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짠한 이름,어머니
2002-11-06

신경숙의 이창

전화가 왔다. 시골의 어머니다. 내일모레면 병원에 갈 일 때문에 서울에 오게 되어 있는 어머니. 목소리가 웅웅거려서 어디야 하고 물었다. “무시(무우)밭이다… 서울에 가야 된 게 무시나 한개 뽑아다가 느그 아버지 나 없는 동안 자시라고 청국장이나 끓여놓고 갈라고. 너한티 할말이 있어서 잊어버리기 전에 할라고 걸었다아.”

지난 여름에 큰 올케가 핸드폰을 구해다가 어머니 목에 걸어주었다. 거기에는 우리 형제들 전화번호 6개가 입력되어 있다. 아마 어머니는 나와 통화하려고 4번째 것을 눌렀을 것이다. 처음에는 늙은이가 무신 핸드폰이라냐, 하시더니 이제는 생각나면 어디서나 전화를 걸 수 있고 한번만 누르면 되니 간편해서 좋다고 하셨다.

“무슨 말”“내가 내일 택배를 부칠 것잉게 집 비우지 말고 받어라.”“뭘 부친다고 그래….”결혼하고 김치 한번 담가본 적이 없다. 김치가 떨어질 만하면 어머니가 시골서 부쳐왔다. 배추김치뿐 아니다. 깍두기, 파김치, 깻잎김치, 갓김치 등등. 늘 말로는 안 부쳐도 되요, 그러지 마세요, 하면서 부쳐주시면 냠냠, 잘도 먹었다. 어느 날 문득, 어머니 돌아가시면 김치는 누가 담가주나…. 빈집에 앉아 있을 때처럼 마음이 물끄럼해졌다. “이번에 부치면 김장 헐 때까지 먹어라.” 나는 무밭에서 핸드폰을 들고 서 있을 어머니에게 한사코 그러지 말라고 한다. 지난번에 부쳐준 게 아직 꽤 남아 있다, 그걸로 김장김치 올 때까지 먹을 수 있다, 아버지 청국장이나 맛있게 끓여놓고 돈 아끼지 말고 표 좋은 거 끊어가지고 올라오시라. 내 말이 길어지니 어머니는 잘 안 들린다이∼ 하시더니 끊어버린다. 다음날 도착한 택배상자 속에서 나온 것들은 김치들만이 아니다. 참기름, 깨소금, 고춧가루, 들깻가루, 생강가루, 고춧잎 된장 속에 박은 것, 토하젓, 호박즙에 굴비 한 두름에, 집 간장까지. 어찌나 꾹꾹 눌러담고 단단하게 묶었는지 일일이 펼쳐보기가 힘이 들 지경이었다. 김치는 열어보지도 않은 채 어머니에게 전화를 걸었다. “엄마, 이번에 김치는 정말 맛있네, 어찌 이리 간이 딱 맞는데…. 배추도 너무 잘 골랐어. 입안에서 아삭아삭 씹히는 게 어찌나 고소한지 밥 한 그릇을 뚝딱 먹어치웠네.”“그랬냐!”수화기 저편에서 들려오는 어머니의 목소리에 흐뭇함이 묻어 있다. 딸의 달콤한 칭찬에 아마 입술은 귀에 닿아 계셨을 것이다. 갑자기 어머니의 목소리가 은근해지셨다. “토하젓은 너한티만 보냈거던.”“응”“인자는 민물새우 구하기도 힘들구…. 어짰든 너한티만 보냈응게 다른 식구들한티는 말하지 말라잉∼ 서운하게 여길랑가 모릉게.”작년에도 똑같은 말을 하셨던 어머니. 밥맛이 없을 때면 이따금 토하젓에 더운밥을 비벼먹는 내 식성이 탓이다. 어머니 말은 귀에 담아듣지도 않고 발끈 성질을 부렸다. 그렇지. 나 하나가 아니지. 여섯 형제들한테 이짓을 하고 계시는 거지. 그제야 내 정신이 좀 든 것이다.

“엄마… 인자 이짓 좀 고만 하라니까…. 그러니까 몸이 그렇지. 엄마가 이런 거 안 보내준다고 서운해 할 사람도 없구, 밥 못 먹을 사람도 없어요. 사먹는 게 값도 싸게 먹혀. 제발 일 좀 그만하고 쉬라니까. 좀 노세요, 놀아!”

여태 잘 들렸던 내 목소리가 갑자기 안 들릴 리가 있는가만 어머니는 잘 안 들린다∼ 서울 가서 보자 잉, 하며 끊어버리셨다. 마음이 짠하여 다시 시골로 전화를 해보지만 어머니는 받지 않았다.

평생 일을 해오신 분이라 손을 놀릴 수가 없는 분. 어느 날 의사는 어머니의 어깨뼈가 다 닳아졌다고 했다. 뼈가 닳아지다니. 어느 날 의사는 또 어머니의 뼈가 텅 비었다고 했다. 뼈가 텅 비다니. 닳아지고 텅 빈 채로 어머니의 몸은 조금만 그만하다 싶으면 어느새 일을 하고 있다. 며칠 쉬어가기로 하고 아버지와 함께 이 서울에 오시면 하루는 어찌 견디고는 이틀째가 될라치면 집에 가야겠다고 나선다. 가서 뭐 할라고 물으면 개 밥 줘야∼ 된단다. 말 못하는 짐승을 굶기면 벌 받는다 잉∼ 하며 진짜 가버리신다.신경숙/ 소설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