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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인의 제작 투자자가 말하는 2002년 8문8답 [2]
2002-12-27

한국영화 2002년이 간다

"올해, 양적으로 질적으로 합격점"

강제규 필름 대표 강 제 규

상반기의 우려와 달리 양적으로나 질적으로나 합격점이라고 본다. 작품 수가 예년에 비해 많이 늘었고, 또 <취화선>이나 <오아시스>가 해외영화제에서 수상하는 등 여러모로 기대 이상이다.

<성냥팔이 소녀의 재림>을 비롯해 큰 영화들의 흥행성적이 저조했다. 다들 절감하겠지만 파이낸싱만 하더라도 파급효과가 상당했잖나. 단, 블록버스터를 싸잡아서 비판하는 것은 자제해야 한다. 개별 작품들의 공과을 디테일하게 파악할 수가 없어서다. 이 경우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방안도 찾기 어려워진다.

모든 부분을 현장에서 감독의 능력과 재능만으로 해결할 수 있는 시대는 지났다. 버젯이 어떻든 촬영에 앞서 철저한 계산이 필요하다. 모든 상황을 예측하는 것이란 불가능하지만 사이즈를 결정하기 전에 관객을 끌어모을 만한 요소들이 어떤 것인지 컨셉부터 냉정하게 살펴야 한다. 이러한 책임은 비단 제작자뿐만이 아니라 투자자도 마찬가지다.

지난해는 회사 내에 인력 개편이 잦았다. 다소 어수선했는데 올해는 좀 자리를 잡은 것 같다. 상반기에 투자하고 제작한 5∼6편의 영화들 성적이 좋지 못했지만, 최근에 <몽정기>가 어느 정도 해줘서 분위기는 좋다. 개인적으론 <태극기 휘날리며> 시나리오에 6∼7개월 전력투구하느라 다른 일에는 크게 신경을 쓰지 못했다.

시행착오라고 말하긴 뭣하고. <연인>이라는 작품을 제때 제작하지 못한 게 아쉽다. 동성애를 다룬 영화인데, 기존의 유사 소재의 작품들과 차별성이 있다고 봤다. 그러나 캐스팅과 파이낸싱이 어려워서 미뤄졌다. 시장이 다소 경색된 상황에서 투자자들이나 배우들이 보수적인 선택을 하는 것을 모르는 바는 아니지만 아쉽다.

<집으로…>와 <폰>에 박수를 보내고 싶다. 기획영화에 어떻게 접근할 것인가에 대해서 새로운 돌파구를 제시해줬다고 본다. 파이낸싱과 캐스팅이라는 현실적인 한계점을 정면으로 뛰어넘었다. <집으로…> 같은 영화들이 성공해야 투자사에도 ‘봐라, 되지 않느냐’라고 설득할 수 있다. <폰>은 호러나 스릴러 등 그동안 기피해왔던 장르를 택해서 흥행 대열에 끼었다는 점에서 이후 다양한 장르의 영화를 기획하고 제작할 수 있는 분위기를 조성했다.

충무로 사이클이 있으니까 올해보다 편수는 아무래도 줄어들겠지. 하지만 관객의 한국영화에 대한 기대가 여전한 만큼 상승세는 계속 이어질 것으로 본다.

<내츄럴시티>가 궁금하다. 국내에서 본격적인 SF영화는 없지 않나. 민병천 감독이 오래 준비했고, 또 우리 스탭들의 기술력을 볼 수 있다는 점에서 기다려진다.

"다양한 장르시도, 주목한다"

좋은영화 대표 김 미 희

다양한 장르를 시도한 한해였다는 점에서 주목할 만하다. 물론 개별 작품의 퀄리티를 따질 경우 첫 시도에 점수를 줄 수밖에 없는 경우가 대부분이었지만, 멜로나 코미디 등 특정 장르의 영화들만이 쏟아지는 기형적인 상황보다는 앞으로 가능성을 타진할 수 있어서 긍정적이다.

한국형 블록버스터의 연이은 흥행 참패. 테크닉과 비주얼보다 어떤 컨셉의 영화를 만들 것인가에 대한 고민이 필요했다고 본다. 오히려 하고 싶은 이야기를 차곡차곡 쌓아서 보여줬던 소품같은 영화들이 관객으로부터 좋은 반응을 얻었는데, 이러한 상반된 두 경향은 제작자들이 곱씹어야 할 점이다.

‘블록버스터’에 대한 개념부터 새로 정립할 필요가 있다. 돈 많이 들인다고 블록버스터가 아니다. 많이 들이면 많이 번다고들 한다. 그러나 이 공식은 여전히 국내 시장에 초점을 맞추고 있는 한국영화에 적용하기엔 무리다. 현재로선 개별 프로젝트의 사례들을 기초로 프로덕션 전반에 대한 데이터화 작업이 절실한 것 같다.

돈만 따지면 적자다. 강우석 감독이 1년 투자작 중 가장 손해본 영화로 <피도 눈물도 없이>와 <밀애>를 지목하는 것을 보면 모르겠나. 지난해 이맘때 세편 해서 전국 관객 1천만명을 불러모으겠다고 그랬는데 거짓말한 셈이 됐다.

