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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샹그릴라

샹그릴라로 떠나기 전에 나는 영화 <샹그릴라>를 보고 싶었다. 동네 ‘으뜸과 버금’에 알아보니 마침 소장비디오 목록에 나와 있다 한다. 하지만 그건 40년대 흑백영화 <샹그릴라>가 아니라 이름만 딴 유사품이었다. 말하자면 ‘생활의 발정’, ‘모텔 성인장’인 셈이다. 인터넷 검색사이트에 ‘샹그릴라’를 치니 자료가 무진장 뜨는데 대개가 ‘샹그릴라 호텔’들이다. 필리핀, 인도네시아, 중국, 피지…. 태평양 연안의 휴양지들엔 샹그릴라 호텔 하나쯤은 다 있다.

‘에이, 지겨운 가짜들!’ 하면서 나는 중국행 비행기에 올랐다. 영국 작가 제임스 힐튼의 1933년작 <잃어버린 지평선>은 “설산 협곡에 금빛 찬란한 건축물과 신비스런 절이 있으며, 조용한 호수와 대초원이 있다”고 했지. 우리의 여행코스에는, 일명 샹그릴라인 중티엔(中甸)과 옥룡설산(玉龍雪山)과 그 계곡 호도협(虎渡峽)이 있었다. 이제, 풍광이 아름답고, 100살 노인들이 지천이며, 문명화된 공동체가 건설됐었다는 그곳을 직접 보고 ‘정체를 파악’하는 일만 남았다.

하지만 윈난성(雲南省) 수도 쿤밍(昆明)에 도착한 나는 간단한 현지조사로 이미 뭔가 좀 잘못돼간다고 느꼈다. 설산의 협곡만 가면 되겠지 했더니, 윈난성에만도 설산이 스무개쯤 있었다. 해발 5000m가 넘어 봉우리에 만년설이 있으면 다 설산이다. 설산의 협곡, 이건 거의 남산의 김 서방 찾기였다.

해발 3300m의 중티엔공항에 내렸을 때 아침녘의 고산도시는 매우 인상적이었다. 깎아지른 산들이 병풍처럼 둘러쳐진 가운데, 드넓은 평원에는 지붕이 납작한 티베트족의 집들이 엎드려 있고, 그 위로 엷은 운무가 흐르고 있었다. “그런데, 어디가 샹그릴라라는 거지요?” 하고 물었더니 가이드는 “여기가 다 샹그릴라예요”라고 대답한다. 중티엔은 행정지명이 아예 香格里拉(샹그릴라)로 돼 있다. 지난 97년, 중국 정부는 소설 속의 샹그릴라는 중티엔서 북쪽으로 좀 떨어진 더친(德欽)이라고 발표했다 한다. 하지만 우리 일행엔 중국 정부의 발표를 우습게 아는 분위기가 대세다. “소설로 보면 샹그릴라는 그냥 티베트 어딘가야.” “중국 정부가 약았어. 떠돌아다니는 샹그릴라를 갖다가 자기네 오지관광 홍보에 써먹은 거지.”

중티엔은 시가지만 벗어나면 바로 <황토지>의 무대다. 벌겋고 황량한 산등성이 민가에서 소녀가 오전 나절 물 길러 강으로 내려갔다가 오후 나절 물지게를 지고 돌아오는 그런 오지다. 고산지대로 들어가면서 나는 생수통을 옆에 끼고 연신 물을 마시며 심호흡을 했다. 하지만 고산증을 예방했다고 자만한 나는 해발 3900m에서 팔랑거리는 걸음으로 트래킹을 하다가 급기야 산소통 신세를 지고 말았다.

하지만 희박한 공기만큼이나 괴로운 건, 화장실이었다. 중국의 화장실은 설계상의 ‘개방성’으로 인해 이미 세계적으로 유명하지만, 오지로 가면 관광지의 공중화장실도 그 관리에 있어서의 자유분방함은 상상을 초월한다. <트레인스포팅>에 나오는 ‘스코틀랜드에서 가장 지저분한 화장실’은 어서 꼬리를 내리도록! 우리 일행들은 모두 소식이 오면 산비탈로 올라갔다. 고산증으로 머리도 어지럽고 뱃속도 뒤틀린 나는 급해진 나머지 일행 중의 한 젊은 남자에게 망을 봐달라 하고는 공중변소 뒤로 돌아가서 일을 보았다.

중티엔에 갔더니 어디나 다 샹그릴라였지만 정작 샹그릴라를 찾을 수 없었다. 내 결론은 그게 소설적 허구였다는 것이다. 작가가 외교관 시절 비행기 납치를 당하는 바람에 윈난성의 더친에서 한동안 살았다 하니 그 어떤 곳이 소설의 무대가 되기는 했겠다. 하지만 작가도 전운이 감도는 유럽사회 속에서 문명에 대한 불만이 목구멍에 차오르고 현대라는 정체불명의 트렌드에 적응곤란을 느끼는 한명의 지식인이었을지 모른다. 잃어버린 이상향에 대한 미련을 샹그릴라라는 이름에 투사했던 건지도. 물론, 그런 허구에 속아넘어가는 걸 바라보는 것이 소설가의 악취미다. 내가 소설에 ‘눌라치타’라는 가공의 유토피아를 그렸더니, 소설 초고부터 단행본까지 몇 차례나 읽은 친구가 어느 날 ‘이탈리아에 출장 가는데 눌라치타를 어떻게 가면 되냐’고 물어서 내게 뜻하지 않은 보람과 쾌감을 선사한 적 있다.

여행지에서 주워온 돌멩이처럼 내 기억에 남겨진 기념품은 이런 것이었다. ‘쾌적한 환경에서 생리현상을 해결할 수 있으면 그곳이 샹그릴라지.’ 한 가지 덧붙여도 좋다면, ‘산소가 충분한 공기’ 정도라고 할까. 조선희/ 소설가 전 <씨네21> 편집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