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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연휴 만끽할 DVD,만화,TV 가이드 [5]
2003-01-30

설특식 만화

<재팬>(대원씨아이 펴냄)

미우라 겐타로(三浦建太郞)1966년생왕랑(1989)베르세르크(1989)왕랑전(1990)재팬(1992)

최근 몇년간 논쟁의 중심이 되어온 문제작 <베르세르크>의 위용은 미우라 겐타로의 존재감을 한국 내에도 널리 알리기에 충분했다. 선악 불명의 광포한 세계 속에서 운명에 맞선 잘난 남자들의 싸움은 탐미적인 화풍, 기괴한 피조물, 파격적인 세계관을 펼치며 다양한 반응들을 이끌어왔다. 여성비하, 폭력적인 강간 등 만화 깊숙이 내재된 근원적인 남성 중심성은 여러 비판을 촉발시키기도 했는데, <베르세르크> 바깥의 작품을 읽어보면 미우라 겐타로 세계의 부정적 본질이 어디에 있는지 알게 된다.

<재팬>이라는 작품은 1권이라는 비교적 짧은 분량으로 미우라 겐타로의 불순한 생각의 진면목을 파악하게 한다. 1991년 스페인의 바르셀로나에 있던 일군의 일본인들이 초자연적인 상황에 처하게 된다. 그들은 아름다운 여성 리포터와 그를 사모하여 쫓아온 야쿠자, 그리고 네명의 잘난 척하는 대학생들로, 세계 경제와 일본의 존재에 대해 다소 관념적인 대화를 나누다가 갑작스런 지진으로 땅 밑으로 떨어진다. 그곳은 파국 이후의 세계, 최소한 2031년 이후의 미래였다. 가혹한 폭력만이 지배하는 세계, 일본인들은 난민으로 겨우 목숨을 부지하고 있는 이때, 문제의 해결은 누가 어떻게 이루어낼 것인가

간단하다. 그전까지는 바보처럼만 보이던 야쿠자가 자신의 힘을 바탕으로 주변 사람들을 결속하고, 폭력의 이민족들과 맞서 싸운다. 그의 위력을 깨달은 여자는 스스로 방에 찾아와 옷을 벗고, 바보 같던 젊은이들도 야쿠자가 설파하는 힘의 원리에 동조하고 신국가 ‘재팬’의 탄생에 함께한다. 막연히 거부감을 느낄 만한 이야기지만, 그래도 그 논리가 흐르는 과정을 바라보는 것은 흥미롭다. 그것은 이현세의 <남벌>이 남성성의 강물을 통해 국수주의의 호수로 고여 들어가는 과정과도 매우 흡사하다.

<벽>(세주문화 펴냄)

허영만 1947년생각시탈 시리즈무당거미 시리즈카멜레온의 시(1986)오 한강(1988)아스팔트 사나이(1991)비트(1994)사랑해(1999)타짜(2000)

우리 만화계에서 허영만만큼 넓은 영역의 소재를 다루어온 만화가를 찾기란 쉽지 않을 것이다. 항상 치밀한 조사와 현장 취재를 생명으로 한 만화가이니만큼 어떤 작품을 보더라도 단순한 감동 이상의 지식과 깨달음을 얻게 해준다. <무당 거미> <오 한강> <비트> <타짜> 등 그의 굵직굵직한 작품 목록에 끼어들기는 힘들겠지만, 그래도 이 작품 <벽>도 결코 만만히 볼 작품이 아니다.

<벽>은 <닭목을 비틀면 새벽은 안 온다>와 더불어 정치극화의 시대를 연 작품으로, <오 한강>의 뒷시대 정도인 1980년대 이후 한국사회의 정치적, 경제적 현실을 신석기라는 청년 주인공을 통해 그리고 있다. 이야기는 1980년의 봄으로부터 시작된다. 대재벌의 막내 손자인 신석기는 돈과 여자에 둘러싸인 채 현실 바깥에 부유하는 존재이다. 사랑하는 여자 때문에 광주 민주화항쟁의 현장을 보게 되지만, 그것도 그의 인생관을 완전히 바꾸진 못한다. 그는 그 여자에 대한 연민의 감정으로 더욱 타락에 빠지게 될 뿐이다. 타인의 고통에 무감하던 그는 어느 날 납치범에 의해 잡혀가는데, 냉혹한 할아버지 때문에 손가락이 잘리고 겨우 살아나게 된다. 자신을 가장 잘 이해해주던 인간적인 삼촌이 교통사고 이후 가장 비열한 경영자가 되고, 그는 이제 존재의 결단에 처할 수밖에 없다.

그 시절의 신문 정치면과 사회면에서도 볼 수 없었던 기괴한 사건들이 이어지지만, 그것들이 전혀 터무니없이 여겨지지는 않는다. 만화적 과장이 없지는 않지만, 충분한 개연성을 가지는 것. <벽>은 허영만의 많은 미덕을 보여주는 작품이다. 비록 작품 후반부에 지나치게 개인의 능력을 강조하는 기업만화로의 변질이 보이지만 초반의 힘은 매우 단단하다.

<알게 뭐야>(서울문화사 펴냄)

황미나 1961년생이오니아의 푸른 별(1980)아뉴스데이(1982)안녕! 미스터 블랙(1983)우리는 길잃은 작은 새를 보았다(1985)무영여객(1991)

황미나는 명실상부한 한국 여성 만화계의 대부로 그 작품의 목록을 들여다보는 것만으로도 가슴이 벅찰 때가 많다. 그중에는 <아뉴스데이> <안녕! 미스터 블랙> <레드문> 등 순정만화의 본령이라고 할 만한 것들도 있지만, <취접냉월> <슈퍼 트리오> 등 만화가 본연의 독특한 관심과 생활적인 감성을 드러낸 개그 작품들도 적지 않게 들어가 있다. 이러한 작업들을 통해 황미나는 무시 못할 남성 독자군을 넓혀왔는데, <알게 뭐야>는 황미나표 소년만화라는 독특한 세계를 보여준다.

무술 도장을 운영하는 아버지와 단둘이 살아가는 소년 끝동이는 어느 날부터 기묘한 환상을 보게 되고, 그로 인해 뜻밖의 사건들과 마주친다. 식탁에서 밥을 먹다 ‘비행 청소년’이라는 말을 생각했더니 이상한 물고기가 날아다니는 공중으로 떨어지게 되고, 방바닥에서 나오는 괴상한 소리에 이끌려 이상한 나라로 날아가게 된다.

어찌 보면 평범한 소년이 신비의 목소리에 이끌려 자기 출생의 비밀을 알게 되고, 자기 속에 내재된 초능력을 발휘하여 인류를 지킬 용사로 나서게 된다는 <바벨 2세>류의 소년 판타지의 전통을 이어받은 듯도 하다. 그러나 황미나의 소년만화 서정은 훨씬 토착적이고 구수하며 황당무계하다. 이상한 세계로 날아간 끝동이가 먼저 맞닥뜨리는 것은 여자처럼 불룩 튀어나온 가슴, 그리고 팬티 속에 응당 있어야 할 것이 사라져버렸다는 트렌스젠더의 공포감이다. 게다가 메주마 등의 괴상한 생명체들이 줄지어 나오고, <취접냉월>풍의 황미나식 무협 영웅들이 등장하기도 한다. 진지하기 그지없는 여성 만화 정통의 세계, 그리고 한국의 만화가들을 억누르는 권위에 지겨워진 그녀 스스로 마음껏 탈출해보고 싶었던 결과인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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