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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지털 리마스터링판 개봉하는 <위대한 독재자>,찰리 채플린(1)
2002-10-11

위대한 어릿광대,눈물로 빚은 웃음

10월25일 <위대한 독재자>가 극장에 걸린다. 런던이 독일군의 공습을 받던 1940년 개봉했던 작품을 디지털 기술로 복원, 올해 베를린영화제 폐막식부터 다시 선보였던 버전이다. 역사가 격동하던 시대에 만들어진 풍자코미디 <위대한 독재자>는 채플린의 최고 걸작은 아니지만 채플린을 기억하는 이들에게 여전히 감동적인 작품이다. <위대한 독재자>는 희극이 비극을, 웃음이 슬픔을, 희망이 절망을, 채플린이 히틀러를 이긴 역사적 사건이기 때문이다. 영화의 개봉에 앞서 채플린의 분신, 떠돌이 찰리를 불러내는 것은 그 승리가 어떻게 가능했는지 돌아보기 위함이다. 전쟁과 기아의 시대에, 사람들은 의식하든 못하든 찰리의 소동을 보면서 오늘을 사는 용기를 얻었다. 하지만 그것이 20세기 초의 인류에만 적용되는 것일까? 수십년이 흘렀지만, 유심히 살펴보면 우디 앨런, 주성치, 로베르토 베니니 등 모자를 벗거나 안경을 쓴, 또는 구두 대신 운동화를 신은 또 다른 찰리를 동서양 어디서나 볼 수 있다. 1977년 크리스마스 밤, 채플린은 깊은 잠에 빠져 다시 일어나지 못했지만 1936년 <모던 타임즈>에서 지평선으로 걸어가던 찰리는 다른 옷을 입은 채 우리 곁을 서성이고 있다. 그의 영화를 다시 보며 아직 우리 곁에 있는 찰리를 만나보자.편집자

정말 히틀러는 채플린의 인기를 등에 업기 위해 네모반듯한 콧수염을 길렀을까? 진위를 확인할 순 없지만 그 시절 사람들이 그런 소문을 믿었대도 놀랄 일은 아니다. 적어도 2차대전이 일어나기 전까지, 채플린은 히틀러보다 훨씬 유명했다. <위대한 독재자>의 아이디어는 두 사람의 닮은꼴 외모에서 비롯됐다. 채플린의 기억에 따르면 알렉산더 코다라는 제작자가 둘의 유사한 외모에서 염감을 얻은 영화를 제안했다고 한다. 하지만 두 사람의 공통점이 콧수염에 그치지는 않는다. 채플린과 히틀러는 같은 해 같은 달에 태어났다. 1889년 4월, 4일 간격으로 영국과 독일에서 태어난 그들은 둘 다 대중에게 구애하는 직업을 택했다. 하나는 배우였고 다른 하나는 정치가였다.

히틀러와 채플린, 20세기의 선과 악

“두 사람 모두 천재임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그들 각각 똑같은 현실, 즉 현대 사회의 ‘힘없는 자’가 처한 곤경을 대변했다. 각각이 하나의 일그러진 거울인데, 한 사람은 선을, 다른 한 사람은 전대미문의 악을 비추는 거울이다.” 채플린에 관한 권위있는 전기 <채플린: 거장의 생애와 예술>(데이비드 로빈슨 씀/ 한길아트 펴냄)이 인용한 1939년 4월21일치 <스펙테이터>의 기사처럼 채플린과 히틀러는 20세기의 선과 악을 선명하게 드러내는 두 얼굴이었다. 한쪽이 희극이라면 다른 한쪽은 비극이었고, 채플린이 웃음과 희망을 가져다줬다면 히틀러는 비탄과 절망을 낳았다. 히틀러의 광기와 야욕을 풍자한 <위대한 독재자>에서 채플린은 유대인 이발사와 힝켈이라는 독재자의 1인2역을 했다. 그는 상반된 두 인물을 어떻게 다뤄야 하는지 알고 있었다.

