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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usan,3 Days 2 Nights
2002-11-27

조선희의 이창

* 개막식의 문턱: 개막 이틀 전에 <씨네21> 후배에게 개막식 입장권을 구해달라고 부탁했다. “홍보팀에 표가 쌓여 있을 테니까 그냥 한장 달라고 해.” 다년간의 경험에 따르면, 영화제 시즌이 되면 개·폐막식 입장권이 부산 시내 길바닥에 은행잎하고 같이 굴러다닌다. 잠시 뒤 후배로부터 전화가 왔다. “입장권이 없다는데요 올해는 개막식을 시민회관에서 하기 때문에 좌석도 적고.” 이 후배들에겐 내 주문이 좀 당황스러웠을 것이다. 나는 흡사, 몰라보게 변해버린 고향마을에 와서 “여그가 옛날엔 다 사램 댕기는 길이었단 말여” 하면서 차도를 막 건너다니는 할머니가 된 기분이다. 하지만 섭섭할 건 없다. 부산영화제도 이제 7년이 됐으니 그 권위에 어울리는 절차상의 엄격함을 보일 때가 된 것이다.

* <해안선>: 11월14일, 마산과 창원에서 몇 가지 일정을 치른 뒤 부산 시내에 들어갔을 때는 이미 늦은 시간이다. 올해 씨네21은 중구 대창동에 영화제 데일리 사무실을 차렸다. 영화제 첫해 데일리 사무실은 중앙동 부산호텔 앞에 있었는데 그 골목 포장마차에서 파는 오뎅의 맛을 잊을 수 없어 나는 해마다 남포동에서 야근을 끝내면 굳이 중앙동 뒷골목까지 오뎅 먹으러 가곤 했다. 마감 때문에 저녁을 거른 데일리 식구들을 위해 그 유명한 부산 오뎅을 사러 나간다.

개막작 <해안선>은 결국 서울에 돌아와서 보았다. 나는 밥숟가락 들기 전에 기도를 올리듯, 영화관의 조명이 꺼지기 전에 잠시 남동철 기자에게 마음속으로 경의를 표한다. 김기덕 감독이 아직 ‘괴상한 재야작가’였던 시절, 데뷔작 <악어>에서 김기덕 감독을 ‘발견’한 이래 그는 <씨네21> 편집진 내부에서 초지일관 김기덕의 지지자이자 연구자이자 후원자였다.

내가 아직 서른다섯살이 되기 전이었다면 <해안선>을 좋아했을 것이다. 예전엔 장르 불문하고 ‘임팩트’가 강한 영화를 좋아했으니까. 돌아오는 차 안에서 옆자리 친구에게 “이제는 병적인 폐쇄성을 즐기는 영화가 싫다”고 말했다. 친구는 “출구가 없는 게 현실이잖아. 희망을 얘기하는 영화가 오히려 사술 아냐”라고 반문했다. 나는 “희망이 없다고 하는 영화 역시 사술이지”라고 대꾸했다. 뭐가 사술이 됐든 간에, 내가 철저한 개인으로서 내키는 대로 영화를 보고 또 지껄일 수 있게 된 건 행복한 일이다. 나는 마음대로 지껄일 수 있게 된 김에 한마디 덧붙인다. “창작이 작가의 강박을 치유한다면, 김기덕 감독은 이제 다 나았을 때도 됐는데….”

* 지옥에서 천국으로: 영화제 이틀째에 뒤따라 내려오는 일행을 위해 나는 개봉관에서는 볼 수 없을 프랑스 영화 두편을 선택했다. <금요일밤>과 <기차를 타고온 남자>. <금요일밤> 입장권을 샀다고 했더니 <씨네21>의 한 후배가 “잘 선택하신 거에요. 아주 관능적인 영화예요”라고 논평한다. 득의만만해서 영화관에 들어간 나는 대사도 음악도 없는 롱테이크들의 행진을 견디다 못한 나머지 “관능은 언제 나오는 거야”라고 소리치고 만다. 나는 자다깨다 하는 틈틈이 옆자리의 후배에게 “내가 자는 사이에 관능 나왔어” 하고 묻는다. 영화관에서 나오자마자 일행으로부터 내게로 일제히 비난이 쏟아진다.

친구 하나가 “베니스에서 봤는데 <기차를 타고온 남자>도 만만찮아”라고 하는 바람에 우리는 ‘기차’ 티켓을 영화관 앞에서 만난 후배들에게 다 줘버린 뒤 택시를 타고 남포동을 떠나 시민회관으로 <그녀에게>를 보러간다. 알모도바르 영화가 있는 줄 알았으면 챙겼을 터인데 어찌된 일인지 티켓카탈로그를 훓으면서도 이 영화를 놓치고 말았다.

이 영화까지 실패했으면 나는 두고두고 이지메를 면치 못했을 것이다. 하지만 이 영화 한편으로 우리 다섯은 모두 행복해졌고, 나는 ‘올해 최고의 영화’를 부산에서 건졌다. 나는 알모도바르의 칸 감독상 수상작 <내 어머니의 모든 것>보다 이 작품이 한결 좋다. 알모도바르는, 젊은 시절의 재기(才氣)에서 객기(客氣)가 빠져나가고 오직 천재(天才)만이 남아서 숙성해가고 있는 것 같다. 우리도 그런 ‘숙성’의 50대를 맞을 수 있을까. 숙성이란, 자기가 어디로 가는지, 또 어디로 가야 할지 알게 됨을 뜻하는 건 아닐지.

걸작은, 모든 창작자들을 행복하게 한다. 모차르트를 질투하는 살리에리처럼, 하늘은 왜 그에게 천재를 주고 내게는 열정만 주었을까, 하고 탄식하게 된다 할지라도. 작가라면 누구에게나 공히 어떤 상상력의 영토가 허락돼 있으므로. 넓든 좁든, 비옥하든 척박하든 간에. 조선희/ 소설가·전 <씨네21> 편집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