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지 않으려고 웃겼죠.”
“험담 들을까봐 두려워요.” <동갑내기 과외하기>의 원작자 최수완(23)씨. 영화가 연일 폭발적인 반응을 끌어내자, 요즘 그가 실제로 어떤 사람인지 궁금해 하는 이들이 부쩍 많아졌다. 여러 곳에서 인터뷰 제의를 받았고 그렇게 해서 몇번 얼굴도 내밀었다. 하지만 시선들이 부담스러웠던 것일까. 차려입은 하얀 원피스를 빤히 쳐다보자, “저, 이 옷 한벌뿐이에요”라며, 자신은 곱디 고운 ‘공주님’이 아니라 억척스런 ‘복길이’라고 항변한다. “홈피에 올라오는 글들이 많아져서 일일이 리플을 달아주지 못해요. 누구는 영화가 잘되니까 인간이 변했다고 할지도 모르겠네요. 달라진 건 아무것도 없는데….”
<동갑내기 과외하기>의 태반(胎盤)은 한 인터넷 유머 게시판. 최씨는 ‘자신이 겪었던 재미난 이야기를 같이 나누자’는 마음에 나우누리에 <스와니-동갑내기 과외하기>라는 글을 올렸지만, 처음엔 “과연 누가 읽어주기나 할까” 하는 의구심을 지우지 못했다. 하지만 “이런 X같은 경우가 있을까요. 저 이렇게 구박당하고 살았답니다”라는 ‘스와니’의 하소연은 금세 네티즌들을 달구었다. 친구 아이디 빌려서 쓰기 시작한 한 다발의 글은 수만건에 이르는 조회 수에 힘입어 급기야 20여편의 연재물로 늘어났고, 그는 장학금을 놓치면 학교를 다닐 수 없는 사정상 공강시간을 쪼개 써야 했다. “울면서 일기 쓰듯 쓱 써내려갔는데, 지금 보면 허접하고 부족한 글이죠.” 영화사로부터 제의를 받은 건 그로부터 1년 뒤. 앞서거니 뒤서거니 3∼4개 영화사에서 영화화하겠다는 제의를 전해왔다. “메일 뒤져서 가장 먼저 제안한 곳을 택했죠. 내 글의 가치를 먼저 알아봐준 사람들이었으니까요.”
실제 수완이 궁금한 이라면, 지훈에 대한 호기심도 못지않을 것이다. 반말은 기본이요 여차하면 성희롱도 서슴지 않는 껄렁이 머스마를 만난 것은 지금으로부터 4년 전 여름. 최씨는 첫날부터 욕설 주렁주렁한 비수를 쉴새없이 평면가슴에 날려댄 지훈을 만난 순간, “이거, 지옥에 끌려왔구나. 이러다 병신되는 것 아닌가” 하는 두려움이 들었다. 한여름 사람들로 가득 찬 전철을 같이 타면 에어컨이 나오는 칸으로 이동하기 위해 자신을 앞세우고 연신 ‘뚫어!’를 외쳐대는 것 정도는 천인공노할 그의 비행에 비하면 귀여운 축에 낀다고. 그렇담, 그도 영화처럼 단순하기 짝이 없고, 흉포하기 그지없는 문제아와의 갈등을 로맨스로 뛰어넘었을까. “그 녀석 가만 입다물고 있어도 다들 피할 정도로 인상이 더러워요. 지금 영국에 가 있는데, 권상우씨 반만 됐더라도 제가 여기 있겠어요? 없는 로맨스 만들어서라도 따라갔겠죠.”
최씨가 영화에서 가장 만족하는 점은 “10대들이 충분히 공감한다”는 점. 제작진과 배우들이 빚어낸 결과라지만, 그의 미소에는 자신의 감성 주파수가 10대의 마음까지 흔들었다는 점에서 또 다른 창작자의 기쁨이 배어 있다. “‘니가 무슨 10대 소녀냐?’라고 핀잔을 듣더라도, 나이 사십 넘어서까지 그럴 수 있으면 더할 나위없이 좋겠다”는 것이 그의 소망. 아버지가 퇴직금을 사기당한 뒤, “집에 쌀이 떨어졌다”는 믿기 어려운 상황을 겪어야 했던 때에 “어쩌면 울지 않으려고 글을 써서 웃겼는지도 모르겠다”는 그는 극중에서 과외 못하겠다는 딸을 노려보며 김자옥씨가 식칼을 내던지는 장면에서 정작 자신의 엄마는 울었다는 에피소드도 전해준다.
어릴 적부터 “책 읽고 글 쓰는 게 밥 먹는 것보다 좋았고, 여동생 셋 앉혀놓고서 온갖 흉내내기로 이야기 꾸며내길 좋아했다”는 그는 얼마 뒤면 이화여대 국어국문학과 대학원에 진학한다. 입학금은 학자금 대출을 받았기 때문에 지금도 쉬지 않고 과외 전선에서 맹활약 중이라고. 초등학교 다닐 적에 <별이 빛나는 밤에> 고정 게스트로 출연해 진행자인 이문세와 함께 “아저씨, 아줌마들의 별난 고민을 들어주는” 상황극을 꾸미기도 했던 그는 “마이크를 잡고 싶다”는 그때 욕심에 한 방송사의 연수 프로그램에 참여하고 있으며, “앞으로 시간이 나면 시나리오 형식으로 후속편을 써볼 계획도 갖고 있다”고. “후일 무슨 직업을 갖든 평생 글을 쓸 것 같다”는 이 욕심 많은 아가씨가 양보하는 것 한 가지. “사실 수완이라는 이름은 영화 속 캐릭터와 나눠써야 하는 것 아닌가 싶어요. 너무 많은 관객이 봤으니까요.” 글 이영진 anti@hani.co.kr·사진 이혜정 socapi@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