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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중훈이 안성기에게 털어놓은 할리우드의 진실 [2]

안 | 그러면 배우나 스탭들이 그렇지 않다는 걸 안 게 언제쯤이야?

박 | 좀 걸렸어요. 탱고 삼개월 동안 매일 연습하고, 매일 영어대사 연습하고. 일주일 동안 지나가는 거 한번 찍고 가고. 카메라를 거울처럼 보다가 도대체 카메라 구경을 못하겠는 거야. (웃음) 또 팀 로빈스, 댄디 뉴튼, 마크 월버그에 프러듀서까지 불러놓고 대사를 내가 할 부분만 시켜요. 안 떨려요 한국 돌아가기도 그렇고. 뛰어내려야 하나 어쩌나. 삼개월 지나서 대사하는 장면을 찍었죠. 처음으로 바스트숏을 받아본 거죠. 그날 촬영 뒤 드미가 날 꽉 껴안는 거예요. “지구 반 바퀴를 날아와서 나를 도와줘서 너무 고맙다”면서. 그리고 마크 월버그하고 뛰는 신, 격투신, 찍고 나니까 이제 ‘아, 이놈이 노는구나’ 하는 거죠. 편집 때 잘렸지만 내가 공동묘지에서 우는 장면이 원래 없었는데 추가됐어요. 없던 게 생겼으니, 얼마나 좋았겠어요. 그래서 내가 드미에게 “나는 너를 참 위대한 감독으로 생각한다, 이렇게 판단력이 좋은 감독이라니” 하면서 능청을 한번 떨었거든요. 그랬더니 그가 “너한테 줄 선물이 하나 있다”는 거예요. 너 지금 이 표정으로 피흘리면서 마지막 장면에서 윙크 한번 해라, 그러는 거예요.

안 | 그래서 그걸 했구나. 그런데 궁금한 게, 할리우드 사람들도 시간이 조금만 지나면 그 사람이 어떤지 알게 되지 않나 ?

박 | 알죠. 그런데 굉장히 잔인한 면이 있어요. 할리우드가 얼마나 파워게임이냐 하면, 나는 팀 로빈스 일정을 봐야 내 촬영분을 알 수 있었어요. 그 사람은 열흘씩 세번, 가족하고 파리에 놀러와서는 자기 촬영분 쭉 찍고 가는 거예요. 그러니까 팀 로빈스 오면 그와 함께 출연할 내 부분도 찍겠구나 하는 거죠. 배우가 1급인데, 감독이 싸구려다, 그러면 모든 일정은 배우 중심이 되고 반대이면 감독 중심이고. 톰 크루즈 주연,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 조지 루카스 제작 이러면 팽팽해지는 거고. 구조가 그렇게 되어 있어요. 그렇지 않으면 안 돌아가고.

로버트 드 니로냐, 해리슨 포드냐

박 | 안 선배님, 제가 후배로서 뵈면 그때나 지금이나 성품 자체가 수성적이랄까, 비공격적이랄까, 매너리즘이라는 뜻과는 다르게 안정적이에요. 삶도 그렇고. 그런데 저는 좀 공격적이에요. 도전에서 위안을 얻는 편이에요. 그러다보니 제가 좀 덜 편안한 게 있어요. 안성기 선배님하고 비교한다면 더욱더. 그러나 이게 지금까지 저를 지킨 힘이기도 해요. 어느 스타일이 우월하다 아니다, 생각할 순 없는 거고. 그나마 선배님이 계시니까 제가 안정될 수 있었던 거죠.

