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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경실과 오프라

‘이경실 사태’ 이후 며칠간 나도 공연히 불안했다. TV 밖의 이경실씨와 일면식도 없는 사이지만, 터무니없게도 불안했다. 이유는 한 가지. 이씨가 “여전히 남편을 사랑한다”라거나 “그래도 아이들 아빤데” 하면서 그냥 참고 살겠다고 할까봐.

오로지 같은 여자라는 인종적 동질성 때문에 과도하게 감정이입해가면서 ‘이경실 사태’를 지켜보니, 침대에 누워 있는 아내에게 야구방망이를 휘두르는 남편도 엽기적이지만, 황색언론이 휘두르는 야구방망이도 만만찮게 엽기적이었다.

‘하이에나 저널리즘’에 스타란 얼마나 탐스런 먹잇감인가. 스타가 잘 나갈 때는 건들지 않는다. 잘 나가는 시절의 사생활은, 보호받는 프라이버시다. 하지만 일단 스캔들에 걸려 넘어지기라도 하면, 그의 프라이버시는 뼈도 못 추린다. 기자들은 150% 취재와 보도의 자유를 누리게 된다. 150%인 것은, 이따금 픽션의 경계까지 침범하기 때문이다. 만일, 결혼을 앞두고 수면제를 과량복용했거나, 바람난 남편이 이혼선언을 했거나, 남편에게 맞아서 병원에 입원했거나, 이런 상황이라면 스타는 자신의 명예를 질풍노도처럼 달려드는 기자들에게 당분간 맡겨두는 수밖에 없다. 그들이 할 수 있는 말은 고작 이 정도다. “무리한 부탁인지는 잘 알지만, 제 명예를 갖고 놀다가 제발 제자리에 갖다놔주세요.”

하이에나 저널리즘에 물어뜯기는 경험이란 악몽일 것이다. 하지만 이경실씨가 악몽을 빨리 털어버리기 바란다. 골반의 골절도, 정서의 골절도 봉합된 뒤에는 그의 커리어 역시 감쪽같이 봉합될 수 있기를 바란다. 그는 다섯개 TV프로그램을 진행했다는데, MC를 교체하지 않고 대타를 기용하면서 그가 퇴원해 돌아올 때까지 기다려준다면, 그 방송사는 대중의 존경과 사랑을 받을 것이다.

비극적인 이미지에 가려서 이제 사람들을 웃길 수 있겠냐고 하는 칼럼들도 보았지만 나는 그런 시각이 못마땅하다. 사생활의 불운함이 반드시 스타성을 훼손하는 것은 아닐 수 있다. 최진실씨 경우도 마찬가지다. 스타는 종이인형이 아니다. 어떤 스타가 보통 사람들에게 있음직한 그런 고통과 비극들을 함께 겪으면서 그것을 극복했을 때 대중으로부터 더 두터운 신뢰와 사랑을 얻을 수 있지 않을까. 그것은 자신들의 마음가짐에 달렸다. 만일 그들이 엔터테이너로서 진정한 프로였다면 해낼 수 있을 것이다.

이 대목에서 나는 오프라 윈프리라는 여자에 관해 이야기하고 싶다. 오프라 윈프리는 지금 미국에서 가장 돈 많고 가장 영향력 있는 여성 가운데 한 사람이다. 그는 16년 동안 롱런해온 토크쇼 <오프라 윈프리 쇼>의 사회자이고, 방송사와 영화사, 출판사 등을 거느린 ‘하포’ 그룹의 주인이기도 하다.

미시시피주의 가난한 흑인 미혼모의 딸로 자라난 그가 한 지방방송의 TV토크쇼를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프로그램으로 만들면서 최고의 스타가 되기까지, 그도 스캔들의 암초 앞에서 여러 차례 침몰 위기를 겪었다. 하지만 아이로니컬하게도 그런 스캔들은 그를 스타덤에서 끌어내리는 게 아니라 오히려 그의 스타성을 공고히하는 데 기여했다.

가령, 그가 토크쇼 진행자로 한창 뜨고 있을 때 그의 이복 여동생이 오프라가 열네살 때 아빠를 모르는 미숙아를 낳았다는 사실을 폭로했다. 이때부터 한동안 오프라의 사생활이 미국의 타블로이드 신문들을 뒤덮었다. 그는 큰 충격과 상처를 받았다. 하지만 그 다음부터 그는 토크쇼에서 훨씬 솔직해졌고 자신이 어렸을 때 친척들에게 성폭행당했다고 고백하기도 했다. 그는 아동학대의 문제에 있어서 가장 적극적인 활동가가 되었고 그가 제안한 아동보호법은 나중에 ‘오프라 법안’이라는 이름으로 미 의회에서 통과됐다.

95년, 그는 마약을 주제로 한 <오프라 윈프리 쇼>에서, 20년 전 한 남자에게 푹 빠져서 그와의 관계를 위해 마약을 복용했다는 고백을 했다. 그는 카메라가 멈추고 광고방송이 나가는 동안 마이크를 내려놓고 울었다. 이런 그를 솔직한 방송인으로 봐주는 시선과 연기 잘하는 배우라고 비꼬는 시선이 있다. 어느 쪽이건 상관없다.

“상처를 지혜로 바꾸어라. 실수는 모든 사람이 한다”라는 말은 평범하고 상투적인 레토릭이다. 하지만 그게 오프라 윈프리가 한 말이라면 다를 것이다.

이경실씨, 그리고 최진실씨. 우리가 TV에서 원하는 건 그저 판타지만은 아니랍니다. 얼굴에 솜털도 덜 벗어진 공주들의 재롱잔치도 신물이 났답니다. 이제, 프로의 엔터테이너로서 당신의 능력을 보여주세요.조선희/ 소설가·전 <씨네21> 편집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