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록다큐멘터리의 전설,<라스트 왈츠>
2002-12-31

The Last Waltz, 1978년감독 마틴 스코시즈 출연 더 밴드자막 영어, 한국어, 타이어, 중국어, 인도네시아어화면포맷 1.85:1 아나모픽 와이드 스크린오디오 돌비 디지털 5.1, 돌비 디지털 2.0 출시사 이십세기 폭스

1976년의 추수감사절 샌프란시스코의 윈터랜드 극장에서 열렸던 록그룹 ‘더 밴드’의 마지막 콘서트는 애초에는 그저 조촐한 이벤트 정도로 생각하고 기획된 것이었다. 16년 동안 순회공연 길에 올랐던 더 밴드의 멤버들은 이제 자신들의 “운이 다했다는 징조”를 보고서 그룹 활동을 끝내기 전에 일종의 고별 콘서트를 갖자는 데 의견을 함께했다. 더 밴드는 60년대 초반에서 중반 사이 로니 호킨스와 밥 딜런의 배킹 그룹으로 활동을 하며 명성을 얻었기에 이 밴드의 음악적 여정에 중추적인 역할을 한 이 둘은 당연히 콘서트에 게스트로 초대될 예정이었다. 그리고 또 다른 게스트로 에릭 클랩튼 등을 비롯한 다른 인물들의 이름이 차츰 거론되더니 그만 더 밴드의 콘서트는 60년대를 대표할 다른 많은 아티스트들을 더 불러와 한 시대를 정리할 만한 아주 특별한 이벤트로 확대되기에 이르렀다.

더 밴드의 이 콘서트를 필름에 담은 것이 <라스트 왈츠>인데, 이 영화도 콘서트와 유사하게 ‘확대’의 과정을 거쳐 나온 산물이다. 콘서트를 기록하자는 의견이 나왔을 때 처음에 밴드 멤버들이 생각한 것은 한대의 비디오카메라를 써서라도 어떻게든 역사적 ‘자료’를 남겨놓자는 정도였다. 그러나 초창기의 이 소박한 생각은 마틴 스코시즈가 콘서트의 영화화 프로젝트에 참여하면서 일곱대의 카메라를 쓴 35mm 컬러영화로 커지게 된다.

스코시즈가 더 밴드의 로드 매니저 조너선 태플린으로부터 콘서트를 필름에 담아보지 않겠느냐는 제안을 받은 것은 1976년 9월의 일이었다. 당시는 스코시즈가 <뉴욕 뉴욕>(1977)의 촬영을, 그것도 원래 책정된 제작비를 넘겨가며, 막 끝내가던 무렵이라 그로서는 제작자로부터나 개인적으로나 상당한 압력을 받고 있는 상태였다. 그러나 이미 몇편의 록다큐멘터리에 편집자로 참여해본 ‘경험’도 있었고(<우드스탁> <메디슨 볼 카라반> 등), 음악에 대한 남다른 ‘열정’도 가지고 있었으며, 또한 더 밴드의 콘서트가 한 시대의 끝을 보여주리라는 ‘통찰’도 지니고 있었던 스코시즈는 제작자 몰래 <라스트 왈츠> 작업에 뛰어들었다. 그리고는 프로젝트의 규모를 키워놓더니 결국에는 록다큐멘터리의 교본이 될 만한 영화 한편을 기어이 만들어냈다.

<라스트 왈츠>를 만들면서 스코시즈가 일종의 안티테제로 삼은 영화는 또 다른 록다큐멘터리의 고전 <우드스탁>(마이클 워들리, 1970)이었다. 그는 <우드스탁>의 예를 따라서 대부분의 콘서트 필름들이 열광하는 청중을 잡은 숏들을 거의 관성적으로 보여주는 것에 대해 사람들이 이제 지겨워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그는 카메라를 배타적인 방식이라고 표현할 만큼 무대쪽만을 향하게 했다. 스코시즈가 한 말에 따르면, “<라스트 왈츠>에서 나는 무대 위에 머물러 있다는 것, 사람들과 함께 무대 위에 있다는 것을 발견해냈다”. <라스트 왈츠>에서 콘서트의 청중은 정말이지 스크린 밖으로 밀려나 있다. 가끔 보이는 그들의 모습들도 기껏해야 무대 뒤편으로부터, 그러니까 뮤지션들의 시점에서 포착한 것들이다. 스코시즈는 영화를 보는 관객이 콘서트 자체에 몰입하는 데에는 이런 방식이 좀더 효율적이라고 보았다. 이렇게 말할 때 <라스트 왈츠>는 그 다른 무엇보다도 콘서트, 혹은 무대, 그 위에서 빚어져 나오는 매혹적인 음악, 그리고 그 음악을 들려주는 뮤지션들에 대한 영화임이 드러난다. “음악은 우리를 모든 곳으로 데려갔어요”라고 하는 밴드의 리더 로비 로버트슨의 말에 스코시즈는 어떤 식으로든 공감하고 있는 게 틀림없다.

<라스트 왈츠>의 황홀한 콘서트는 더 밴드 멤버들이 들려주는 <Don’t Do It>으로 시작한다. 그런데 사실 영화를 여는 이 장면은 일곱 시간 정도나 지속되었던 정규 콘서트가 모두 끝난 뒤에 일어난 것이다. 이건 이 영화가 일종의 플래시백으로 구성되었음을 알려주는데, 이런 방식은 더 밴드의 콘서트를 한 시대의 끝자락으로 보는 스코시즈의 시선과 잘 공명한다. 여기엔 밥 딜런, 에릭 클랩튼, 닐 영, 조니 미첼, 밴 모리슨, 머디 워터스 등등의 그야말로 전설적인 뮤지션들이 무대에 올라 자신들의 영혼이 실린 음악들을 들려주지만 이들과 이들의 음악은 대개가 그 전성기에 있다기보다는 변화하는 시대 속에서 소멸하기 직전 마지막 화려한 불꽃을 피우는 것에 더 가깝다. <라스트 왈츠>는 그들을 통해 그들이 속했던 한 시대의 끝, 그것의 말할 수 없는 화려함을 기록해놓는다. 평자들로부터는 “명백히, 모든 록콘서트 다큐멘터리들 가운데 최고”(폴린 카엘)라는 평가를 들었고, 스코시즈 스스로는 “내가 만든 가장 완벽한 영화”라는 자평을 내린 바 있는 <라스트 왈츠>는, 시네아스트 스코시즈와 문화적 유산의 보전(保全)에 특별한 관심을 가진 자로서 스코시즈의 특성들이 행복한 결합을 이룬 경우라고 말해도 될 것 같다.홍성남/ 영화평론가 gnosis88@yaho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