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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저그런 정치영화 <컨텐더>가 제공하는 즐거움
2003-02-04

정치인은 모두,욕망의 동물

<컨텐더>는 미국 정치라는 것이 요즘 진행되는 대통령선거운동(이 글은 2000년에 쓰여졌다- 역자)만큼이나 웃음이 날 정도로 끔찍한 무엇이라는 로드 루리의 깨달음에서 비롯된 작품이긴 하지만 이를 보고 놀랄 사람은 별로 없을 것이다. 지난 8년간 빌 클린턴이 오락의 정치를 새로운 수준으로 올려놓았음은 자명한 일인 것 같다. 할리우드는 대통령의 이런 메시지를 일찌감치 알아채고 접수해 말랑말랑한 이슈의 대통령 영화 몇편을 60년대 작품들보다 훨씬 더 큰 규모를 택하되 덜 비극적으로 만들어 클린턴 정부에게 화답한 바 있다.

그리고 <컨텐더>는 이런 일련의 대통령 영화들 중에서도 정점에 있다고 볼 수 있는데, 이전 작품들보다 무엇 하나 나은 데가 있어서도 아니고 클린턴적인 스캔들 이슈들을 선거라는 기간에 딱 맞춰 시의적절하게 다루었기 때문도 아니며, 가십 수준의 대낮 TV방송과 함께 자라난 정치영화라는 것이 어디까지 와 있는가 현주소를 보여준다는 점 때문이다.

우아함이라곤 찾아볼 수 없는 각본과 양심이라곤 찾아볼 수 없는 플롯은 이 영화가 제공하는 즐거움의 일부다. 전 연예지 기자였던 루리는 <대통령의 음모(All the President’s Men)>를 자기가 꼽는 최고의 영화로 올린 바 있다. 하지만 <컨텐더>는 워터게이트 사건 이래 정립된, 워싱턴이란 더럽고 비굴한 야망들의 하수구라는 개념을 받아들이는 한편, 비밀스런 범죄를 숨긴 야심있는 정치인들을 다룬 영화들을 답습한다. 그러고는 여기에 <필사의 추적> <후보자> <에어포스 원> 등과 함께, 클레런스 토마스의 청문회 그리고 무엇보다 클린턴의 고발과 탄핵소동을 섞어넣는다. 루리는 미국정치라는 것이 민주주의보다는 권력과 인구통계의 문제라고 이해한다. 그의 첫 장편 <Deterrence>는 선거로 뽑히지 않은 유대계 대통령을 소재로 했으며 <컨텐더>는 선거로 뽑히지 않은 미국 최초 여성 부통령을 소재로 삼는다.

이 역사적 사건은 미디어가 미국인들 사이에 주입해넣은, ‘타블로이드 쓰레기에 대한 도저히 채워지지 않는 대중의 목마름’에 힘입어, 더욱 문제들을 만들어낸다. 그녀는 과거 어린 시절 벌였다는 섹스파티 때문에 악몽과 같은 시간을 맞게 된 것이다. 그것은 범죄는 아니지만, 그녀의 부통령 자격 인준 청문회는 온통 섹스에 관한 이야기로 가득할 것임을 보증해주는 것이다. 영화 속 한 인물의 표현대로, “미국인이 소화할 수 없는 것 단 한 가지가 있다면 그것은 입 안 가득히 성기를 물고 있는 부통령”인 것이다.

<컨텐더>는 정치인들이 모두 욕망의 동물들이라는 점에 대한 영화다. 잭슨 에번스 대통령(제프 브리지스)은 담배를 피우고 즐거이 손을 내미는 클린턴스런 떠버리로서, 탐식이라는 정신적 기벽을 가지고 있는 자다. 그의 부통령 지명자인 상원의원 레이니 핸슨(정장을 차려입고 결연한 표정을 짓고 있는 조앤 앨런. 루리는 그녀를 염두에 두고 이 캐릭터를 만들었다 한다)이 남편과 사무실 책상에서 섹스를 하다가 소개된다. 그들의 정적인 공화당원 셀리 루넌(게리 올드먼, 가발로 변신에 멋지게 성공해 도저히 알아볼 수가 없다)은 파괴적 본능이랄까 건강하지 못한 야심을 가진 자로서, 그의 공격욕구는 피가 밴 스테이크를 자르는 장면에서 여러 번 암시된다.

‘성적 욕망 가득한 레이니’란 곧 자유주의, 낙태, 반차별법 등과 연결되기 때문에 그녀는 광대한 우익의 음모의 표적이 된다. 그녀는 힐러리가 되는 것이다. “저년 뱃속을 갈라야 돼!” 그녀 과거에 대한 폭로가 인터넷에 등장하기 전에도 이런 주장이 외쳐진다(앨런이 전에 닉슨 부인 역할을 연기한 것도 괜한 것이 아니었나보다). 상황을 파악한 대통령은 “세상은 당신을 골때리는 쓰레기 TV드라마 등장인물 정도로 취급하고 있소”라고 경고하고는 클린턴을 본받아 대국민 고백을 할 것을 권고한다. 하지만 그것은 루리의 게임풀기 방식이 아니다. 쪽팔림을 무릅쓰라는 대통령의 권고가 있자 루리는 자기 스스로가 그 조언을 받아들인다. 기세좋게 시작했던 영화는 뒤로 가면서 꼬리를 내린다. <컨텐더>는 스스로에 대한 공격, 아니 혹은 방어다. 그의 여주인공이 국회에서 비(非)미국인적인 행동들과 섹슈얼 매카시즘, 그리고 “여성에 대한 이데올로기적 강간”에 대해 정당하게 고발하고 외칠 수 있는 상황을 만들어놓고도 제대로 파고들지 못한다. 루리는 스스로의 드라마투르기적 필요에 의해, 그들의 이중잣대를 비난하는 척하다가 뭉뚱그려버릴 따름이다.

<컨텐더>(경쟁자)라는 제목은 주로, 열연을 한 조앤 앨런의 오스카 수상 가능성에 대한 표현 같다. 그래서 안 될 게 뭐 있겠는가 영화는 별 건질 것 없지만, 배우에게는 넓은 운신의 폭을 제공해 조앤 앨런은 빌을 자신의 모니카로 훌륭히 연기해냈고 워싱턴의 하수구로부터 만족스러우리만치 안 더렵혀진 채 우뚝 솟았다. 짐 호버먼/ 영화평론가 <빌리지 보이스>

* (<빌리지 보이스> 2000. 10.17. 짐 호버먼은 미국 영화평단에서 대안영화의 옹호자로 가장 명망이 높은 평론가로 <빌리지 보이스>에 기고하고 있습니다. <씨네21>과 <빌리지 보이스>는 기사교류 관계에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