윌 스미스가 차에서 뻗어나온 오징어 다리에 감겨 이리저리 휘둘린다. 대조적인 두 상황이 한 화면에 담길 때 관객은 완벽한 조화를 이루는 이들 콤비를 사랑하지 않을 수 없다.

<와일드 와일드 웨스트> 역시 소넨필드가 좋아하는, 어울리지 않는 상황의 조합이 출발점이다. 그러나 서부극의 시공간에 SF식 발명품을 전시한 이 영화는 소넨필드식 코미디가 드라마의 중심을 잃을 때 어떻게 좌초하는지 보여줬을 뿐이다. 기이한 외형의 캐릭터가 나오지 않는 <겟쇼티>와 <사랑게임>은 소넨필드의 유머가 로맨틱코미디보다 블랙코미디에 어울리는 것을 확인시키는 예다. 마이클 J. 폭스가 호텔 건립을 꿈꾸는 벨보이 더그로 나와 바람둥이 유부남에게 빠져 있는 여인을 구하는 <사랑게임>은 소넨필드가 요리하기엔 너무 달콤한 이야기로 보였다.

반면 하드보일드 작가 엘모어 레너드 원작의 <겟쇼티>는 소넨필드의 장기를 십분 보여준 유쾌한 영화. <겟쇼티>에서 LA로 와서 영화제작에 손을 대는 뉴욕 출신 갱 칠리로 나온 존 트래볼타는 <맨 인 블랙>의 토미 리 존스처럼 별다른 표정변화 없이 자기가 맡은 일을 척척 해낸다. 상황이 꼬이고 주변 인물이 법석을 피우는 데도 태연자약하는 주인공, <사랑게임>의 더그가 사랑 때문에 너무 많이 흔들린 반면 <겟쇼티>의 칠리는 사랑에 빠졌을 때도 냉정을 잃지 않는다. 소넨필드는 앞으로도 계속 이런 인물을 캐스팅할 것 같다. 남동철 namdo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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