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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소요> Unknown Pleasures
2002-11-19

<임소요> Unknown Pleasures

아시아 영화의 창/ 일본·한국·프랑스/ 2002년/ 113분/ 감독 지아장커/

오후 8시 대영시네마 1관

<임소요>는 보는 내내 답답함을 불러일으키는 영화이지만 예기치 않게 우리의 가슴을 파고들어서는 끝내 한없이 슬픈 기분에 잠기게 만든다. 어쩌면 그것은 이 영화가 단지 중국이라기보다는 아시아에서의 삶을 보여주는 영화이기 때문일 것이다. <임소요>는 여기 이곳 아시아에 덧입혀진 자본의 시간을 눈과 귀를 통해 생생히 체험하게 만든다.

<소무>와 <플랫폼>에 이은 지아장커의 세 번째 장편 <임소요>는, 그가 디지털 카메라로 제작한 단편들인 <공공장소>와 <개들의 처지>의 무대가 되었던 바로 그곳, 산시성(山西省) 따퉁(大同)에 거주하는 19살 난 아이들을 주인공으로 삼고 있다. 서로 동갑내기인 빙빙과 샤오 지는 영락한 탄광촌인 따퉁 이곳저곳을 하릴없이 쏘다닌다. 빙빙은 가끔 여자친구를 만나 함께 비디오방에 가서 영화를 보곤 하는데 그녀는 곧 대학입시를 치를 예정이며 합격하게 되면 이 도시를 떠나게 될 것이다. 샤오 지는 어느 날 댄서 차오차오를 만나 그녀를 사랑하게 되지만, 그녀에겐 자신의 고등학교 선생님이었으나 지금은 기둥서방 노릇을 하고 있는 한 남자가 있다. 빙빙과 샤오 지의 비루한 삶은 출구가 없어 보이고 결국 그들은 은행을 털기로 결심한다. 그들의 서툰 시도는 실패로 끝나고 샤오 지는 도주하고 빙빙은 홀로 공안에게 붙잡힌다.

<임소요>는 보는 내내 답답함을 불러일으키는 영화이지만 예기치 않게 우리의 가슴을 파고들어서는 끝내 한없이 슬픈 기분에 잠기게 만든다. 어쩌면 그것은 이 영화가 단지 중국이라기보다는 아시아에서의 삶을 보여주는 영화이기 때문일 것이다. <임소요>는 여기 이곳 아시아에 덧입혀진 자본의 시간을 눈과 귀를 통해 생생히 체험하게 만든다. 우리가 <임소요>의 이미지들에 해석을 가하고 의미를 부여하기도 전에 그들은 어느새 아픈 칼날이 되어 우리의 심장으로 날아든다. 특히 <임소요>에서 지아 장커가 일상의 소리들을 영화적으로 운용하는 솜씨는 탁월하다. 여전히 과거의 흔적을 드러내고 있는 배경들과 더불어 어울리지 않게 뒤섞여 있는 동시대의 징후들 - 댄서를 내세워 사람들을 끌어들이는 주류홍보이벤트, 따퉁의 공기를 가르는 복권광고, 미군기의 중국영공침범이나 베이징까지의 철도건설계획을 알리는 텔레비전 뉴스 등 - 은 또한 인물들과도 충돌하면서 모순과 균열의 지점들을 때로 우스꽝스럽게 때로는 가슴아프게 노출시킨다. 차오차오와 식당에 앉아 이야기를 나누던 샤오 지가 타란티노의 <펄프픽션>에 대해 떠들어대는 장면과, 이후 곧바로 이어지는, 역시 <펄프픽션>을 모방한 그들의 댄스장면은, 정말이지 젠체하는 오마쥬나 우스개로 끼워 넣은 패러디가 아니라 비통한 진심이 담긴 자화상인 것이다. 미학적 과시로 넘쳐나는 거장들의 영화들 틈에서, 지아 장커의 <임소요>는 영화작가 자신이 놓인 현실에 대한 냉철한 사유의 흔적을 보여주는 보기 드문 영화이자, 포스트 천안문세대의 작업이 여전히 현재진행형임을 알리는 증거이며, 부산을 찾은 여러분이 꼭 봐야 할 영화 가운데 하나라는 점에는 의심의 여지가 없다.

글/ 유운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