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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내 인생 <라운드 미드나잇>
2003-01-23

홍성남의 DVD파일

Round Midnight, 1986년감독 베르트랑 타베르니에출연 덱스터 고든, 프랑수아 클뤼제자막 영어, 한국어, 베이징어화면포맷 2.35:1 와이드 스크린오디오 돌비 디지털 5.1출시사 워너브러더스

“재즈는 내게 자유의 의미를 가르쳐주었다.” 일찍이 미국영화에 대한 저서를 썼고 미국의 남부에 대한 다큐멘터리(로버트 패리시와 공동 연출한 83년작 <미시시피 블루스>)에 손을 대기도 했던 프랑스의 영화감독 베르트랑 타베르니에는 가장 매혹적인 미국 문화 가운데 하나인 재즈에도 대단한 열정을 가진 인물이다. 그런 그가 재즈에 대한 사랑을 영화를 통해 고백하지 않을 수 없었으니 그 애정의 산물로 나온 것이 바로 <라운드 미드나잇>이었다. 이건 또 다른 재즈광인 클린트 이스트우드가 <버드>(1988)를 가지고 재즈에 대한 자신의 애정 고백을 한 것과 다르지 않은 것이다.

앞에서 이스트우드 이야기를 했는데, 사실 그는 타베르니에가 <라운드 미드나잇>를 만드는 데 전혀 관련이 없는 인물은 아니었다. 그는 워너브러더스사에 타베르니의 재즈영화를 만드는 데 참여하도록 적극 권유를 했던 것이다. 이 영화가 만들어질 수 있도록 관여한 또 다른 미국인들로는 어윈 윙클러와 마틴 스코시즈가 있었다(영화엔 스코시즈가 말 많은 뉴욕의 클럽 주인으로 잠깐 출연한다). 이들은 파리에서 타베르니에를 만날 기회가 있었는데 이때 타베르니에로부터 재즈영화를 만들고 싶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이때 타베르니에의 프로젝트에 관심에 보인 윙클러는 결국 <라운드 미드나잇>의 제작자로 참여하게 되었다.

여하튼 프랑스인 영화감독이 만드는 미국 문화에 대한 영화인 만큼 <라운드 미드나잇>은 미국과 프랑스의 공유가 가능한 어느 지점에서 이야기를 풀어나간다. 황혼기에 접어든 전설적인 테너 색소폰 연주자 데일 터너(덱스터 고든)는 최소한 ‘싸늘한 시선’은 없지 않겠냐는 생각에 파리로 떠날 결심을 한다. 알코올 중독에 빠져 있는 이 ‘파리의 미국인’은 클럽에서 연주할 때만 온전하지 그외 다른 때엔 몸이 거의 무너져 있다고 할 만한 상태이다. 그럼에도 그는 주위 사람들의 만류와 제지를 피해 어떻게든 술을 마시려 한다. 한편 파리에는 이런 데일을 끔찍이도 추앙하는 프랑시스(프랑수아 클뤼제)라는 남자가 있다. 그는 데일의 연주를 듣고 싶어도 클럽에 들어갈 입장료가 없어 클럽 바깥에 쪼그리고 앉은 채 창을 통해 새어나오는 음악을 들으며 만족할 정도로 데일의 음악에 흠뻑 매료되어 있다. 결국 데일과 프랑시스는 대면을 하고 또 친구 사이가 되기에 이른다. 그리고 데일은 프랑시스의 ‘보살핌’ 아래 활력을 찾아간다.

기본적으로 <라운드 미드나잇>은 쇠락에 바짝 다가간 미국인 재즈연주자와 그를 존경하고 또 그로부터 예술적 영감을 받고 싶어하는 프랑스인 사이의 우정을 그리는 영화다(이 이야기는 뉴욕 출신 피아니스트인 버드 파웰과 그를 동경했던 프랑스인 아마추어 음악가 프랑시스 포드라 사이의 관계에 느슨하게 기초해 만들어진 것이다). 그런데 단순히 ‘우정’이라고만 표현하면 이 두 사람의 관계를 묘사하는 데 그리 충분하지가 않다. 어떤 면에서 그 스스로도 예술가인 프랑시스에게 데일은 사기를 북돋워줄 수 있는 아버지 같은 존재, 아니면 스승 같은 존재처럼 보이기도 한다. 그러나 이 유사 부자관계 혹은 사제관계에서 무언가 구체적인 도움을 받는 쪽은 연장자인 데일이다. 데일이 술을 끊게 되고 음악적 재기에 다가가는 것은 프랑시스의 도움없이는 불가능한 일이었다. 다른 한편으로 영화는 이 두 주인공이 유사한 부류에 속한 인물은 아닌가, 하고 슬며시 제시하기도 한다. 사랑에 서툰 남자라는 점에서, 그리고 제대로 돌보지 못하는 딸을 가진 아버지라는 점에서 둘은 포개진다. <라운드 미드나잇>은 그렇게 데일과 프랑시스라는 서로 보완적이면서도 유사한 두 예술가의 초상을 그리며 두 사람의 관계 외에도 그들의 정서적인 고통이나 공허에의 두려움도 담는다. 그러나 영화는 그것들을 담아내긴 하되 다소 거리를 두고 바라보는 탓에 그것들 속으로 결코 깊숙이 들어간다고 볼 수는 없다. 그저 그런 극적 요소들을 음악에 실어 흘러보낸다고 표현하는 게 나을지도 모르겠다.

내러티브를 가진 영화로서 <라운드 미드나잇>은 그리 농밀한 체험을 주거나 꽉 찬 듯한 느낌을 주는 영화가 못되지만 음악을 들려주는 영화, 음악에 대한 영화로서 <라운드 미드나잇>은 보는 이의 귀를 즐겁게 해주고도 남을 만한 영화다. 주연을 맡은 테너 색소폰의 거장 덱스터 고든을 비롯해 뮤지션들이 연기가 아닌 실제 연주를 자주 들려주는 이 영화는 그 아름다운 재즈 음악만 듣고 있어도 풍만감을 느끼게 해준다. 영화 속 한 장면에서 데일은 “음악이 나의 인생이고 음악이 내 사랑입니다”라고 말한다. 그런 사람에 대한 영화로서 <라운드 미드나잇>은 충분히 볼 만한 영화다. 홍성남/ 영화평론가 gnosis88@yaho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