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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리없이 감정의 결을 읖조린다,<하늘정원> 촬영 이승우
심지현 2003-03-26

대진고속도로의 개통으로 4시간이면 도착하는 경남 사천의 바닷가. 눈구경하기 힘들다는 경상도 가운데서도 사천은 따뜻하기로 유명한 곳이지만 11월의 바닷바람은 대찬 기운으로 크랭크인을 앞둔 <하늘정원> 촬영팀을 위협했다. “바람만 안 불면 하와이 안 부러운” 그곳에서 겨울이라 명해진 3개월을 꼬박 채운 촬영감독 이승우는 아직 짠기가 덜 가신 듯 바다 풍광을 묻는 기자에게 “글쎄…”라고만 얼버무린다. 지난해 1월 <폰>을 시작으로 4월엔 <청풍명월>의 퍼스트로 한해의 반을 정신없이 넘기던 그는 이석기 제작부장의 권유로 <하늘정원>을 입봉작으로 받아들였다. 김의석 감독의 <그 여자 그 남자> 촬영팀 막내로 들어와 영화밥 먹은 지 꼭 10년째였다. 덕분에 <청풍명월>팀에서는 중도하차했다. 강원도 춘천의 고구마섬에서 300명에서 700명에 이르는 대규모 군중신을 찍어대다 경상도 사천의 조용한 바닷가 절벽으로 거처를 옮긴 그는 비장미에 눌린 카메라에 가벼운 기운부터 불어넣었다. 이동현 감독이 주문한 것은 영화의 태그라인이 되었다. 아프지 않고, 슬프지 않고, 행복하게 그려질 죽음이 그것이다.

죽음을 앞두고 있지만 밝고 활기차게 살아가는 다양한 사람들의 따뜻한 이야기를 그리고 있는 <하늘정원>은 영화 속 장면 중 60% 이상이 호스피스 병동을 중심으로 이루어지다 보니 촬영지를 선택하는 일이 쉽지만은 않았다. 감독은 이미 한해 전에 풍광이 좋은 전국 각지의 병원 후보지를 돌며 호스피스 병원의 무대가 될 만한 장소를 찾다 우연한 기회에 내부수리를 위해 잠시 운영을 중단한 경남 사천의 작은 호텔 하나를 발견했다. 그곳은 바로 ‘사천 비치관광 호텔’. 호텔 앞에는 아름다운 바다가 보이고 호텔 뒤로는 우거진 수풀 사이로 따사로운 햇살이 내리쬐는 이곳은 호스피스 병동으로 만들기엔 제격인 장소였다. 안채로 사용되던 살림집은 오성(안재욱)의 방이 되었고, 숲길은 두 사람만을 위한 데이트 코스가 되었다. 위암 말기 환자지만 웃음을 잃지 않는 영주(이은주)의 방과 호스피스 병동을 비추는 카메라는 따뜻함을 강조하는 암바(아이보리와 옐로의 중간)톤으로 더욱 뽀얀 화면을 연출해낸다.

공대출신인 이 감독은 음악과 사진에 관심을 가지면서 광고쪽으로 진로를 틀었다. CF 제작과정을 들으면서 오히려 영화에 더욱 끌리더라는 그는 오랜 시간 살을 부대끼며 정을 나누는 현장이 가장 큰 매력이었다고 회고한다. <그 여자 그 남자> 현장에 출근 도장을 찍었던 첫날, 그는 ‘이게 내 길이야’ 하고 읊조렸다. 감정의 변화를 잡아내는 게 특기인 그의 카메라는 번잡하지 않으면서도 감정의 결을 세세히 훑는 화면을 만들어내고 싶어했다. 이번 <하늘정원>은 컷 수가 많지 않지만, 등장인물들과 함께 울고 웃게 만드는 화면의 힘 덕분에 지루할 새가 없어 보인다. 4월4일 개봉예정.글 심지현 simssisi@dreamx.net·사진 조석환 sky0105@hani.co.kr

프로필

→ 1969년생→ 1993년 한국광고연구원 수료→ <그 여자 그 남자> <장미의 나날> 촬영팀→ 1994년 <구미호> <그리움엔 이유가 없다>·1995년 <총잡이> <보스>·1996년 <용병이반>·1997년 <표류일기>·1998년 <화이트 발렌타인>·1999년 <신혼여행>·2000년 <비밀> <하면 된다>·2002년 <폰> <청풍명월>→ 2003년 <하늘정원>으로 데뷔