좋은 인력 끌어오느라 애썼다. 감독, 작가, 프로듀서 등 최상의 인력 네트워크를 구성했다는 점에서 뿌듯하다. 소프트웨어가 좋으면 돈은 따라오게 마련 아닌가. 물론 이쪽에만 너무 신경을 쓰다보니 대중적 코드를 놓쳤다는 생각도 든다. 2편 대박 내놓고서 개인적으로 너무 자만한 것 아닌가 싶기도 하다. 일례로 <재밌는 영화>의 경우 지금의 한국영화 상황이면 패러디가 충분히 먹힐 것이라고 판단해서 기획한 것인데….

<색즉시공>. 대중영화로서 어필할 수 있는 요소를 처음부터 끝까지 놓치지 않고 끌고 간다는 점에서 인상적이었다. 또 관객이 무엇을 원하는가를 두고서 제작진이 솔직하게 접근했다는 점도 높이 사고 싶다. 제작자 입장에서 작업할 감독들에게 제시하고 싶은 텍스트다. 아무도 예측하지 못했던 <집으로…>의 흥행도 자극이 됐다.

점유율에 대해선 걱정 안 한다. 올해도 예년만 못하다느니 거품이라느니 그랬지만 결과는 여전히 호황이다. 단, 새로운 것들에 대한 장르적 도전이 좀더 숙성되어 결과로 나타났으면 싶다.

<태극기 휘날리며>. 규모도 크지만 <쉬리> 이후 오랜만에 현장으로 돌아온 강제규 감독의 꼼꼼하고 디테일한 연출이 보고 싶다. <실미도>는 본인은 아니라고 하지만 강우석 감독이 지금까지 해온 영화들과 많이 달라 궁금하다. 오종록 감독의 <첫사랑 사수 궐기대회>도 관심있다. 시나리오 보면서 몇번이고 울었다.

"투자위축, 문제다"

튜브엔터테인먼트 대표 김 승 범

작품 수가 많았다는 점에서 양적으로 많이 성장했고, 질적으로도 성장한 게 사실이다. 전체적으로는 굉장히 완성도 높은 영화와 질이 그리 좋지 않은 영화가 공존했던, 어떤 의미에서는 다양해진 한해였다.

투자가 굉장히 위축되고 있다는 것이다. 한국영화에 관객이 안 든 것은 아닌데, 투자자들이 흥행 안 된 영화에 투자를 많이 해서 그런지 대체로 재미를 못 봤던 것 같다. 여기엔 블록버스터의 흥행실패가 큰 영향을 끼친 것 같다. 할리우드 같은 경우도 대작영화가 시장을 주도하는데, 그런 영화들이 실패하면서 투자 위축이 온 것 같다. 하지만 한 나라의 영화산업이 발전하려면 작은 영화가 대박을 터뜨리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천국과 지옥을 오간 한해였다. 사실, <집으로…>를 비롯해 우리가 투자 또는 제작한 영화는 800만명 정도의 관객을 끌었지만 <성냥팔이 소녀의 재림>이 최악의 흥행을 올렸다. 부가판권까지 다 계산해도 손실액이 60억∼70억원 정도 될 것이다. 투자자들에게 큰 손실을 입혔다는 점이 가장 미안한 일이다. 어떻게 보면 비즈니스를 한 게 아니라 도박을 했다는 생각도 들어 큰 반성을 하고 있다. 만약 성과가 있다면 실패에서 오는 여러 가지 교훈일 것이다.

<성냥팔이…>가 가장 중요한 프로젝트였는데 실패했다. 충무로에서 가장 큰 시행착오를 저지른 사람이 나인 것 같다. 시행착오란 일정과 예산을 못 지켰다는 것이다. 흥행실패는 그 결과였다고 본다. 큰 영화를 만듦에 있어서 기본을 안 지켰던 것 같다. 훨씬 더 많이 준비했어야 했고, 좀더 빨리 찍었어야 했다. 감독과 제작사 사이의 합의도 이뤘어야 했다.

<결혼은, 미친 짓이다>가 인상적이다. 영화하기 힘들 정도로 단순한 소재라고 생각했는데, 이를 필름에 담는 재주가 대단하더라. 특별히 영향을 받은 영화는 없는 것 같다.

올해 하반기보다는 나아질 전망이다. 넓게 보면 산업화 과정에서 겪는 시련이라고 생각한다. 산업화의 기본 조건 중 하나는 ‘예측가능성’일 텐데, 아직은 제작비가 정해진 예산을 초과한다든가 제작일정이 늦어진다든가 하는 일이 너무 빈번하다. 하지만 이런 지점에 대해 제작자들이 자각하고 있는 분위기로 봐서 한결 나아질 것이다. 제작편수가 줄어들 것은 확실한 듯 보이지만, 내용은 알차질 것 같다.

<이중간첩>이다. 한석규가 다시 파워를 발휘할지 궁금하다. <태극기 휘날리며>도 관심이 간다. 지금의 한국영화 산업화에 불을 댕긴 당사자인 강제규 감독이 다시 한번 돌파구를 열 것으로 기대한다. 우리로선 새로운 대주주를 물색하는 일이 급선무며, 튜브픽처스가 제작하는 <귀여워> <해피 에로 크리스마스> <동정없는 세상>, 그리고 이시명 감독과 이정향 감독의 새 프로젝트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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