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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물> <신라의 달밤> <공공의 적> <라이터를 켜라>의 성지루(2)
2002-07-26

찡그리면 섬뜩,웃으면 코믹

비결 2 쓸데없는 자존심은 쓸데없다

성지루는 <눈물>로 영화를 시작한 것을 행운으로 여긴다. <눈물>에는 모두가 신인배우였기 때문이다. 조은지, 봉학규 등 연기신참들이 주연인 것이 영화신참인 그에게 심적 여유를 많이 주었다. 게다가 디지털영화였기 때문에 카메라워킹에 크게 신경을 쓰지 않아도 됐다. 하지만 다음 작품인 <신라의 달밤> 때는 사정이 달랐다. 하던 대로 했건만, 정광석 촬영감독은 연신 그를 혼냈다. “여기 서라고 했는데 왜 여기 서냐.” 쉬운 일은 아니었다. 당시 성지루는, 영화배우로서는 신인이었지만 연극판에서는 극단 목화에서 총무까지 맡은 고참이었고 <새들은 횡단보도를 건너지 않는다>로 우수작품 연기상을 받아 문예진흥원이 런던에 연수까지 보내준, 알아주는 베테랑이었다. 자존심을 버리고 틀리지 않으려고 속으로 끙끙대지도 않았다. 틀려가며 배웠고, 모르면 아무나 붙잡고 물었다. 거기엔 나이도, 뭣도 없었다. “지금도요, 모르겠다 싶으면 다 물어봐요. 22살 먹은 연출부 막내한테도 이것저것 물어봐요. 그러다보니까 거꾸로 요즘에는 간혹 가다가 조명부며 연출부 중에 누가 ‘연기하고 싶은데 어떻게 해야 하죠’하고 물어봐 오기도 해요. (웃음)”

비결 3 앉으나 서나 당신 생각

임상수 감독이 아예 시나리오에 인물명을 ‘성지루’라고 해놓고는 나중에 그를 캐스팅했다는 <마지막 연애의 상상> 이야기를 하며 성지루가 조금 이상해졌다. 자폐증 환자처럼 시선을 흐리고 말도 더듬고…. 그는 그저 자신의 캐릭터인 우편배달부가 주인공 부부의 입양아를 죽이는 것을 설명하고 있었다. 뭔가 이상해서 ‘혹시 그 우편배달부가 자폐적인 사람인가요?’ 하고 물었더니 (세상에!) 그렇단다. 극중의 대사를 읊는 것도 아니고 그냥 캐릭터를 소개하는데 바로 그 캐릭터로 돌변하다니.

알고보니 그의 이런 심각한 수준의 감정이입은 ‘철저한 자료조사’라는 행동으로 이어지고 있었다. 얼마 전 텔레비전에서 일본의 한 자폐증 부부에 관한 다큐멘터리의 끝자락을 보고 그는, 냉큼 프로그램 끝에 뜨는 ‘다시 보기 사이트 주소’를 받아적었다고 한다. 예의 우편배달부 생각이 났기 때문. <가문의 영광>을 찍기 전에는 또 조폭 캐릭터를 몸에 익히기 위해 “현역에 계신 분들”을 만나서 3일 동안 같이 생활하기도 했단다. 사흘간 ‘특별연수’를 하면서 녹음기에 그들의 말을 녹음해 외국어테이프 듣듯이 듣고 따라하며 말투를 익혔다고. ‘녹음’ 기법은 <신라의 달밤>을 준비하면서 대전 출신인 그가 경상도 사투리를 익히기 위해 이미 써먹었던 방법이기도 한데, 극중 자신의 배역인 덕섭의 직업과 같은 경상도의 포장마차 주인들을 찾아다니며 그들의 말을 녹음했다니, 그 치밀함에 혀를 내두르게 된다.

고급공무원 아버지 밑에서 엄하게 자라면서, “집에서는 한두 마디밖에 못하지만 밖에 나가서는 시연합 응원단장이나 각종 행사의 MC를 도맡아” 하던 청소년 시절, 남 앞에 맘껏 나서는 것에서 행복을 느껴 그는 연극을 꿈꾸게 됐다고 한다. 그리고 집안의 기대를 과감히 저버리고 서울예대 연극과에 입학한 이후 그는 쭉 연극판에서 살았다. <부자유친> <비닐하우스> 등 많은 연극무대에 올랐고, 연극무대에서 그를 발견한 임상수 감독에 의해 2001년 <눈물>로 영화데뷔를 한 이후에도 그는 연극이 본업인 배우였다. 본격적으로 영화를 하겠다고 결심한 건, <눈물>을 다 찍고 런던에 연수를 가 4개월 되던 때. 한국에 있던 임신중인 아내가 아파트계단에서 구르는 사고를 당했다는 소식에 충격을 받고, 그는 경제적으로 힘든 연극 대신 당시 출연제안이 들어와 있던 <신라의 달밤>을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가장으로서의 책임감이 고개를 든 것이다. “그때 예정돼 있던 신작 연극 대신 영화를 하라고 허락해주신 오태석 선생 때문에라도 더 열심히 해야 한다”는 성지루. 이게 4번째 비결이 될까. “인기비결? 잘 모르겠는데….” 이렇게 말문을 열었지만 성지루가 3시간 동안 들려준 이야기는 사실상 모두가 ‘비결’이 되는 것이었다. 글 최수임 sooeem@hani.co.kr/사진 오계옥 klara@hani.co.kr

★ ★ ★ ★ ★ 김승우가 본 성지루

성격파,그 이상의 성격파

나는 사실 성지루와 별로 친하지 않다. 믿기지 않겠지만 나는 성지루라는 배우를 영화와 현실을 통틀어서 <라이터를 켜라> 촬영장에서 첨 봤다. 바쁜 촬영스케줄 때문에 대본연습에도 참여하지 못했고, 그의 출세작인 <신라의 달밤>과 <눈물>을 이전에 보지도 못한 내 탓이 크다. 촬영장에서 처음 본 성지루는 무뚝뚝한 사내였다. 다만 담배 피우는 모습이나 누군가와 얘기하면서 웃을 때의 한없이 착해 보이는 눈웃음에서 꽤나 서민적일 것 같고 나쁜 사람은 아닌 것 같다는 약간의 힌트를 받았을 정도였다. 그러나 어느날, 전날 촬영에서 성지루가 발군의 실력을 보였다는 장항준 감독님의 증언(?)이 귀에 들어왔다. 그래서 순전히 ‘성지루를 보기 위해’ <신라의 달밤>을 보았다. 그리고 알게 됐다. 그가 조금은 거칠게, 전혀 카메라를 의식하지 않고 자연스러운 연기를 하는 좋은 배우라는 것을. 게다가 나는 그의, 나이에 비해서 훨씬 오래산 것 같은 느낌의 외모(^^)가 풍기는 친근감에서 언뜻 최불암 선배의 넉넉함까지 느낄 수 있었다. 어쨌거나 <라이터를 켜라>에서 성지루는 아주 적은 분량에만 나옴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의 뇌리 속에 각인되는 연기’란 게 무엇인지 여지없이 보여주었다. 시사회에 오셨던 나의 아버님마저도 당신의 아들 이외에 기억하셨던 유일한 배우였으니 말이다. (차승원이 아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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