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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브웨이] 배우들의 외모변장의 이모저모
김현정 2003-02-20

당신의 눈을 의심하라?

<엔터테인먼트 위클리>는 “당신의 눈을 믿지 못할 것”이라는 제목으로 <디 아워스>의 니콜 키드먼을 소개했다. 아무렇게나 틀어올린 잿빛 머리카락, 깊은 불안을 품은 눈동자, 그리고 생각 많아 보이는 길쭉한 코. 세 여인의 하루가 교차하는 <디 아워스>에서 작가 버지니아 울프를 연기한 니콜 키드먼은 울프의 초상화를 그대로 옮겨놓은 것처럼 달라진 외모로 등장해 찬사를 받았다. 그러나 아카데미 여우주연상 후보에 오른 연기력으로도 인상을 좌우하는 코의 형태는 바꿀 수 없었다. 키드먼은 특수분장의 도움을 받아 결코 아름답다고는 할 수 없는 얼굴이 됐고, 대가를 얻었다. 배우는 자신의 얼굴을 매우 소중히 여기는 경우가 대부분이지만, 키드먼이 이런 대담한 결정을 내린 유일한 배우는 아니다. 가짜 코는 군인이자 시인인 시라노 백작을 연기한 배우들이 필수적으로 택해야 했던 분장. <시라노 드 벨쥬락>의 호세 페레와 <시라노>의 제라르 드 파르디외, <록산느>의 스티브 마틴이 모두 너무 큰 코 때문에 사랑하는 여인 록산느에게 마음을 고백하지 못했던 시라노를 연기하면서 코를 만들어 붙였다.

배우들이 외모까지 바꾸면서 열연하는 경우는 영화 역사의 초창기부터 찾아볼 수 있다. 공포영화의 스타였던 론 채니는 영화에 출연할 때마다 캐릭터에 맞는 분장을 시도해 ‘천의 얼굴을 가진 사나이’라고 불렸다. 그가 가장 인상적인 모습을 보인 영화는 <오페라의 유령>. 채니는 눈이 튀어나오고 해골처럼 구멍만 커다란 코를 가진, 지하에 숨어사는 ‘팬텀’의 얼굴을 자신 위에 덧씌웠다. 이처럼 추해지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는 것은 당당한 미남 로렌스 올리비에도 마찬가지였다. 그는 조카들을 살해했다는 혐의를 받은 난폭한 불구의 왕 리처드 3세를 연기하면서 날마다 세 시간에 걸쳐 분장을 했다. 가짜 코와 가짜 손, 굽은 등, 검은 가발로 불길하고 음산한 인상을 만든 그는 아카데미 남우주연상 후보가 됐지만, <왕과 나>의 율 브린너에게 트로피를 빼앗겼다. <컨트리 걸>의 그레이스 켈리와 <누가 버지니아 울프를 두려워하랴?>의 엘리자베스 테일러, <나의 왼발>의 대니얼 데이 루이스 역시 화장기 없는 얼굴이나 뒤틀린 뇌성마비 장애인의 신체 때문에 아름다운 본모습을 확인하기 힘들었다.

특수분장이 있기는 하지만, 배우들이 자주 택하는 변장의 방법은 체중조절이다. <분노의 주먹>의 로버트 드 니로는 이중에서 가장 유명하다. 그는 62파운드를 불려 스탠드업 코미디언으로 전락한 권투선수 라모타를 연기한 뒤 다시 원래 몸무게로 돌아왔다. 반대로 <캐스트 어웨이>의 톰 행크스는 혼자 무인도에 떨어져 고생하는 나날을 표현하기 위해 몸무게를 50파운드나 줄여야 했다. 덕분에 잠시 젊은 시절의 갸름한 얼굴을 되찾았지만, <캐치 미 이프 유 캔>을 보면 다시 푸근한 아저씨의 모습으로 돌아간 행크스를 확인할 수 있다. 몸무게를 늘려야 하는 배역은 여배우에게 특히 치명타. 그러나 르네 젤위거는 <브리짓 존스의 일기>의 통통한 독신녀 배역을 위해 피자와 흑맥주, 육류, 치즈, 밀크초콜릿을 다량 섭취해 몸무게를 15파운드나 끌어올렸다.

한국 배우들도 배역에 어울리는 외모를 만들어 연기를 완성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설경구는 <공공의 적>의 게으른 형사를 맡은 뒤 먹기만 하고 되도록 움직이지 않으면서 18kg을 늘렸고, 곧이어 <오아시스>의 전과자를 연기할 땐 하루 여섯 시간 트레이닝으로 20kg을 뺐다. 송강호와 신하균은 <복수는 나의 것>에 나란히 출연하면서 살을 뺐다. 송강호가 택한 방법은 무조건 굶기였고, 신하균이 택한 방법은 줄넘기. 두 가지 방법 모두 비슷하게 10kg 감량의 효과를 가져왔다. <좋은 사람 있으면 소개시켜 줘>의 신은경은 다이어트라는 소극적인 방법보다 좀더 과감하게 외모를 바꿨다. 신은경은 중성적인 이미지를 벗고 로맨틱코미디에 어울리는 귀여운 인상을 만들기 위해 덧니를 붙이는 수술을 받았고, 그 사실을 거리낌없이 공표했다. 아름답거나 독특한 외모를 가져야만 배우가 될 수 있는 것은 아니겠지만, 결국 외모도 연기의 일부분인 것 같다.김현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