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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투는 나의 힘> 감독 박찬옥
2002-11-17

“관객이 감정이입할 대상, 만들어주기 싫었다”

<질투는 나의 힘>은 매력적이지만 도통 속을 알수 없는 애인같은 영화다. 박찬옥 감독도 그렇다. 끊어질 듯 드문드문 대답을 이어나가는 그의 속엔 시원하고 명쾌한 대답을 끌어올리는 두레박이 있을 것 같지 않다. 하지만 작고 왜소한 몸에 폐쇄적으로 보이는 외양과는 달리 박찬옥감독은 귀여운 구석이 있다. 한양대 연극영화과를 졸업해 <있다> <느린 여름>등의 단편을 거쳐 <돼지가 우물에 빠진날>부터 <오! 수정>까지 홍상수 감독의 조감독 생활을 한 그에게 <질투는 나의 힘>은 첫 장편이자 메이저 데뷔작이다.

‘홍상수 감독의 조감독 출신’이라는 세간의 주목이 부담으로 작용하진 않았나.

= 물론 시놉시스 단계부터 그런 이야기를 많이 들었지만 마음에 두지 않으려고 노력했다. 당장은 만들고 싶은걸 만들고 비교나 평가 같은건 나중에 듣자, 그런 마음이었다. 다 감독님이 유명해서 그런 거라고 생각한다(웃음). 어제 영화를 보셨는데 좀 의외의 반응을 보이셨다.

어떤 반응?

= 사실, 처음 홍감독님이 연출부들을 모아놓고 “난 니들 책임지는 사람이 아니야, 우리는 도제 뭐 그런거 없다. 혼자서 알아서 커라”고 말하곤 하셨다. 그래서 내 영화를 보고도 별 감흥이 없으실 줄 알았다. 그런데 생각 외로 많이 흐뭇해하고, 대견해하고 그러시더라. 제자보듯이. 영화를 보고 사람들의 반응을 듣는 건 재미있는 일이다. 하지만 정색하고 하는 평 보다는 툭 던지는데 아, 하고 확 찔리는 이야기가 좋다. 어떤 분이 영화를 보고 “어디로 튈지 모르겠다”고 하셨는데 좋게 받아 들였다. 앞으로도 그때 그때 가장 재미있고, 관심 있는 이야기를 할 거니까.

원상과 성연, 윤식이란 인물을 상황속에서 반응하게 놔두고 감독은 어디에도 개입하지 않은채 냉정하고 차가운 입장을 취하고 있는 듯 보였다. 마치 실험하는 과학자와도 같이.

= 내 단편은 <있다>로 대표되는 “미묘하고 불온하다”라는 평을 받는 리얼리즘적 영화가 있고 <느린 여름>처럼 드라마가 강한 영화가 있다. 그런데 드라마를 하다보면 자꾸 관객들에게 쉽게 이해되는 방식으로 순화하려 하고, 공감을 바라는 식의 연출을 하는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질투는 나의 힘>은 내가 과연 2시간짜리 드라마를 만들어 낼 수 있을까에 대한 실험이었다. 물론 관객들에게 감정이입 대상을 만들어 주고, 그 인물을 설명해 주면서 가면 편한데 그러기가 싫었다. 대신 드라마 만들기의 매너리즘에 빠지지 않은 채 <있다> 같은 느낌을 섞어보자고 생각한 것이다. 그냥 기술적인 선택이었다고 봐 주었으면 좋겠다.

점점 질투를 넘어 윤식에게 동화되어 가는 원상의 감정은 동성애 코드로 읽힐 수도 있겠다.

= 영화란 것이 내가 의도하지 않았던 부분이 그냥 그 안에서 작용해 버리는 경우가 있더라. 물론 시나리오를 보고 그런 부분을 지적하는 분들도 있었다. 만약 거부반응이 있었다면 그 단계에서 버릴 수도 있었는데 특별히 싫어할 이유가 없었다. 의도하지는 않았지만 그렇게 느껴도, 안느껴도 상관 없는 일이다.

라디오 소리로 시작되는 첫 장면을 비롯해 TV 종료방송, 한윤식의 미디 건반 소리등 영화속 대부분의 소리들은 이후에 만들어져서 삽입한 것보다는 현장에서 흘러나오는 식이다.

= 시나리오를 쓸 때 어떤 신은 소품이 어떻고, 어떤 소리가 나왔으면 좋겠다는 점까지 꼼꼼하게 쓰고 어떤 신은 그저 날림으로 쓰고…그런 게 뒤죽박죽 섞여있다. 미학적 선택은 아니었다.

단편과 비교해 장편 작업의 어려움은 무엇이었나.

= 단편 할 때는 어떤 영화든지 날림으로 찍는 순간이 있다. (웃음) 니네들 밥먹어라, 그리고 혼자 고민하다가 밥먹고 오면 이렇게 찍자, 이런 즉흥 연주가 가능했는데 장편은 그런게 안된다. 시간이 흘러가는 게 돈이고 예산이다. 스탭들은 모두 프로페셔날하고 체계적이다. 그런데 자유로움은 덜했다. 가끔은 갑갑한 느낌이 들 정도로.

화면이 참 담담하다.

= 가능하면 사실적으로 찍자는 생각을 했다. 영화적으로 허용되는 빛의 왜곡이나 색의 변질을 피하려고 했다. 가능하면 눈에 보이는 대로 찍으려고 했는데 그게 더 어렵다더라. (웃음) 미장센의 경우에도 꾸며졌다는 느낌이 덜 들게 가려고 했다. 무리한 앵글보다는 배우의 동선을 따라 자연스럽게 갔다. 그렇다고 내 영화관이 그렇다는 이야기는 아니다. 단지 이 시나리오에는 그런 촬영이 맞을 것 같아서였을 뿐이다.

20대 후반의 불안한 남자는 보통 사회적으로 피해자로 그려지는 경우가 많았다. 하지만 이원상은 때로는 가해자같은 혹은 그 중간에 어정쩡히 서있는 느낌이 들었다.

= 만약 원상을 윤식과의 관계만 놓고 본다면 <태양의 가득히>의 리플리같았을 거다. 하지만 원상이 안해옥에게로 가면 말도 함부로하고, 강하게 군다. 그런가 하면 박성연에게는 “누나, 누나”하며 아기처럼 군다. 사람은 모두 상대적이다. 인물의 틀을 미리 만들어 놓고 그곳에 성격을 붓는 것엔 관심이 없다. 그저 모든 인물들을 관계속에서 이야기하고 싶다.

백은하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