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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소요> 감독 지아장커의 영화세계
2002-11-20

날 것 그대로의 시간을 성찰하다

유운성/영화평론가

지아장커의 영화가 흥미로운 이유는 그가 현실적 인물들을 현실적 공간에서 묘사해낸다고 하는 뻔한 리얼리즘의 관습에 사로잡히지 않고, 때론 과감히 그것에 생채기를 내면서 날 것 그대로의 시간이라고 하는 실재를 포착해낼 줄 아는 드문 시네아스트이기 때문이다.

<소무>, <플랫폼>에 이어 올해 디지털 장편 <임소요>를 발표한 중국 감독 지아 장커는 1970년 중국 동부의 도시 샨시성 펀양에서 태어났다. 소년기를 동네 친구들과 어울려 건달짓을 하고 다니는 것으로 소일하던 그는 대학진학을 위해 회화를 공부하다 ‘운좋게’(?) 북경전영학원 이론과에 입학하게 된다. 북경전영학원 재학당시, 이후 그의 중요한 조력자가 될 왕홍웨이(<소무>, <플랫폼>에서 주연을 맡았고 <임소요>에서도 잠깐 얼굴을 드러낸다)와 꾸정(모든 지아장커 영화에 참여했고 주로 조감독을 맡았다)과 함께 청년실험전영소조를 만들어 활동하던 그는 어렵사리 만든 소박한 장편데뷔작 <소무>로 국제적인 주목을 끌어내면서 이른바 중국 제6세대 혹은 지하전영의 중요한 기대주로 떠오르게 된다. 이후 이어진 그의 행보는 그를 향한 많은 이들의 기대가 결코 헛되지 않은 것임을 입증해주고도 남음이 있다.

내밀한 시간에의 끈질긴 응시

지아장커의 영화가 무엇을 다루고 있는가하는 질문에 대해 불충분하지만 가장 간명한 답변을 고르라면 그건 의심의 여지없이 ‘시간을 다룬다’는 답변이 될 것이다. 그런데 그 시간이란 어떤 시간인가. 그의 두 번째 장편 <플랫폼>과 같이 1979년부터 천안문 사태까지를 가로지르는 영화의 경우, 여기서는 분명 개인사적 기억을 넘어서는 역사적 시간에 관한 탐색이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음을 부인할 수 없다. 그러나 <플랫폼> 전반에 걸쳐 (거의 강박에 가까울 만큼) 널리 사용된 집요한 롱테이크 장면들을 지켜보고 있노라면, 지아장커의 관심이 주로 등장인물들의 내밀하고 사적인 (때로는 거의 '허접'하다고까지 말할 수 있는) 행위들이 수줍게 펼쳐지는 사멸한 시간들에 대한 응시에 놓여 있음을 알게 될 것이다.

즉 여기서 지아장커의 영화는 역사라는 거대한 조각상에 새겨져 있으되 거의 눈에 띄지 않는 세밀한 결들과 주름들을 망각이라는 풍화작용으로부터 지켜내려는 시도라 볼 수 있다. 이러한 작업을 통해 역사는 다시 조망되고 잊혀져가던 세부와 더불어 새로운 모습으로 드러나게 된다. 이때 중요한 것은 지아장커가 결코 노스탤지어에 빠져들지 않으면서 물리적일 뿐 아니라 정신적인 실재의 복원까지도 함께 얻어내고 있다는 점일 것이다.

사실 지아장커의 영화에서 우리를 감동시키는 순간은 보잘 것 없는 행위들을 길게 응시한 뒤에 찾아오는 섬광 같은 축복의 순간이자 슬픔의 순간이다. 개인적으로는 지아장커의 (유일하게 한국에서 극장개봉된) 장편 데뷔작 <소무>에서 메이메이를 찾아간 주인공 소무가 그녀에게 수줍게 노래를 불러주고 잠시 후 메이메이가 소무에게 기대어 눕기까지의 과정을 보여주는 긴 롱테이크 장면을 특별히 사랑한다. 이 장면은 그에 앞서는 모든 장면들에서 소무가 보여주었던 소심함의 이유를 다시 생각게 만들면서 영화 속에서 매우 결정적인 한 순간으로서의 지위를 차지하게 된다. 자신의 주위를 둘러싸고 있던 낭만적인 과대망상(영화에 삽입된 <첩혈쌍웅>의 사운드)과 과장된 프로퍼갠더('범죄와의 전쟁'을 선포하는 정부의 선전방송) 속에서 초라하게 웅크린 채 노래방을 찾곤 하던 소무가 마침내 스스로의 노래를 지니고 그것을 타인의 앞에서 부르게 되었다는 것은 분명 그에게는 예사롭지 않은 것이다. 그러나 무엇보다 이 장면이 아름답게 느껴지는 이유는 그것이 지속되지 못하고 사멸할 시간임을 우리가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이것은 어쩌면 기억에서 사라질 지도 모르는 환영 같은 순간이며 그렇기에 더더욱 이를 붙잡아야 한다는 우울함과 안타까움이 우리를, 소무를, 그리고 지아장커를 사로잡는 것이다.