안 | 박중훈씨는 사실은 연기로 즐겁게 해주는 걸 잘해왔는데, 아쉬움이라면 너무 많이 자기 걸 풀어놨어. 나중에 먹을 걸 좀 저축해놨어야 하는데. 내가 자주 하는 표현으로, 영화가 어떤 선을 그어놓았다고 쳐요. 어떤 톤을. 그럼 나도 그 영화의 선을 잡아놓는다고. 항상 그 선상을 밟고 있어야 하는데, 만약 너무 밑으로만, 위로만 가 있다 그러면 위험하다고 보는 거지. 근데 박중훈씨 같은 경우는 자꾸 밑으로만 내려갈 때가 있거든. <할렐루야> 때처럼 너무 막 가는 거. 자신이 자신을 조금 더 아껴 썼으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드는 거지. 물론, 지금도 나는 코미디라는 장르에서 박중훈씨의 힘은 아주 크고, 앞으로도 계발할 여지가 아주 많다고 생각해. 여러 가지 스타일이 있을 거야. 그래서 내가 한때 그런 말 한 적 있잖아. 살을 좀 찌워라. 왜냐하면, 나하고 반대로 은근히 살이 붙는 스타일인데 노력해서 빼잖아. 오히려 자연스럽게 살을 좀 찌우되, 근육도 같이 키우고. 외국에 보면 그런 배우들 많거든. 진 해크먼 얼마나 매력있어. 통통하지만 힘이 있거든. 그러면서 또 다른 이미지로 코미디도 하고.

박 | 이성재처럼요? 하지만 작품이 있어야지, 찌워놓고 기다릴 순 없잖아요.(웃음)

안성기가 기억하기를...

#1. 이 녀석 참 재미있다. 그 답답한 청바지가 그렇게 좋을까. 매번 톡() 튀어나오게 꽉 끼는 청바지를 입고 유쾌한 표정을 지으며 돌아다닌다. 게다가, 어디서 배웠는지 말론 브랜도 흉내까지 끝내주게 낼 줄 안다.

#2. 이 녀석 당돌하다. “형님, 오늘 촬영 몇시에 끝날 것 같으세요 제가 한번 맞혀볼까요” 영화에서는 형과 동생처럼, 영화 바깥에서는 선생과 제자처럼 만났던 영화, <칠수와 만수>. 옥상에 올라 나란히 앉아 있을 때 이렇게 농담을 걸었다고 하는데, 사실 잘 기억은 나지 않는다. 대신에, 매사에 따지기 좋아하는 걸 보고 있노라면, 그 당돌함으로 뭔가 하나 할 것 같은 예감을 주었다. 그리고 기어이, 한국 코미디영화의 독보적인 존재가 되었다.

#3. 이 녀석 욕심도 많다. 그런데 그 욕심쟁이의 표정이 그리 미워 보이지 않는다. 이유가 있다. 아마 자기는 그 많은 욕심을 아무도 보지 못하도록 잘 숨겨놓았다고 생각하는 모양이다. 하지만, 땅에 머리 박은 꿩이 제 머리 보겠는가 딴 사람은 다 보이는 것을. 아마도 그런 걸 보면, 일에 대한 열정만큼이나 큰 순수함을 지니고 있음이 분명하다.

#4. 이 녀석 왜 이리 상복이 없을까 아니, 따지고 들면 그리 못 받은 상도 아니다. 하지만 그렇게 생각했던 것 같다. 사실 그 옛날의 상패란 세월이 주는 훈장이었다. 나이가 들어 선배가 되고, 받을 때가 되면 받아야 하지 않겠는가, 정도의. 세종문화회관이었다. 무대 뒤로 갔더니 울고 있었다. 분명히 <우묵배미의 사랑>으로 상 하나쯤은 탈 거라고 기대하고 있었을 것이다. 그만큼 잘하기도 했다. 괜찮어, 앞으로 상 받을 기회 많으니까라고 도닥거려주었다. 그런데 정말 그렇게 됐다. 요새는 오히려 상이 공평해져서 기회가 잘 안 온다고 불평을 한다.

#5. 이 녀석. 지금도 이렇게 이 녀석이라고 불러도 되는 걸까? 마치 바깥에 내놓은 친막내동생 같더니, 애 하나둘 낳으면서 진정한 의미의 어른이 되었다. 이제는 애들 크는 얘기를 같이 나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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