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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를린] 범죄, 교회의 이름으로

독일 제2공영방송 가 만든 종교재판 다큐 3부작 <비밀의 종교재판>

벼락처럼 머리에 내려꽂히는 무시무시한 단어, 종교재판. 위노나 라이더와 대니얼 데이 루이스가 주연한 <크루서블>이나 숀 코너리의 <장미의 이름>을 굳이 떠올리지 않아도 ‘종교재판’은 참혹한 고문, 화염 속에 쌓인 희생자의 절규 등 피비린내 절절한 잔혹함을 연상시킨다. 잔인했던 중세 기독교의 치부. 악마를 쫓다가 스스로 악마가 되어버린 신부들…. 혹시 아시는지 아직도 종교재판이 이어져오고 있다는 사실을.교회 잔혹사와 관련된 서류들을 극비로 보관해오고 있다는 점에서 바티칸 교황청은 여느 나라 정보기관에 뒤지지 않는다. 그러나 그 직위(신앙추기경회 수장)로 인해 현대판 종교 재판관으로 불리는 요제프 라칭거 추기경은 1542년 교황 바오로 3세의 칙령으로 시작된 종교재판과 관련된 서류들을 1998년 몇몇 학자들에게 제한적으로 공개했다. 450년 이상 베일에 쌓여 있던 잔혹한 비밀이 드러나자 많은 영화제작자들은 그 속에 묻혀 있을 비극적 인생들을 영화화하고 싶어 군침을 흘렸으나 바티칸 종교재판의 영화화라는 영광은 베를린의 치글러영화사에 돌아갔다.

사상 초유로 바티칸 아카이브 촬영 허가를 받아낸 치글러영화사는 감독 얀 페터와 시나리오 작가 유리 빈터베르크에게 <비밀의 종교재판> 3부작 다큐멘터리 제작을 맡겼으며, 총 250만달러를 투입했다. 이 작품은 지난 1월12일부터 매주 일요일 독일 제2공영방송 <ZDF>를 통해 방영되었다.1부와 2부는 기록영화에 극영화를 혼합한 스타일을 따른다. 1부에서는 철학자 지오르다노 부르노의 화형장면이, 이어진 2부에서는 “그래도 지구는 둥글다”고 주장한 갈릴레오 갈릴레이의 종교재판이 재연된다. 그러나 <비밀의 종교재판>의 초점은 희생자들이 아닌 가해자들에게 맞춰져 있으니, 부르노를 화형시킨 안토니오 산토리 추기경이나 개혁적 교황으로 역사에 남은 베네딕트 14세 역에 디이터 만, 실베스터 그로트 등 스타급 배우들을 기용한 것만 봐도 그런 의도는 명백히 드러난다.

페터 감독은 극영화 형식 도입으로 반감될 수 있는 리얼리티를 보완하기 위해 종교재판 연구로 명망 높은 홀랜드 신학자 페터 고트만의 코멘트를 곁들이는 전략을 구사하기도 했다.그런데 작품에 나타난 바티칸의 종교재판은 일반적인 이미지와 달리 상당히 관대하고 심지어 인간적으로까지 보인다. 긍정적 시각을 전제로 촬영 허가를 받은 게 아닌가 의심이 들 정도. 하지만 바티칸의 종교재판이 스페인이나 독일의 종교재판에 비해 매우 관대했었다는 사실은 역사적으로도 증명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검은 거래의 의혹이 가시지 않는 것은 이런 차이를 전달하는 데 실패한 감독의 책임이다. 게다가 극영화 형식을 도입한 1, 2부와는 달리 현대판 종교재판관들의 인터뷰로 구성된 3부는 객관적 기록영화의 형식을 따르고 있어 앞선 두편과 연관성을 찾기 힘들다. 그러나 전체적으로 보아 3부의 이런 생뚱맞음은 오히려 장점으로 작용하고 있으니, 배우의 흉내내기를 통한 가짜 고뇌가 아닌, 당사자들의 괴로운 표정을 지켜보고 있노라면, 거대한 시대정신에 밀려 결백한 인간들 발치에 불을 놓아야 했던 중세 성직자들의 인간적 갈등이 수백년을 가로질러 전달되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