아름다운 회고담은 없다

바로 이 환영과 같은 사라진 순간이 남겨둔 상처를 바라본다는 것이 얼마나 슬픈 것인가를 명징하게 드러내는 장면을 <임소요>에서 찾아볼 수 있다. 빙빙의 여자친구가 자전거를 타고 그의 앞에서 천천히 원을 그린다. 그녀는 곧 고향마을 따퉁을 떠나게 될 것이다. 여기엔 시간을 차라리 순환의 고리 안에 붙잡아 두어서라도 상실을 극복하고자 하는 시도가 있다. 그러나 그녀의 자전거는 서서히 문 밖으로 빠져나가고 이제 남은 것은 텅 빈 공간뿐이다. 이를 지켜보는 것이 슬픈 이유는 여기에 단지 헤어짐의 순간이 아니라 말 그대로 살점이 뜯겨지듯 존재가 떨어져 나가는 순간에 느껴지는 아픔이 자리하고 있기 때문이다.

다시 말하지만 지아장커의 영화에 회고담은 존재하지 않는다. 그는 화면을 아름답게 꾸미고 거짓기억으로 치장하는 법을 알지 못한다. 지아장커의 영화가 흥미로운 이유는 그가 현실적 인물들을 현실적 공간에서 묘사해낸다고 하는 뻔한 리얼리즘의 관습에 사로잡히지 않고, 때론 과감히 그것에 생채기를 내면서 날 것 그대로의 시간이라고 하는 실재를 포착해낼 줄 아는 드문 시네아스트이기 때문이다. 그 발가벗겨지고 조각난 시간의 비린 냄새는 우리를 불편하게 만든다. 지아장커의 영화에서 질 낮은 스피커를 통해 공허하게 울려 퍼지는, 혹은 다른 영화의 음원으로부터 추출된 거친 사운드 또한 분명 위와 같은 시간의 특성과 관련되어 있는 것이다. 인물들이 힘없이 읊조리는 노래는 또 어떤가. 졸렬한 프로퍼갠더와 값싼 노스탤지어에 사로잡힌 기억이 점점 망각에 의해 잠식되어 가는 동안에도 그 노래는 결코 끝나지 않을 것이다.

Jia Zhang-Ke

Jia Zhang-Ke, director of , and his latest film , was born in Fenyang, China in 1970. He, who hung out with neighborhood bullies as a teenager, began his study in painting for college entrance. Then, ‘luckily,’ he was admitted into Department of Theory at Beijing Film Academy. It was there, where he met his future film buddies Wang Hong-Wei, who played the leading role in and and a minor role in , and Zheng Gu, who participated in all of Jia's films, usually as an assistant director. During their years at Beijing Film Academy, they organized young filmmakers' community and, with much difficulties, Jia's debut film was created, which received international praise. Through this film, Jia became the most promising young director of Chinese underground film, the 6th Generation.

What does Jia Zheng-Ke's film deal with? This question cannot be adequately answered with a simple reply, but its most possible concise answer would be, without a doubt, ‘dealing with time.’ Then, what kind of ‘time’ does his film deal with? In his second feature , a story that expands from 1979 to Tien An Men massacre, his thorough historical investigation beyond his personal memories, plays undeniably crucial part of the film. However, by studying Jia's use of long take shots in through out the whole film, we can understand that his honest interest lies on the perished time, where private deeds of each character are timidly displayed.

Thus, Jia's film is an attempt to defend those minute, unnoticed engravings of an enormous sculpture called ‘history,’ from the weathering effect of being buried in oblivion. Through this process, a fresh view of history will emerge itself, along with history's almost forgotten minute details. What is so significant about this process in Jia's film, is that Jia delivers restoration of physical, as well as psychological existence, without ever falling into a state of nostalgia.

The most captivating aspect about Jia's filmmaking is that, he's not bound to the convention of obvious realism, like of ‘presenting realistic characters in a realistic space.’ He's a rare ‘cineast’, who is not afraid to disfigure the obvious realism and is able to capture the raw existence of the time. The loathsome oder of that shattered, naked time makes us feel uncomfortable. Even the sound element in Jia's film, the one that seems to penetrate a void space through a rusty speaker, or the one that seems to be abstracted from other film's sound source, has definite connection to the peculiar characteristics of the time, as mentioned above. How about the songs, which are feebly recited by characters? Those songs will not end, even when the memories, which are seized by awkward propaganda and cheap nostalgia, are being invaded by the power of oblivio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