채플린은 독재자 힝켈을 웃음거리로, 유대인 이발사를 구원의 메신저로 그려냈다. 기실 채플린을 위대한 영화작가로 만든 희극의 정신이 여기 있다. 웃음이라도 없으면 미쳐버릴 듯한 비참한 상황에서 엉뚱한 오해가 입가에 미소를 머금게 한다. 19세기 런던에서 태어나 구빈원을 전전하던 배고픈 소년 찰스 스펜서 채플린은 그것이 어릿광대의 숙명이라고 믿었지만 그런 광대짓이 한 세기의 벽을 훌쩍 뛰어넘으리라는 것까지 예상하진 못했으리라. 히틀러가 총칼로 세웠던 제3제국은 허망하게 사라졌지만 채플린이 건설한 웃음의 천국은 국가와 인종을 초월하며 세계를 정복했다. 그것은 채플린과 동시대를 살았던 관객이 한명도 남아 있지 않는 날에도 변함없을 것이다. 그의 마임연기가 언어의 장벽을 허물었듯 비극적 현실과 싸우는 채플린 희극의 이상은 시간의 흐름에도 흩어지지 않고 무게를 더한다. 예를 들어 로베르토 베니니의 <인생은 아름다워>는 작가 자신이 밝힌 대로 <위대한 독재자>를 참조한 작품이다. 대학살이 자행되던 유대인 수용소에서 아들을 살리기 위해 눈물을 감추며 웃고 웃기는 베니니의 표정에서, 처형장을 향해 걸어가며 팔과 다리를 익살스레 뻗는 동작에서 채플린은 여전히 살아 숨쉰다. 채플린의 부고를 접했을 때, “그는 어떤 면에서는 아담이었다. 우리 모두 그의 후손이니까”라고 한 페데리코 펠리니의 추도사가 예언한 그대로다.

정말 히틀러는 채플린의 인기를 등에 업기 위해 네모반듯한 콧수염을 길렀을까? 진위를 확인할 순 없지만 그 시절 사람들이 그런 소문을 믿었대도 놀랄 일은 아니다. 적어도 2차대전이 일어나기 전까지, 채플린은 히틀러보다 훨씬 유명했다. <위대한 독재자>의 아이디어는 두 사람의 닮은꼴 외모에서 비롯됐다. 채플린의 기억에 따르면 알렉산더 코다라는 제작자가 둘의 유사한 외모에서 염감을 얻은 영화를 제안했다고 한다. 하지만 두 사람의 공통점이 콧수염에 그치지는 않는다. 채플린과 히틀러는 같은 해 같은 달에 태어났다. 1889년 4월, 4일 간격으로 영국과 독일에서 태어난 그들은 둘 다 대중에게 구애하는 직업을 택했다. 하나는 배우였고 다른 하나는 정치가였다.

헐렁한 바지, 꽉 끼는 재킷, 나비 넥타이

숱한 감독과 배우에게 끝없이 영감을 불어넣는 신화적 존재지만 채플린의 가장 값진 유산은 헐렁한 바지와 몸에 꽉 끼는 재킷, 작은 모자와 지팡이, 나비넥타이와 낡고 해진 커다란 구두에 불과하다. 한때 할리우드에서 가장 많은 출연료를 받는 배우였다는 사실 때문에 키작은 콧수염의 신사, 떠돌이 찰리를 잊는다면 그처럼 어리석은 일도 없을 것이다. 채플린의 분신, 찰리는 1914년작 <메이벌의 이상한 곤경> 혹은 <캘리포니아 베니스의 꼬마자동차 경주>에 처음 등장했다고 알려져 있다. 자서전에서 그는 “의상실로 가는 도중에” 그런 스타일의 옷을 입기로 결정했다고 말했다. 그 의상과 분장은 1936년작 <모던 타임즈>까지 22년간 거의 바뀌지 않았다. 데이비드 로빈슨의 전기는 “서로 대조를 이루는 옷가지가 충돌하며 일으키는 희극적 효과 자체가 새로운 것은 아니었다”고 적고 있다. 그것은 채플린이 미국에서 영화를 찍기 전에 활동했던 영국의 뮤직홀에서도 전례를 쉽게 찾아볼 수 있는 것이었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이런 의상과 분장을 뒤집어쓰고 탄생한 캐릭터, 떠돌이 찰리였다. 그는 언제나 가난했고 배가 고팠지만 길에서 만난 불쌍한 소녀나 어린아이에게 주머니에 있는 모든 것을 털어놓는 사람이었다. 그는 늘 경찰관을 보면 주눅들고 상사에게 엉덩이를 걷어채는 불행한 존재였으며 자본주의 사회가 요구하는 효율적인 일꾼이 되기엔 애당초 글러먹은 자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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