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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간 <시나리오> 펴낸 유광 편집장
2002-10-23

시나리오 독립선언!

시내 대형서점의 잡지 코너. 문학 계간지들이 수북한 진열대 위를 가만 들여다보면 종(種)이 다른 책 한권이 눈에 띈다. 계간 <시나리오>라. “드디어 나왔구나!” 하는 반가움이 아니라 “웬 시나리오” 하고 뜬금없어 하는 이들이라면, 유광(41) 편집장의 설명에 귀기울일 필요가 있다. “영화화되지 못한 시나리오는 시장에서 사장되는 게 현실입니다. 그런데 영화사의 판단이 옳은 걸까요. 영화사에선 좋은 시나리오가 없다고 하지만, 1∼2년씩 준비하다 엎어지는 영화들이 과연 시나리오가 나빠서인가요. 캐스팅 등 부차적인 요소가 지배적인 경우는 없나요” 그의 반문은 “시나리오가 부속물이 아니라 그 자체로 존재하는 텍스트”라는 ‘독립선언’이기도 하다.

400여 페이지 분량의 두툼한 창간호가 일차적으로 독자에게 요구하는 것은 시나리오를 읽는 훈련이다. 유하 감독의 글과 함께 <결혼은, 미친 짓이다>의 시나리오를 전재한 것도 이 때문. “시나리오는 재미없다”는 고정관념을 단번에 깨부수긴 어렵지만, 버릇들면 불가능한 일도 아니라는 것이다. 실제로 그는 이 다음에 문고판 형식의 시나리오집을 발행할 계획이다. 시나리오 작가들을 위한 섹션은 아직 완전히 갖춰지진 않은 상태. 그는 현장취재 내용을 공유할 수 있도록 자료를 제시하거나(<범죄수사 사전>), 기존 감독이나 시나리오 작가들과 함께 시나리오 해부를 감행하는(<시나리오 클리닉>) 코너 외에도 앞으로 일종의 시나리오 뱅크 코너를 마련해서 제작사들과 작가들 사이에 다리도 놓아줄 참이다. 이는 아이디어를 도용당해도 정작 법적 보호를 받지 못하는 작가들을 위한 방안이기도 하다.

그는 김성수, 유하 감독 등과 세종대 영어영문학과 81학번 동기다. 대학 시절 하루가 멀다하고 어울려 다녔지만, 정작 시집 끼고 다니던 그는 10년 동안 출판계에서 잔뼈가 굵었다. 직장 다니면서 김성수 감독의 <비명도시> 촬영장에 놀러가서 흘끔거린 것이 유일한 현장 구경. 그러던 그가 시나리오 창작을 접한 것은 2년 전부터서다. “무작정 영화가 좋았서 이끌린 건 아니에요. 관심의 확장이라고 해야 하나. 문학에 빠져 있던 터라 자연스레 시나리오 창작부터 손이 가더라고요.” 시나리오 관련 서적은 죄다 읽었지만, 오히려 혼란스러웠다는 그는 언젠가 번역서가 아닌 체계적인 시나리오 지침서를 만들고 싶다고 한다. 시나리오에 대한 이론적 접근 또한 그가 미뤄둔 숙제 중 하나. <시나리오>가 관심을 두어야 할 현실적인 문제들이 너무 많은 탓에 일정 궤도에 오르기 전까지는 꾸준한 시나리오 비평으로 대신하려 한다. “그거 아세요 현재 충무로에서 활동하는 작가가 몇명이나 될까요 아, 세어보실 필요없어요. 10명도 채 안 되니까.” 그의 말은 12월에 내놓을 두 번째 <시나리오>가 겨냥하는 지점이 무엇인지 분명하게 일러준다. 글 이영진 anti@hani.co.kr·사진 정진환 junggjh@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